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당시 군가, 조니가 행진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 1865年>
이전 글에서 1814년 지어진 『미국 국가』의 유래와 특징들을 당시 정세, 가사에 기반하여 주로 살펴보고, 가사 안에 담긴 "free" 혹은 "freedom"이라는 자유란 무얼까도 살짝 곁들여 생각해보았는데요. 조금 길지만, 못 보신 분은 먼저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2: 백악관이 불타던 그 때 태어난 『미국 국가』
그 후 1876년 완공된 『자유의 여신상』의 자유는 또 조금 다릅니다. 60여년 간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요.
『자유의 여신상』이 가진 흥미로운 특징들 재미로 좀 보고, 이 무렵 정세 파악을 통해 『자유의 여신상』의 자유란 무엇일지 생각해 볼께요.
『미국 국가』의 자유 vs 『자유의 여신상』의 자유, 그 닮은 듯 다른 두 가지 자유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자유라는 개념, 미국, 스팀잇을 이해하는 데 있어 모두 유익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일반인의 짧은 지식 정리차원 글이므로, 맥락 위주로 보시는게 좋겠지요.>
『자유의 여신상』의 흥미로운 6가지 사실들
실제로 다녀왔고 참 좋아하는 동상인데 이 내용은 저도 거의 몰랐었답니다^^
① 『자유의 여신상』의 자유는 "LIBERTY"
『자유의 여신상』의 공식 영문명칭은 "The statue of liberty"입니다. 같은 자유지만, "freedom"이 아니라 "liberty"라는 점 기억하시면 좋겠네요. 사실 정식 동상 제목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긴 합니다.
② 프랑스 공식 동상은 세계 3곳 뿐"
파리, 뉴욕 그리고 도쿄에 있는 3개만 프랑스 정부가 인정한 것입니다. 파리, 도쿄에 있는 것은 훨씬 작은 버전이지만, 나름 주변과 잘 어울립니다.
<도쿄 오다이바 공원>
③ 자유의 여신상은 원래 녹색이 아니었다?
원래 구리로 만들었기에, 원래는 동색이었는데 계속 산화되면서 현재의 멋진 녹색(?)이 되었다고 합니다. 단, 횃불은 최근 금도금했다고 하네요.
④ 자유의 여신상은 그냥 동상이 아니라 용도가 있었다?
정식 등록 후 사용하던 등대였다고 하네요. 다만, 주변에 안개도 심한 편이고 그다지 효과가 떨어져서 자연스레 기능을 없앴다고 합니다.
⑤ 뼈대 설계자는 에펠
제작은 유명 조각가였던 "바르톨디"였지만, 뼈대 설계자는 에펠탑을 고안한 "구스타프 에펠"이라고 하네요. 웬지 튼튼하게 설계했을 것 같습니다.
⑥ 여신상 발바닥에는 무언가 있다?
보통 그녀가 들고 있는 횃불은 "자유"를, 책은 "헌법"을 뜻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왕관은 무슨 뜻일까요? 튀어나온 곳이 7개인 점을 근거로 7대륙 골고루 자유가 퍼져나가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근데, 발바닥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르는 이가 많습니다.
보이시나요. 저 두터운, 그러나 끊어진 쇠사슬이 있었네요.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라 합니다.
美독립선언(1776)~미국 국가(1814)~자유의 여신상(1876), 그 100년 간의 정세
① 美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프랑스의 『자유의 여신상』 선물(1876)
아시다시피,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1776년 독립선언문 발표 100주년을 기념하고, 양국 간 동맹 촉진을 위해 프랑스 민간 차원에서 40만 달러의 성금을 걷어 제작하여 1876년 미국에 선물한 것입니다.(조금 정치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입장에서는 늘 영국을 견제해야 하는데 미국과 친한 것이 좋겠죠? 동양에서는 "이이제이" 전략일수도 있겠구요.)
제안자는 프랑스 법학자이자 노예폐지론자였던 "라부라이에"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② 연방시대(1788~1801) + 제퍼슨 시대(1801~1817)
다시 그 100년전인 미국의 독립선언(1776年) 무렵으로 거슬러가서 시작해 봅니다.
