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메인 화면은 기념할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바뀐다. 2018.4.4일 구글 메인화면이 바뀌었다. 메인화면에 있는 저 여성은 바로 마야 안젤루. 4월 4일이 마야 안젤루의 생일이다. 마이클잭슨을 추모하는 시를 쓴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구글메인화면에 뜰 정도면 유명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알아보았는데 정말 엄청난 시련 속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운 인생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녀의 인생에 대해 조사한 바를 적고자 한다.
(출처 :SLOW NEWS) http://slownews.kr/26191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지난 2014년 5월 28일 타계한 이 미국 문화의 큰 별은 ‘수필가’나 ‘시인’ 같은 한 단어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열 명의 삶을 살다간 사람
향년 86세. 천수를 누렸지만, 그가 살았던 삶의 밀도를 생각하면 안젤루는 열 명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안젤루는 수필가이자 시인이었으며, 시낭송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세 번 수상했었고, 식당 조리사, 오페라 수석 무용수, 전차 운전기사, 작곡가, 시사잡지 편집인, 비서, 인권운동가, 마담뚜, 토니상에 노미네이트된 뮤지컬 배우, 스트립 댄서, 문학 교수, 자동차 정비공이자 TV 드라마 [뿌리](Roots, 1977)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탤런트이기도 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말콤 X, 피델 카스트로와 교우를 나누며 중동과 아프리카를 종횡무진했고, 그의 글에 담긴 목소리는 전 세계의 유산이 되었다. 그가 자란 1930년대 미국 남부 아칸소의 차별과 압제를 초월하기 위해선, 그렇게 부활에 부활을 거듭하는 삶을 살았어야 했는지 모를 일이다.
7살 아이, 거대한 폭력과 침묵을 만나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할머니 덕택에 안젤루는 비교적 여유 있는 유년기를 보냈으나, 시련은 곧 찾아왔다. 7세 때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범인은 잡혔고 재판을 받았으나, 형을 살기 전에 안젤루의 삼촌들에게 살해당한다.
이 사건은 어린 안젤루에게, 자신이 말을 했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두려움을 불어넣었다. 안젤루는 이후 몇 년간 실어증에 시달렸으며, 문학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가면서 서서히 한 마디씩 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언어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것은 대문호의 필수요건이겠으나, 그 대가는 끔찍했다.
운전기사에서 싱글맘으로 그리고 무용수로
이후 14살의 안젤루는 어머니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청소년기를 보낸다. 키가 무려 183cm였고 무용에 소질을 보였던 안젤루는 자신감이 넘쳤다. 16세에 안젤루가 샌프란시스코의 첫 흑인 여성 전차 운전기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안젤루의 진취성을 보여준다. 안젤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들을 낳아 싱글맘이 되었고, 캘리포니아를 전전하며 궂은일을 하며 아들을 키웠다.
그러나 무용의 꿈은 포기하지 않아, 그 기간 동안 계속 현대무용을 배우며 전문 무용수로 데뷔한다.
등단 그리고 흑인 인권운동과의 조우
1959년, 안젤루는 문학계에 등단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한다. 뉴욕에서 안젤루는 흑인 인권 운동의 영웅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 점점 속도를 올리고 있었던 인권운동에 지도자 역할로 동참하게 된다. 인권운동 과정에서 안젤루는 남아공의 인권운동가 부숨지 마케와 사랑에 빠져, 마케와 함께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하여 아랍권 뉴스를 제공하는 영문 매체의 부편집장이 된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1969)
그리고 1969년, 안젤루는 문학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인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 이하 ‘새장’)를 출간한다. ‘새장’은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그때까지는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자서전은 드물었다. 당연하게도 미국 흑인 여성이 쓴 자서전은 전무했다. 안젤루는 ‘새장’에서 그가 처했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마야가 그 현실 속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서술함으로써, ‘흑인’, 그리고 ‘여성’이란 집단 이름의 무게를 뛰어넘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흑인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선보였다.
순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가겟방 하나를 낸 할머니를, 그만큼도 이뤄내지 못한 ‘가난한 백인 쓰레기’들은 경멸하고 모독했다. 동네에 유일한 치과의사였던 백인은, 대공황 때 할머니의 돈을 빌려 파산을 면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야의 삭은 이를 고쳐주지 않는다. KKK의 무차별적인 흑인 살해를 피하려 마야의 삼촌은 수시로 야채를 담는 들통 안에 숨어야 했다.
하지만 흑인들은 고난 속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선해지지 않았으며, 그 소사회의 약자 – 즉, 마야 같은 어린 소녀 – 는 성폭력에 노출된다. 마야는 실어증에 걸리지만, 문학과 이야기의 힘으로 점차 제 목소리를 찾아가며, 지난한 현실을 존엄을 가지고 맞서는 자아를 계발한다.
‘새장’에 대한 폭발적 반응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새장’은 출간 후 2년간 뉴욕타임즈 논픽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기재되어, 최장기 베스트셀러의 기록을 세운다. 그리고 미국 고등학생들의 필독 교재가 되었으며, 생생한 폭력과 성범죄의 묘사가 부담스럽다는 보수적인 학부모들이 오랫동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미국인들을 하나로 묶은 ‘어른’
터프한 랩퍼 투팍(Tupac)이 무서운 게 없이 날뛰던 시절, 안젤루의 몇 마디 말이 투팍을 아이처럼 울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출연한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안젤루는 취임식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여 케네디 이후로 32년 만에 취임식에서 시를 낭송한 시인이 됐다.
2011년, 미국 정부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마야 안젤루에게 수여한다.
단지 개별적인 개체의 모음일 뿐 사회로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은 미국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깊고 큰 울림을 지난 사회적 상징으로서 마야 안젤루는 미국인들을 하나로 묶는 큰 어른의 역할을 맡았다. 안젤루가 타계한 후 한 미국 언론의 추모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마야 안젤루 수준의 거인이 영면했을 때, 우리는 마야 안젤루가 그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주길 기다렸다.”
안젤루 없이 이제 누가 미국 사회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줄 것인가? 미국 역사에서 이처럼 드높은 상찬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은 어쩌면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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