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피는 꽃
Strange Liberation
Strange Liberation, 재즈 드러머 서수진의 두 번째 음반을 받아들었다. 그녀가 대학생이던 시절 그 학교에 출강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정작 수업에서 만난 적은 없었다. 나는 당시 내가 레슨하던 학생의 반주자로 그녀를 한동안 부려먹었고, 미국에 유학 가 있을 시절에는 번거로운 심부름을 시켰다. 그녀는 유학을 마치고 굳이 나를 찾아와 인사를 하고 음반을 전해주고 스승의 날에는 책까지 선물해 주었다. 그러니 마음에 빚을 단단히 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재즈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작다보니,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무엇 하나 해 줄 수 있는게 없었다. 그저 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 구석 뿌듯해하며 응원하는 것 말고는. 선배의 조언이라고 늘어놓은 것이 우리나라의 재즈 씬이라는 게 반응이 더디다고, 아무도 관심없이 시큰둥한 느낌이 들 거라는 말이었다. 나의 세대가 이룬 일말의 성취와 함께 실패도 보여주었다.
그러던 중에 이 음반을 작업한다는 말을 들었고, 얼마 후에 직접 전해주었다. 씨디를 건넬 때의 느낌을 보니까 어느정도 만족하는 것 같아보여 기대가 되었다. 집에 가는 길에 차에서 듣자니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동안 한국 연주자들의 재즈 음반에서 느껴지던 아쉬움 같은게 다 날아가버렸다. 거침없고 자유로웠다. 어쩌면 두 색소폰 주자가 교포라는 것이 영향을 미쳤을까.
재즈 연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문화권의 산물인 재즈를 받아들여 결국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대가들의 연주는 끝이 보이지 않고, 젊은 연주자들의 음악은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끝없이 경쟁만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질 것 같은 재즈의 세계에서 그녀는 이렇게 꿋꿋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는 누가 누구의 선생인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