당시 미국의 두 기득권층(=연방당, 민주공화당)은 공통적으로 영국 정부의 과도한 조세 부과, 징발 등 간섭과 규제를 싫어했습니다. 이때만해도 現민주당, 공화당의 전신인 민주공화당은 한 뿌리였죠. 그래서 모두 뭉쳐 한 몸처럼 싸우고 독립을 이뤄냈지만, 지지기반은 서로 달랐습니다. "연방당"은 북부공업도시의 노동자와 기업가를 기반으로, "민주공화당"는 중남부의 농업 중심 지역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전쟁 전후의 많은 부채를 누가 부담할지를 놓고 두 정당은 의견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때까지는 오히려 중남부가 농산물 등 대량생산과 무역을 하면서 더 잘살던 시절이었죠. 아직 매우 작은 미국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아직 하나로 뭉쳐야 하므로 전체 부채 총액을 "1/N"하자는 "연방파"와 무슨 소리냐며 각 주가 자기 빚을 알아서 짊어지라는 "민주공화파"로 갈리게 되었습니다. 더 부유했던 "민주공화파"입장에서는 북부 공업지역의 빚까지 떠앉는 것이 싫었을 겁니다.
제 1대 대통령인 "조지워싱턴"과 "알랙산더 해밀턴"이 대표적인 연방파였습니다. 대표적인 민주공화파는 제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4대 대통령인 "제임스 메디슨" 등이 있었습니다.
연방파들은 1791년 "아메리카합중국은행" 설립을 주도하는 등 미국 전체를 연방 체계로 관리하고 싶어했으나, 민주공화파들은 소위 "왕당주의"가 아니냐면서 영국 정부와 다를게 뭐냐는 식으로 몰아부쳤고, 1800년 토머스 제퍼슨이 제 3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영향력이 강화됩니다.
쉽게 보자면, 중앙화가 필요하다는 "연방파", 탈중앙화가 진리 아니겠냐는 "민주공화파" 싸움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지지기반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연방파들은 제 4대 제임스 메디슨 대통령이 주도했던 1812년 미영전쟁 선전포고에 반대하면서, 전쟁의 와중에 입지가 축소되었고 결국 연방당은 전쟁 후 해체되기에 이릅니다. 미국국가를 탄생시켰던 다소 무리한 미영전쟁의 이면에는 이렇게 민주공화파의 영향력 확장 의도도 꽤 있었다고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지역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친영(親英)적이었던 연방당을 미영전쟁을 통해 코너로 몰아 넣은 것이죠.
※ 참고로 정치적 신념 싸움이었을 뿐, 미국을 탄생시킨 주역이자 연방파였던 초기 멤버들의 노고 역시 미국은 훌륭하게 기념하고 있습니다. 연방파 대표였던 "조지워싱턴"은 1달러 지폐의 주인공이며, 대통령을 하지 못했던 "알랙산더 해밀턴"은 무려 10달러 지폐의 인물입니다. 우리의 만원 짜리가 이순신 장군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대접인지 이해하시겠죠?
③ 호감의 시대(1817~1825)
나폴레옹의 몰락, 미영전쟁 종전 및 연방당 사실상 해체로 정파 싸움이 사라지면서, 일시적으로 평화로워 보이는(?)시대가 찾아옵니다.
드디어 전쟁도 정파 싸움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경제적 성장, 계속되는 영토 확장을 통해 급성장을 시작합니다.
이에 제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는 이른바 "먼로주의"가 된 먼로 선언(1823)까지 하게 되는데요. 주된 내용은 미국의 영토 확대 정책 등 북미대륙 내부 일에 유럽이 간섭하지 않으면, 미국도 유럽내의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열강들은 이를 단순한 선언적 의미로 보고 무시했습니다. 미국이 아직 작고, 국제사회에서 패권을 잡은 국가는 아니었으니까요. 신기하게도, 미국과 전쟁을 치뤘던 영국만이 이 선언을 승인합니다. 프랑스 등과의 전쟁 등을 치룰 때 중간에 미국의 괴롭힘이 신경쓰였던 것이겠죠.
그러나 비대해진 정당은 오래가기 힘든 법, 점차 균열 징후를 보이게 됩니다.
④ 잭슨 시대(1825~1849) : 잭슨민주주의 + 자유방임주의 경제 = FREEDOM
제 5대 "앤드류 잭슨"대통령은 참정권을 확대하는 등 그들이 생각했던 초기 미국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려 애씁니다. 이것은 미국 국가에서 나타난 FREEDOM이라는 소위 적극적에 가까워 보이는 자유 영역입니다. 하고 싶은 무언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자유이자 의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경제 측면에서도 그에 걸맞게 자유방임주의가 실시됩니다.
영국 등 유럽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 성장과 팽창을 지속하던 미국은 이제 외부 문제를 해결했기에 내부 문제를 둘러싸고 비대해진 민주공화당은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소위 "팽창주의"는 남부 위주로 미국 국민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기에, 그 과정에서의 원주민, 미 플로리다 지역을 지배하던 스페인 국민 등에 대한 반인권적 행위들이 무시되기 일쑤였지요. 그렇지만 방임의 자유와 부유함을 주는 민주공화당 "앤드류잭슨" 대통령의 인기는 치솟았습니다.
