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드럼 연주에 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리듬 패턴 더하기 필인이 아닌, 리니어하게 이어가는 프레이징에 관해 설교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마이크 클락의 예와 홀헤이 로씨의 예를 들어주었다. 허비 행콕 뒤에서 연주하던 마이크 클락을 이야기했고, Exit Music에서 끊임없이 이어갔던 홀헤이의 라이드 심벌 소리를 기억해냈다.
그리고 며칠 이내, 그러니까 그저께 밤에 뜬금없이 운동을 하겠다고 양재천으로 나섰다. 늘 그렇듯이 운전하며 지나치는 거리의 풍경은 걸으며 보게되는 모습과 다르다. 물론 음악도 그렇다. 차 안에서 듣는 것과 걸으며 듣는 것은 다르다.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멜다우를 들었다.
이제 멜다우는 제법 많은 음반을 낸 아티스트이고 나는 그의 디스코그라피를 다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애써 따라가고 있지 않는 중이다. 내게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드러머는 홀헤이 로씨이지 제프 발라드가 아니다. 제프는 너무도 훌륭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얘기로- 홀헤이가 아니고, 홀헤이의 라이드 심벌이 들리지 않으면 멜다우는 다른 연주자가 된다. 멜다우가 갑자기 열살 쯤 나이가 들어버리는 느낌이다.
청춘의 송가로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주를 할 당시의 멜다우는 실제로도 젊었다, 홀헤이 역시.
젊음이 담겨있는 연주가 있다. 연주에 젊음이 마음껏 담기려면 그 젊음의 시기에 음악이 마음껏 펼쳐져야 한다. 고작 음악의 ABC가 해결되지 않아 끙끙대고 있던 나의 연주에는 찬란한 젊음이 차마 담기지 않았다. 음악을 조금 알 것 같은 지금의 나는 더이상 젊지 않고 나의 음악에는 상처와 회한이 가득 담겨버렸다. 아무리 받아들이려 애를 써도 슬프지 않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