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평론가의 신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으며 공감하는 순간이 많았다. 이렇게 생각이 비슷한 것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마음이 단지 호감이 아니라 존경심인 것은, 나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문장으로 풀어 제시한다는 것에 있다. 그런 문장을 마주할 때면 나의 기존 생각과 본질적으로 같기에 '공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번 신간을 읽으면서도 발견하는 순간이 많았다. 특히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에 대한 평소 생각을 대입하게 되는 문장이 많았다. 아래 그의 문장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를 정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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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폭력’이라는 말의 의연은 가급적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밝히면서 나는 폭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려고 했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더 섬세해질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기를 택하는 순간, 타인에 대한 잠재적/현실적 폭력이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p. 94)
--- 폭력적이지 않은 영화가 좋은 영화다. 곧, 사람/사건의 진실에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중도 포기한 영화는 좋지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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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깊이’라는 게 뭐냐고 불평을 터뜨릴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그리 싫지가 않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좋은 작품에는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그 어둠 속에 앉아있어본 작가는 대낮의 햇살에서도 영혼을 느낄 것이다. 내게 작품의 깊이란 곧 ‘인간 이해’의 깊이다. (p. 201)
--- 깊이 있는 영화가 좋다. 내게 작품의 깊이란 곧 인간 이해의 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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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에 한 번 보면 다 알겠는 평면적 캐릭터가 나온다는 것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타인이란 한 번 보면 대충 다 파악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믿고 있다는 뜻이다. 언젠가 쓴 적 있지만,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 것이며 타인의 진실이란 얼마나 섬세한 것인지를 편리하게 망각한 채로 행하는 모든 일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p. 390)
--- 인간 이해의 깊이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복잡한 것이며 그 복잡성을 잘 이해할 수록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리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과 세상을 소재 삼으면서 진리를 무시하는 일은 폭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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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문학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니, 단순한 것이 실은 복잡한 것임을 끈질기게 지켜보는 일이다. 진실은 단순한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진실은 복잡한 것이라는 말도 맞다.’ (p. 387)
--- '문학'의 자리에 '영화'를 넣어도 된다. 단순한 것이 실은 복잡한 것임을 끈질기게 지켜보는 영화는 훌륭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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