이에 반해 대통령이 지지율을 믿고 사실상 영국의 왕이나 다름없어졌다며, 비판하면서 "휘그당(1933)"이 창당됩니다. 당시 민주공화당, 휘그당 모두 노예제도의 문제는 알았지만, 모두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노예제도에 의존했던 중남부 부유한 농업지역과 달리 북부 공업도시들은 열악한 노동자여건 등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고, 기업가들 위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견해가 부각되고 있었지만 주류는 아니었기에 휘그당은 이를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워낙에 팽창주의 속 미국 경제성장의 달콤함에 취해서 "앤드류 잭슨" 대통령 및 그 계승자들, 그리고 "민주공화당"의 인기가 높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잭슨 시대 후반부로 갈수록 인구급증과 급성장 속 양극화로 "FREEDOM"이라는 적극적 자유와 자유방임경제가 점차 한계를 나타내는 징후가 많이 나타난 것은 분명합니다. 점차 북부 공업 지역의 불만도 쌓여가면서, 그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⑤ 분열과 내전 시대(1849~1965) : LIBERTY 부각
한 정당의 독주는 오래 갈 수 없는 법이죠. 주별/지역별 경제력 차이가 커지고, 노예제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여러 정당으로 쪼개집니다.
북부 공업 지역 기반으로 노예제 폐지에도 찬성하는 공화당이 생겨났습니다. 민주당은 남부 농업지역을 기반으로 한 입헌민주당, 중북부 기반 민주당으로 분열하였으며, 그 완충지대를 기반으로 한 입헌통일당까지 총 4당 체제로 급히 변모됩니다.
이러한 분열로 인해 늘 소수였던 "법치 기반의 소극적에 가까워 보이는 자유(=LIBERTY)"를 상대적으로 중시했지만, 기존의 절대적에 가까운 자유(=FREEDOM)을 추구하는 민주공화당 안에 속할 수 밖에 없거나 정치를 하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헤쳐 모인 공화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공화당 최초의 대통령이자 미국 역사상 최저 득표율 대통령이 누구냐면,
바로 "링컨" 대통령(1860)인 것이었죠. 그 유명한 분의 당선 득표수는 불과 186여만 표!
이 때의 미국은 3억 3천만 인구의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도 작았답니다.
<출처: 위키백과>
무려 39%대로 당선! 그러나 주요 주에서 승리하여 선거인단 수로 하면 180으로 나머지 3개당을 합쳐도 모자랄만큼 압도했습니다. 그리고 29%의 민주당은 단 1개주만 승리해 선거인단 수로는 4위를 차지하며 폭망합니다.
1800년 제 3대 제퍼슨 대통령 당선 이후로 미국의 주류정치로 군림해 온 "민주공화파" 계열의 "민주당파"가 FREEDOM이라는 절대적에 가까운 자유 기반의 민주주의와 자유방임경제, 그리고 팽창주의로 엄청나게 군림해 오다가,
중북부 지역과 공업 지역에서 완전히 민주당에 등을 돌리면서, 무려 60년만에 LIBERTY의 법치기반 소극적 자유를 중시하고 노예제 폐지를 찬성한 "공화당파"가 주류가 된 것이죠.
소극적 자유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법치에 기반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의 자유는 제한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뺏기지 않을 자유"이기 때문에 개념이 좀 다릅니다.
"민주당", "공화당" 양쪽 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이미 선거 전부터 "공화당"이 이기면 전쟁이 날거라고 공공연히 소문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민주당"은 엄청난 우려를 했을 겁니다. 수십년 간 잡아왔던 정권이니 그 꿀맛을 잘 알테고, 노예제까지 폐지한다하니 지지기반이 붕괴되는 소리가 들렸겠죠. 결국 정당들이 의도했던 아니던 간에 남부연합이 결성되고 그 유명한 "남북전쟁" 내전이 발발합니다.
<남북전쟁 당시 군가, 조니가 행진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
"공화당"은 공약이기도 했고, 수많은 남부 흑인 노예 및 북부 공업도시들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노예제도 폐지는 일대의 숙원사업이었을 것입니다. 명분도 좋고, 정권 재창출과도 연관이 컸습니다.
결국 내전 중 전황이 불리하자 링컨 대통령은 의결도 안된 "노예해방선언"을 일단 발표해버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남부연합"에 속한 노예만 해방하는 선언이고, 북군 지역에 속한 노예는 일단 제외했다는 사실입니다^^
내전이 끝나고 해도 되는 부분이고, 명분과 지지를 더 끌어내야 했던 부분이기에 무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민주당 내 노예제 폐지에 찬성하는 북부지역 의원들의 표까지 매수한(?) 링컨은 간신히 숙원을 이루게 되고, 흑인들의 이탈, 프랑스의 지지를 받지 못해 물자가 부족해진 남부연합은 초기의 유리한 전황을 잃고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1865년 재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존 미 주류 정치 및 중남부 사람들에게는 아주 싫은 사람이 되어 있었죠. 재선된지 불과 5일 만에 피살되고 마는 아픔이 있습니다.
