조직적으로 일하기를 거부했던 귀족들-노동
13세기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 영주였던 레이몽 베랑제 5세(Ramon Berenguer V)는 천생 ‘귀족’이었다. 귀족들은 육체적 노동을 할 필요도 없었고, 한마디로 일 없이도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레이몽은 이 같은 관습법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경멸해 마지않았던 천한 농민과 건달들을 귀족과 구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구축해 나갔다. 자신의 영지에 사는 일반인들과 고귀한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세세 콜콜 구분하는 각종 법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프로방스 지역 기사들은 농사일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기사들은 쟁기질을 하거나 땅을 파는 것은 물론 장작을 나르거나 각종 손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었다. 고귀한 귀족여인은 “오븐에서 음식을 만들지도 않고, 설거지도 하지 않으며 방앗간에 들를 일도 없는 사람”으로 법적으로 정의됐다.
중세 시대엔 일은 원죄의 결과인 벌로 생각됐다. 성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계율 속에 일을 집어넣어 이를 철저하게 실천하도록 한 것도 모두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을 때 인간에게 강제된 속죄’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같은 풍습은 때마침 자리 잡아 가던 3위계(troi orderes)를 견고히 하는 데도 한몫했다. 속죄의 의미로 스스로 쟁기질을 하던 11~12세기의 수도사들과 달리 이 당시 수도원과 성당의 수장들이 자신의 부를 이용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기도장소를 충실히 꾸미고, 재건축하고, 제단과 성유물 주변을 휘황찬란하게 하는 데 관심이 커졌다. “경제적 부는 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레토릭은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기사들도 게을리 살면서 노동을 자신들의 고귀한 자유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자신의 부를 마구 소모하면서 관대하다는 평을 듣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 됐다.
그리고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제3위계의 하층민은 기도하는 자(성직자)와 전사(기사)라는 두 엘리트 계급의 나태와 낭비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을 공급해야 했다. 신의 섭리에 따라 이들 하층민은 노동을 해야 하는 존재로 운명이 정해졌고, 자유를 잃어갔다.
결론적으로 레이몽의 입법 작업의 도움으로 남들이 어떻게 쳐다볼까 하는 것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두면서, 적선사업은 무분별하게 진행하고,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프랑스의 귀족문화는 이 때 자리를 잡았다.
세계사속 경제사, 돈 성 권력 전쟁 문화로 읽는 3000년 경제 이야기, 글항아리, 김동욱, 페이지 155-157
서양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힘을 쓰는 노동에 대한 천시의 글이 존재한다.
노심자치인(勞心者 治人) 노력자치어인(勞力者 治於人)
마음을 쓰는 사람은 힘을 쓰는 사람을 다스리고, 힘쓰는 사람은 타인의 지배를 받는다.
출전:사기(史記) 공자세가. 맹자 등문공(滕文公)상
그런데 근로는 언제부터 축복받는 것이 되었을까? 근대 산업혁명 이후 서양에서 노동력을 최상으로 돌리기 위해서 근로에 대한 미덕의 신화가 탄생했다. 필자는 서양인의 조선평가가 조선인은 게으르다는 표현일색이었는데 일제 강점기부터 근로에 대한 표창이나 격려등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부지런함과 근로의 장려운동 자체가 노동력을 더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또한 무슨 창의적인 생각이나 업적이 나오려면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퇴근후 번 아웃이 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필자도 유교 4서를 읽었지만 동양의 정신에는 땀을 흘리지 않고 먹는 불로소득에 대한 폄하가 있다. 그런데 논어를 보면
https://blog.naver.com/imaginehan/220485015613
樊遲가 請學稼한대 子曰:“吾不如老農호라 請學爲圃한대。曰:“吾不如老圃호다
공자의 수레를 몰던 번지가 농사짓는 법을 배우길 청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늙은 농부만큼 농사를 모른다.”하시고, 채소 재배하는 방법을 배우길 원하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길 “나는 채마밭 재배하는 노인만 못하다.”고 하셨다.
즉 농사는 작은 일이고 학문이나 정치는 큰 일이기 때문에 너는 사소한 질문을 하니 대답할 수 없다고 농업을 약간 폄하하는 말을 한다.
웃기는 것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봐도 유현덕이 조조에게 야심을 없어 보이려고 농사에 열심인 내용이 등장한다.
玄德也防曹操謀害,就下處後園種菜,親自澆灌,以韜晦之計。
현덕야방조조모해 취하처후원종채 친자요관 이도회지계.
현덕은 조조의 모해를 방지하려고 뒤뜰에서 채소를 가꾸며 친히 물을 주며 몰래 계책을 숨겼다.
關、張二人曰:「兄不留心天下大事,而學小人之事,何也?」
관장이인왈 형불류심천하대사 이학소인지사 하야?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말하길 “형은 천하의 큰 일을 마음을 두지 않고 소인의 일을 배우니 어째서입니까?”
자 이래놓고도 땀을 흘리는 일이 소중하고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은 하찮은가? 부자가 자기는 놀고 먹으면서 돈놀이나 정보를 이용한 투자로 돈을 벌당시 하층민은 흙수저로 절대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다.
부의 추월차선(실제 안보고 강의만 들음)이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등 책을 봐도 근로 이외에 책 저작권이나 부동산 투자, 기타 쉬고 있을 때도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라고 귀에 못이 박힐때까지 설명하는데 진리이다.
즉 너희들은 땀을 흘리고 일하고 나는 쉬겠다는 양반은 담뱃대 물고 누워 있고 천민들은 열심히 추수후 벼를 타작하는 단원 김홍도의 타작하는 그림을 봐도 알수 있다.
불로소득(不勞所得, 영어: unearned income)은 노동의 대가로 얻는 임금이나 보수 이외의 소득을 말한다. 이자, 배당, 임대료 등의 투자 수익, 유가 증권이나 부동산 등의 매매 차익 등을 포함하는 재산 소득 외에, 상속, 연금, 복지 등을 포함한다.
장기적·동태적인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에 기인하여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이 향유하는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불로소득과 관련하여 그의 국부론에서 지대(Ground-rent) 또는 토지임대료를 주인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는 소득(enjoy without any care or attention of his own)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과세는 경제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금이 가장 좋은 세금이라고 하였다.
필자가 최근 싫어하는 말이 불로소득이다. 사전적으로 勤勞근로를 하지 않은 소득不勞所得이라고 하는데 물론 勞로란 글자에는 힘 力력이 들어 있다. 그런데 사실 뇌에서 포도당을 20%를 사용하고 정신적인 수고 자체도 육체노동에 비교해 당분의 공급을 엄청 많이 필요하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불로소득의 정의에는 놀고 먹으며서 쉽게 버니 도덕적으로 너희들은 하지 말아라, 우리 재벌 귀족이나 금수저들만 할께라는 무서운 세뇌와 억압이 들어 있다.
특히 최근의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리플등 암호화 화폐를 보면 정부는 불로소득이니 너희들은 하지말고 실명제 하고 세금이나 많이 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암호화 화폐를 사고 파는 행위 자체가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완전 경쟁 상태이고 변수가 많으니 정말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일이다. 또 이 암호화폐 투자 자체가 예컨대 IOTA는 사물인터넷 IOT을 키우고 Tron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에네고는 에너지 스마트그리드 산업을 키운다. 암호화폐 자체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하고 이더리움은 스마트 컨트랙트를 키운다.
그런데 암호화폐 투자를 불로소득으로 싸잡아 비난하며서 세금 거둘 속셈이나 하니 정부야 말로 일제 강점기에 종로 바닥을 장악해 삥뜯는 일제 깡패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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