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활동, 소비적 활동에 관하여
부산의 테라로사 카페, 커피-중하, 빵-중상, 컨센트 없음, 매우 추움, 이색적 공장 인테리어(천장에 창문이 마음에 듬)
나에게는 생산적임에 대한 압박이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그 압박을 나는 견딘다. 정말 좋은 경우는 그 압박감을 이용해서 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견딘다. 너무 죄책감이 들거나 가끔 무엇인가 하고 싶은 날에 그 압박감은 진정 보상을 받는다.
이런 나의 압박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머니의 영향을 가장 크다고 본다.
어머니는 매우 부지런 하시고 현명하신 분이다. 나의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힘든 가운데 나와 우리 누나를 교육 시키셨다.
항상 하시는 말씀은 다른 사람 보다 더 열심히 해야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요즘은 공부하라고 항상 말씀해 주신다.
정말 안타깝게도, 그나마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는 정말 객관적으로 어머니가 만족하시는 만큼 열심히 살지 않는다.
항상 죄송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어머니께서 이렇게 영향을 주셔서 그나마 제 밥벌이하는 정도로 앞가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압박감은 대체로 나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라고 말한다.
그럼 더 생각해보자 생상과 소비에 관해서
그전에 생산과 소비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비교 시켜 보자.
나는 생산에 아나바다, 소비에 소비가 미덕 을 뽑고 싶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나바다는 실제로 생산이 아니다. 소비를 덜 하는 것이다. 요즘의 어린 아이들은 아나바다를 모를 것이다.
나 역시 어릴때 들은 이야기라 실제로 아나바다에 대해서 무엇을 하지 않았지만, 또한 생산과 별 관련이 없지만 아나바다라는 의미가 좋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근데 잘 생각해보면 나눠 쓰는게 나머지 3개랑 성격이 달라보이는데 그냥 아나바다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느낌이 좋다.
다시 생각해보니 생산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꿔쓰고 와 다시쓰고는 물물교환으로 내가 필요없는 것과 필요한 것을 바꿔 생산한다고 볼 수 있고, 다시 쓰는 것은 가치가 없는것을 다시 가치를 부여해 생산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미덕으로 넘어가자. 도데체 이 단어는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찾아보니 케인스 라는 경제학자가 만든 저축의역설 이라는 이론에서 나온 듯 하다. 자세히는 국민이 저축을 많이 하게 되면 경기를 악화 시키고 저축의 반대인 소비는 경기를 활성화 시키니 소비가 미덕이라는 의미인 듯 하다.
거시적으로 볼때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본다면 개인은 번돈을 아주 다 써버려서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면 내 노후나 갑작스러운 지출은 발생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기업이나 국가의 입장에서 사용하기 좋은 구호같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멀리 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상 저축과 소비의 균형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는 어떤식으로든 소비를 조장 시킨다. 따라서 내가 소비를 많이 한다는 말은 내 순수한 의지 보다는 기득권의 조작에 의해서 내 안정을 볼모삼아 소비를 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지 균형이 맞을 것이다. 물론 이런 좋은 글을 읽는 시간을 소비에 포함되지 않는다. 생산이다!
활동을 생산과 소비를 객관과 주관적인 관점으로 나눈 표
생산과 소비를 주관과 객관으로 위와 같이 나누어 보자. 총 4가지의 경우가 생긴다. 나의 활동을 각각의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 객관적으로 생산적인 활동
- 글을 스팀잇에 올려서 아주 소정의 댓가를 얻을 때이다.
- 주관적으로 생상적인 활동
- 지금과 같이 글을 써서 우쭐해 할때
- 객관적으로 소비하는 활동
- 내가 쓴글이 인터넷 어딘가 올라가면 실제로 어디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0101 로 저장되어 있다. 즉 내 글이 하드 디스크의 공간을 소비 했다.
- 주관적으로 소비하는 활동
- 지금 글을 써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글을 씀으로 인해 내 시간과 집중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소비하다보면 끝내는 내 뇌는 보상을 바란다. 그렇게 되면 또 늦게 자는 것이다.
내 머리에 한계가 온다. 사실 위의 분류는 순 엉터리다. 엉터리를 안 엉티러인척 쓰려고 하니 너무 힘들다.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가자.
활동을 생산과 소비를 객관과 주관적인 관점으로 나눈 표
우리가 생산과 소비를 어떻게 할때 행복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Case 1 은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룬 경우다.
사실 개인의 생산과 소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적인 느낌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첫번째 상황은 개인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룰 때 라고 느낄때 이다.
대체로 적당히 일도 하고 적당히 돈도 쓰고 그러면 이 상황에 속한다고 본다.
Case 2 소비를 좀 더 하는 경우
여자친구를 보았을 때 여자들이 대체로 좀 더 소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군에 있을 때 수건이 3개여도 별 다른 불편 없이 생활 했다. 또한 비누 하나로만 으로도 씼는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그정도로 열악한 상황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살 수 있을 것같다. 여자친구도 내가 느끼기에는 보통보다 소비를 덜 하는 편이지만 필요한 것들이 나보다 많다.
하지만 나도 느낀점은 생활에서 필요한 기호품들은 삶의 질을 다음과 같이는 증가시키는 것 같다.
시간 경과의 따른 만족도 변화에 대한 그래프
뭔가 제품을 사면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만족도가 최고는 아니다. 그러다 어느정도 사용하게 되면 익숙해지고 내 삶의 편의나 다양성을 추가 했기때문에 만족도가 최고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선함은 익숙함이 되고 극단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그 제품이 지겨워 진다. 즉 만족도가 마이너스 값은 지겨움인 상태 인것이다. 사람에 따라 이 그래프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대체로 이런 추세는 따른다고 본다. 저 기울기가 급격하면 소비 사이클이 더 짧을 것이고 완만하면 소비 사이클이 더 길 것이다. 한번 자신은 이 그래프가 어느정도 기울기 일지 생각해 보자.
Case 3 생산을 좀 더 하는 경우
아 드디어 내가 쓰고 싶은 곳이다. 나는 생산을 좀 더 할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압박감이 없는 상태도 행복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무엇인가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주관적 생상) 그리고 이 상태가 나에게 행복감을 느끼기에 좋다.
결론
지금 매우 만족한다. 나도 뭔가를 생산하고 있고 ( 비록 카페에서 15000원 이라는 객관적 소비를 했지만 ) 내 여자친구도 옆에서 글을 써서 생산하고 있다.( 비록 맥북을 사서 제공하여 약 1500000원 이라는 객관적 소비를 했지만 ) 우리의 생산물이 나의 어머니의 바램을 만족시켜 드리고 또한 우리의 경제적 풍족함을 가져다 주면 좋겠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행복의 항샹에 영구적으로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