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러시아

in kr •  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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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http://shoestring.kr/travel/eu/eu_35.html)

어느 날 ‘소련이 20세기에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20세기 이전의 러시아는 유럽의 변방에 불과한 나라일 뿐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몇 십년 동안 우주개발 분야에서 소련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자랑하게 된다.

즉,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사건은 이때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결국, 이 사건 때문에 미국은 1958년 미국의 첫 위성인 Explorer 1호를 급하게 발사해야만 했다.

하지만 미국이 발사한 인공위성은 소련이 1957년 11월 3일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 비해서 무게가 1/34에 불과한 아주 낮은 수준의 인공위성이었다.

또한 소련은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Yuri A. Gargarin)을 태운 보스토크(Vostok) 1호를 발사하여 1시간 29분 동안 인류 최초로 지구 상공을 일주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데 성공하였다.

이에 다시 다급해진 미국은 소련의 가가린이 우주여행을 하고 난 2주일 후인 1961년 5월 5일에 우주비행사 세퍼드(Alan B. Shepard)를 태운 유인 우주선을 우주로 발사했다.

하지만 이 우주선은 지구를 선회하지도 못하고 수직으로 187km까지 올라갔다가 15분 만에 그대로 대서양으로 귀환해야 하는 기술의 한계를 드러냈다.

역사상 한 번도 강대국이 되었던 적이 없었던 러시아가 1922년 소련으로 바뀐 후 약 30년 만에 어떻게 갑자기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초강대국이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던 중에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Pyotr I, 재위: 1682~1725)와 위대한 수학자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 ~ 1783)에 관한 내용을 책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에 의하면, 17세기 말의 러시아는 유럽에 비해 후진성을 면치 못하였다. 하지만, 대단한 개혁가였던 표트르 대제는 파리와 베를린에 있는 과학 학술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 Petersburg) 학술원을 설립했다.

오일러는 20세 때인 1727년에 처음 이 학술원에 참가하였고, 이후 그는 약 31년 동안 러시아에서 생활을 했으며 1783년 76세의 나이로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오일러:http://www.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189398&g_menu=044900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술원에는 베르누이 형제들과 골드바흐(Goldbach, Christian, 1690~1764) 등 유명한 수학자들이 많이 활동했다.

골드바흐: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2g0185a

18세기 이후, 러시아는 다시 유럽과의 학문적 교류가 거의 단절되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 이후 전체 유럽과 수준이 동등하거나 또는 이를 뛰어 넘는 독자적인 수학체계를 확립해 나갔다.

아래는 유명한 러시아의 수학자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로바체프스키(Lobachevsky, Nikolay Ivanovich, 1792~1856)는 헝가리의 야노슈 보요이와 함께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체비쇼프(Chebyshev, Pafnuty Lvovich, 1821~1894)는 소수(素數)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코발레프스카야(Kovalevskaya, Sofya Vasilyevna, 1850~1891)는 미분방정식 이론에 큰 공헌을 했다.

마르코프(Markov, Andrey Andreyevich, 1856~1922)는 확률 과정이론, 특히 마르코프 연쇄라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프리드만(Friedmann, Aleksandr Aleksandrovich, 1888~1925)은 벨기에의 신부 르메트르오 함께 빅뱅(대폭발) 이론을 만들었다.

콜모고로프(Kolmogorov, Andrey Nikolayevich, 1903~1987)는 확률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겔폰트(Gelfond, Aleksandr Osipovich, 1906~1968)는 초월수(超越數, 유리계수 대수방정식의 근이 되지 않는 수)의 연구에 기초가 되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 페렐만이 유명하다.

1910년대 러시아 사회는 자체적인 모순들 때문에 몇 번의 혁명들로 엄청난 혼란 속에 있었다.

하지만 1922년 소련의 탄생 이후 표트르 대제 때부터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온 수학과 과학의 능력을 우주개발에 극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하여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중국이 2006년 9월에 발표한 111 프로젝트이다.

111 프로젝트란 세계 100위권 이내의 유명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대가(大家)급에 속하는 학자 1000여명을 중국 내 100개 주요 대학의 100여개 학과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111 프로젝트: http://blog.daum.net/sung88192002/5583005

그리고 현재 미국이 초강대국인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의 선진화된 교육시장이 미국 이외 국가들의 많은 고급인력들을 흡수하고, 이 고급인력들이 졸업 이후에도 미국에 남아 현재의 미국을 지탱한다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변변한 과학자들이 없었던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갑자기 과학기술 분야에서 절대 강자가 된 것은 그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진 독일의 히틀러 때문이다.

이때, 히틀러를 피해서 세계 최고의 많은 독일의 유태인 과학자들(아인슈타인을 포함함.)이 미국으로 이민 왔다.

독일에서 이민온 이들 과학자들 덕분에 미국은 현재와 같은 세계 최고의 과학 기술과 금융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소련과 현재 중국의 111 프로젝트를 생각해 보면서 지금의 한국 현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예전에 제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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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평가 감사합니다.

수학전공이라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은데 안타깝게 스팀에서는 수학과 과학글이 인기가 별로 없네요ㅜㅜ
그래도 오일러얘기가 나오길래 반갑게 보팅하고 갑니다^^

수학 과학의 역사 이야기 좋아합니다. 팔로우할게요 ^^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ㅎㅎ 기초 과학이 튼튼한 나라가 강대국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