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엽기적인 그녀를 케이블 티브이에서 다시 봤습니다. 볼 때마다 재미 있어요. 질리지 않아요. 아마도 달콤새콤한 사랑이야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랑 중독이죠.
특히 견우 아버지로 나오는 김인문이 능청스럽게 윤초시 댁 손녀딸이야기 할 때 저는 자지러집니다. 음...그 부분 보려고 이 영화를 보는 건지도 모릅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어쩜 이렇게 맛깔스럽게 패러디 할 수 있냐구요? 미쵸요~~~ 누가 그랬나요? 신은 디테일에 있다구요,,,, 아흑, 백배 공감입니다.
그녀는 엽기적입니다.
어느 정도 엽기적이냐구요?
그녀 말을 직접 들어보세요.
너 하늘이 왜 파란줄 알아??
나를 위해서야.. 내가 하늘은 파랐길 바라니깐 파란거야.
너 불은 왜 뜨거운줄 알아?
나를 위해서야.. 내가 불은 뜨겁길 원하니깐 뜨거운거야.
너, 니가 태어난 이유가 뭔줄 알아??
나를 위해서야.
(야 내가 너보다 빨리 태어났는데..어떻게 너를 위해서니?)
너 예배한다 라는 말도 몰라?
예수님의 탄생을 위해서 베드로가 왔잖아..그러니깐 대
(허걱)
나 시험보는 날은 노팬티다?
근데 나 오늘 시험봤다
나 잡아봐라~
당신이 수컷이라면 이렇게 엽기적으로 귀여운 그녀가,,,,, 사랑스러울까요? 사랑스럽지 않을까요? 결국 견우는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사랑에 빠지면 더 많이 알게 됩니다. <문화유산답시기>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우리는 유홍준 선생에게 귀가 따갑게 들었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
원문은 약간 다릅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한 말인데 기계 유씨 유홍준 선생이 살짝 비틀었죠.
그러니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진실로 알지 못한다면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네요.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그 때 보이는 것은 그 전에 본 것과 다르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해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요? 사랑하면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잖아요.
견우는 엽기적인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알게 됩니다.
술은 절대 세 잔 이상 먹이면 안 되구요,아무나 패거든요. 그리고 카페가면,콜라나 주스 마시지 말고,커피드세요. 가끔 때리면,안 아파도 아픈척 하거나,아파도 안 아픈척 하는거 좋아해요.만난지100일 되면,강의실 찾아가서,장미꽃 한 송이 내밀어 보세요,디게 좋아할거에요.
검도하고 스쿼시는 꼭 배워 두세요. 가끔 유치장을 가는것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하구요.가끔 죽인다고 협박하면,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야 편해요. 그리고 가끔,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신발도 바꿔 신어 주세요. 마지막으로, 글 쓰는거 좋아하거든요, 칭찬 많이 해주세요.
사실 엽기적인 그녀는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사랑했던 남자를 잃어버렸거든요. 엽기적인 행동은 사랑의 상실감을 위악적으로 표현한 것일 터입니다. 너무 큰 슬픔이어서 버텨내기가 쉽지 않으니 그런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는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녀를 위로해 주려고 견우가 놀이공원에서 생일축하 이벤트를 합니다. 거기서 우연히 탈영병을 만나고, 그녀가 인질로 잡힙니다. 탈영병이 탈영한 이유는 매번 같습니다. 고무신 때문이죠,
나에게 애인이 있었어. 1년 동안 매주마다 빠짐없이 면회를 왔었지.... 너무 행복했었어... 근데... 그년이 언제서 부턴지, 그 치질 걸린 위병소 하사새끼 하고 눈이 맞아버린 거야. 난 그걸 그 치질걸린 위병소 하사 새끼가 제대하고 나서야 알게 됬어 흑흑... 씨발.... 게다가 나 군대간 사이에 애기를 난 그 개새끼 까지 똥개하고 눈이 맞어서 가출해 버렸다는거야, 요크셔테리어한테...
씨팔... 나는 똥을 밟을 확률이 97 퍼센트나 되는 아주 좆도 재수 없는 놈이야! 아 씨팔! 야,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알어? 씨팔? 아 좆같아 증말,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왜 우왝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는 세상입니다. 당연합니다. 처녀 잘못만이 아니기 때문이죠. 애를 혼자 만들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위병소 하사가 <태양의 후예> 진구처럼 준수하다면 애인이 신발 거꾸로 신을 수 있죠. 근데 키우던 개새끼까지 요키한테 눈맞아 가출해버렸으니 탈영병은 완전 멘붕이겠네요. 나쁜 일은 항상 어깨동무하고 오는 법이지 절대로 혼자 오지 않아요. 씨팔을 입에 달고 사는 탈영병 오빠에게 그녀가 말합니다.
오빠같은 사람은 사랑이 뭔지 더 알아야되요!
사랑이 뭔지 알려면 우리 모두 더 살아봐야 된다구요!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 놓아줄 줄도 알아야 되요.
