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당의 차 이야기 23.
벌교 부용산에서 시작한 모릿재 생활은 선암사에 머물렀던 때와 달리 일상을 뿌리부터 바꾸어야 했습니다. 절 생활은 숙식을 걱정할 일이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자급자족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덕유산에서는 인근에 친구들이 있어 그들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벌교는 그야말로 생판 외지(外地)였습니다. 그럼에도 별로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처지겠느냐는 낙관적 생각이 없다면 산 생활이 힘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산에서 살겠다는 사람이 끼니 걱정을 한다면 하산해야 합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면 된다’는 각오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산은 언제나 친구가 되어 줍니다. 깊은 산일수록은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미천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될 때쯤이면 산 생활은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부용산 모릿제에 짐을 풀은 나는 대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곳에 뒷간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똥 쌀 공간이 없다는 것은 그간 귀신만이 살고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살 수 있으려면 뒷간부터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집 주변은 똥냄새로 가득찰 것입니다.
난 산의 지형을 살펴 집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적당한 곳을 발견하고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마침 놀러온 친구가 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 뒷간을 지으려 하는데 함께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재미있을 것 같다며 기꺼이 동참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커다란 바위 돌을 세 개를 준비했습니다. 발을 디디고 앉을 돌 두 개와 뒤를 씻기 위해 앉을 또 하나의 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이 흘러들어 오도록 개울에서 호스를 연결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반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보름에 걸친 대공사를 벌린 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뒷간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자연경관을 즐기며 뒤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뒤를 보고 난 후에도 재를 뿌려 냄새까지 없어지게 만들고 이것을 거름으로 만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선암사에 있는 뒷간을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외관은 그럴듯해도 내가 만든 곳보다 더 훌륭한 뒷간이라 할 수없습니다.
내가 뒷간에 대해 이처럼 장황스럽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나의 차(茶) 이야기와 중요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비우는 문제에 소흘하기 쉽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먹는 것에만 신경을 써서 좋은 음식 맛있는 것을 찾아 돌아다니지만 정작 이를 소화시키고 배출시는 문제는 무식하기가 이를대가 없습니다. 그 결과 몸에 쓰레기가 쌓이고 그것이 혈액순환을 막아 몸을 부패시키게 됩니다.
이는 머리를 비우는 문제도 여기에 적용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얻는 것에는 신경쓰지만, 정작 그것에 매달리다가 신세 망칠 수 있음은 간과합니다. 이처럼 입력과 함께 출력의 균형을 잡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삶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뒷간이 완성되자 부용산 모릿제는 계곡에 물이 흐르고 약수터까지 옆에 있는 멋진 산막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주변에 상당한 차나무들이 산재되어 있다는 것을 보면서 내가 갑자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방구들만 따뜻해진다면 산 생활은 그야 말로 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모리선생, 계십니까?”
누군가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보니 작업복 차림의 한상훈씨였습니다. 비록 그의 인상이 험상굿어 사찰 입구에 서있는 사천왕(四天王)처럼 생겼지만 이런 이들이 보통 마음 깊은 곳에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마당에 들어선 그는 툇마루에 걸터앉으면서 집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제 살만한 곳이 되었군요. 그나저나 차 만드는 법을 배우시겠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산에서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앉자마자 본론으로 치고 들어오는 그의 말 뽄새 때문에 나도 솔직히 답했습니다.
“왜 산에서 살려고 합니까?”
이번에는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산은 움직인 만큼 먹고사는 길을 알려줍디다. 그래서 좋습니다.”
“....”
내 대답에 껄껄 웃으며 다기(茶器)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난 방안에 들어가 다판을 들고 나왔습니다. 포트에 물을 끓이고 친구에게 얻은 녹차를 다관(茶罐)에 넣고 나름 차를 우려내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맛을 본 후 말없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차 한 봉지를 꺼냈습니다.
“내가 만든 것인데 이것으로 차를 내 보실래요?”
그가 꺼낸 차는 색이 검었고 별다른 향(香)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관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붙자 놀랍게도 다관 안에서 은은한 향기가 올라와 주변에 퍼져 나갔습니다. 앞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차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어째서 내 것과 이리 다른 것이지요?”
“거사님의 차는 녹차(綠茶)이고 내 것은 그냥 차(茶)이기 때문이지요,”
그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그때는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1997년 당시 까지만 해도 차는 모두 녹차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난 차의 세계에 대해서 난 새롭게 개안(開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차에는 크게 발효차와 녹차류로 구분할 수 있고, 녹차의 경우도 증기로 쪄서 만드는 증차(蒸茶)류와 솥에 직접 볶아내는 ‘덖음 차’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했던 ‘차’란 뜻은 덖음차를 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난 그 차이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덖음차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게 쉽지 않은 작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덖음차는 일명 부초차(釜炒茶)라고 합니다. 솥에 볶아서 만들었다는 뜻이요. 하지만 이 차를 만들려면 찻잎부터 잘 선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건 말로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요. 따라와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