⑥ 재건시대(1867~), 대공황(1930),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내전 후 재건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의 노예해방은 흑인들의 압도적 지지세를 낳고, 북부공업도시들은 점점 부유해지면서 영향력이 확대되어갔기에 북부 지지 기반과 흑인의 지지까지 일궈낸 "공화당" 의 질주는 계속되어 1930년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약 70년간 "민주당"은 과거 60년 영광을 뒤로 하고 거의 정권을 잡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 후 "대공황"을 기점으로 서로의 약점이 되었던 지지층을 공략해가면서 현 민주당, 공화당은 미국 건국 초기부터 19세기까지의 민주당, 공화당의 설립 정신, 지지기반과는 또 다르게 (어쩌면 그 당시와는 거의 반대입장으로 변신한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모습을 바꿔 생존해 가면서, 서로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수시로 뺏고 뺏기는 균형잡힌 양당제가 자리를 잡은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만 하더라도 "불법이민자 추방" 등을 언급하며 소위 민주당 지지층이 많았던 전통 중남부 백인 계층의 지지를 끌어모았던 전략을 쓰기도 했습니다. 5%의 차이로 정권이 오가는 상황에서 설립철학도 중요하지만, 그에 벗어나더라도 일정부분 어쩔 수 없는 공약들을 쓰기 마련인 모습입니다.
이제는 그 양당 안에 속해 있는 정파들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정체성을 알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The Star Spangled Banner(별이 빛나는 깃발 혹은 별이 박힌 깃발), 現 미국 국가 >
『미국 국가』의 자유 vs 『자유의 여신상』의 자유
미국이 독립선언을 할 당시부터 프랑스로부터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받게 될 때까지 100년 정세가 좀 보이셨나요?
이 시간 동안 프랑스도 아주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1793년 프랑스 대혁명이 성공하고 제 1공화국을 만들었지만, 5년만에 나폴레옹 절대 군주 체제인 제 1제국이 되고, 1815년 나폴레옹 몰락 후 재차 왕정체제로 회귀합니다. 다시 1830년 입헌군주국이 되었다가, 결국 1848년 2월 혁명을 통해 제 2공화국으로 되돌렸으나, 1851년 나폴레옹 조카의 쿠데타로 다시 제 2제국 체제가 되었다가, 1870년에 가서야 다시 프랑스 공화국이 될 수 있었거든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무려 77년이 걸려서야 다시 공화국이 될 수 있던 것이지요.
잘보면 이는 결국 정치권력이 왕족/귀족에서 자본가계급으로 옮겨지는 양쪽 간의 다툼의 지속이었기도 했습니다. 이는 "왕권", "무한한 절대적 자유" 등이 축소되고, "법치기반 소극적 자유"의 개념이 확대되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프랑스 대혁명 후 77년이 지난, 1870년대 들어서야 재차 힘들게 공화국이 된 프랑스는 그런 Liberty속 자유에 대한 간절한 메시지를 담아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한 것이 아닐까요?
1860년대 내전까지 치뤄가며 민주당이 추구했던 미국 건국 초기의 전통적 (=절대적에 가깝다고 보이는) 자유(=freedom)보다는 법치 안에서의 (=소극적에 가깝다고 보이는) 자유(=liberty)를 조금 더 중시하게 되며, 링컨의 노예제 폐지를 정점으로 완전히 공화당 체제로 변모해 간 동 시대의 미국.
그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상징, 특히 뉴욕의 상징처럼 되버렸는데요.
현대에 들어와서 변하게 된 liberty의 복잡한 개념은 논외로 하고, 그 당시 기준 freedom과 liberty로 표현되는 미묘한 자유 개념의 차이는, 스팀잇 생태계에도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많이 던져주는 재미있는 사건이 아닌가 싶네요.
인간은 창공을 가르고 싶은 자유로운 욕망은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법이죠. 그러나, 비행기 개발, 패러 글라이딩 장비 개발 등을 통해서 그 새로운 자유를 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두 자유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또 새로운 자유를 추구하는 것.
어렵지만, 재미있는 주제 같네요.
스팀잇 하다보니 별걸 다 써보게 되네요. 부족하지만 좋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2: 백악관이 불타던 그 때 태어난 『미국 국가』
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1: 의외로 잘 모르는 3가지 『애국가』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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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있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제 여행기 블로그도 방문해 주세요 https://steemit.com/@rhoo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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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팔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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