기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어도 마음속에 품고 놓아주지 못하면서, 탈영병 오빠에게 멋진 멘트 날립니다. 어쩌면 그녀가 그녀에게 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견우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 그녀 스스로가 미웠을 겁니다. 아마도 그 말 속에 복선이 있다고 저는 봤어요. 견우를 사랑하려면 옛사랑을 놔줘야 한다는 것을요,,,, 빈 손이어야 우리는 다른 것을 잡을 수 있잖아요.
견우와 그녀는 헤어집니다.
북한강이 멀리 보이는 언덕 위 소나무 밑에 서로에게 쓴 편지를 봉인해서 타입캡슐로 묻어놓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마음이 정리되면 만나서 같이 보자고 언약 하면서..... 제가 이 영화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소나무 밑에서 만난 노인이 하는 말입니다.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 란다"
저는 이 영화의 주제는 노인의 말 속에 있다고 봤습니다. 견우는 끝없이 그녀를 생각하고, 기다립니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곧 사랑이죠.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끝없이 기다릴 겁니다. 심지어 견우는 소나무가 벼락을 맞아 죽자 그녀가 거기 와서 당황할까봐 똑 같은 소나무를 심어 놓죠.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를 모를 때 이사를 갈 수 없는 것처럼요. 사랑하면 지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견우와 소식이 두절되어 연락할 수 조차 없는 그녀에게 노인은 위로의 말을 건냅니다. 운명조차도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강신주 선생의 <철학, 삶을 만나다>에 나오는 알튀세르의 우연성의 철학을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와 스피노자와 알튀세르와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유물론 철학의 계보에서 '우연성'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한 마디로 "만남의 철학"이죠.
원자를 사람으로 비유해보세요. 사람들이 길을 가죠. 만나나요? 만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약간의 클리나멘을 통해 우리는 만납니다. 클리나멘은 아주 조그만 편차 입니다. 살짝 기울어진 거죠. 당신과 내가 거리에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기울어짐이 없기 때문이죠. 견우와 그녀가 만나는 것은 우연입니다. 어떤 기울어짐으로,,,, 알튀세르는 만남을 빗방울에 비유하죠. 이 부분은 숨 넘어갈만큼 아름답죠. 빗방울이 허공에서 떨어지죠. 서로 평행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빗방울이 바람이나 어떤 계기에 의해 살짝 흔들리고 (당신이 어떤 여자를, 남자를 만났을 때 살짝 마음이 흔들리듯) 그 빗방울은 옆에 빗방울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만남이 세계를 형성했다고....에피쿠로스가, 알튀세르가, 마르크스가 말합니다. 견우는 그녀와 우연히 만나고, 만남은 이제 새로운 사태를 야기합니다.
당신이 어떤 주식을 만나죠. 우연히 만납니다. 우연히 만나지 않은 주식이 있나요? 그리고 인생이 바뀌게 되죠. 주로 패가망신 쪽 확률이 높지만 아주 간혹 많은 돈을 버는 행운도 누립니다. 간혹 필연을 주장하기도 해요. 노사연이죠.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노사연은 필연의 철학자 입니다. 필연적으로, 운명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다고 우연을 포장하죠. 그러나 그건 억지 입니다. 아니, 만남을 멋찌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입니다. 우연히 길가다가 만났다고 하는 것보다 뭔가 운명적인 만남이 그럴싸하고 뽀다구 나잖아요. 그러니깐 우리는 운명이라는 신비의 아우라로 우리의 사랑을 감싸고 싶습니다. <태양의 후예>에서도 나오더군요. 세 번을 우연히 만나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니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랑에 '반드시'빠질 수 밖에 없는 연인이라고..... 개 풀뜯어 먹는 소리지만, 이런 멘트 날리면 거의 초죽음이죠.
그래요.
우리가 인간 사이에 만남이든, 주식과 만남이든 그 만남은 나를 변하게 하죠.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식을 통해 돈을 벌려고 시작하는데 고민하고 불행할 가능성이 더 높죠. 거꾸로 된 겁니다. 행복하려고 시작한 주식이 불행을 가져다 줍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혹시 지극한 노력, 운명이 다리를 놓아줄만큼 최선을 다하는 걸까요? 너무 거창하게 견강부회하는 것 같아 줄일께요. 다만,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떤 자세만큼은 다시 한번 생각해봤음 해서 사족이 늘어졌네요. 견우와 그녀가 다시 만나서 행복을 꿈꾸듯, 당신도, 멋진 주식을 만나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아, 주식은 얼마나 끝없는 기다림이던가요? 주식은 사랑의 기다림 이상의 고통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너무 좋아하는 견우 아버지가 견우들으라고 한 말 가져옵니다. (견우가 그녀와 헤어지고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그녀가 죽었을 거라면서 놀리는 부분이죠)
윤초시네 손녀딸.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자기가 죽으면 그 남자애랑 같이 묻어 달라고 했데
견우의 눈이 휘둥그래지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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