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 중에서 누군가는 짧게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머물기도 하지만 잠시 뿐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인생에서 그저 스쳐가는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내 마음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찾아온 사랑은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한다. 여기 모든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남자가 있다. 오직 사랑에 의해 삶이 변화한 이들의 이야기,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이다.
[오프닝은 언제나 ‘상징성’을 지닌다]
영화의 첫 장면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불빛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윽고 불빛의 정체가 오토바이 조명이었던 것이 보인다. 불빛이 점점 사그라지며 달동네 전체를 매우는 오토바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영화에서 ‘빛’과 ‘오토바이 소리’는 상징성을 지닌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를 생각하는 인물의 ‘사랑’을 뜻한다. 이 때 말하는 사랑은 반드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아니다. 그것 보다는 오랜 세월을 산 사람들만이 지닐 수 있는 인류애에 가깝다. 영화에 등장하는 오토바이 소리는 달동네의 아침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만석은 군봉이 주차장에 늦지 않도록 직접 그의 집 앞에서 오토바이 시동을 걸며 소리를 낸다. 이렇게 그의 오토바이 소리는 사람들의 아침을 깨워주는 만석의 사랑을 뜻한다.
그렇다면 빛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빛 역시 오토바이 소리와 마찬가지로 인물의 사랑을 뜻한다. 오토바이 소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토바이는 여러 사람을 위한 사랑이지만 빛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폐휴지를 주우러 다니는 송씨는 매일 새벽마다 우유배달을 다니는 만석을 위해 항상 집 앞 가로등을 켜놓는다. 길이 어두우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새벽마다 켜지는 가로등 ‘불빛’은 만석을 향한 송씨의 사랑을 상징한다. 이렇게 상징성을 지닌 빛과 오토바이 소리를 오프닝에 보여줌으로써 앞 이야기를 위한 복선을 제시한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반복되면 사랑]
송씨와의 첫 만남에서 만석은 팔다 남은 우유 하나를 준다. 그리고 계속해서 송씨에게 남은 우유를 모아서 가져다주기 시작한다.
처음 송씨에게 우유를 줄 때 그에 대한 만석의 마음은 단순한 연민 또는 동질감이었다. 나이가 많음에도 새벽부터 나와 추운 날씨를 견디며 폐휴지를 줍는 송씨의 처지가 어쩐지 자신과 비슷해보였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과 다른 감정이었다. 왠지 모르게 송씨에게 우유를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래서 만석은 그렇게 했다.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여러 개의 우유를 봉투에 넣어 가져다주었다. 송씨는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또 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매일매일 남은 우유를 갖다 주기 시작했다. 우유를 받고 미소 짓는 송씨의 모습을 보는 것이 하루의 낙이 되었다.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인물의 행보에는 ‘필연성’이 필요하다]
만석의 직업은 우유배달부이다. 그런데 왜 하필 ‘우유’배달부일까. 새벽에 배달을 하는 직업이라면 신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꼭 우유배달부여야만 했을까. 이 영화에서 ‘우유’는 만석에게 특별한 존재이다. 만석의 아내는 죽기 전 그에게 우유를 사다 달라 했다. 매번 화를 내고 거절하던 만석은 아픈 아내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이 때 우유는 아내에 대한 만석의 ‘사랑’을 뜻한다. 그리고 아내가 떠난 후 그는 우유배달부가 되었다. 그에게 우유는 아내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만석에게 우유란 곧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이미 떠났지만 그는 항상 아내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바로 매일 우유를 배달하면서 말이다. 그에게 우유는 미련이기도 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가 이러한 우유를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시작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이다. 이는 오랫동안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아내를 마침내 떠나보내려 하는 그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다. 송씨는 이를 알고 있었다. 그가 준 우유의 가치를 알기에 매번 소화시키지 못하고 탈이 나는데도 꿋꿋이 받았던 것이다.
여기서 송씨가 수많은 일들 중 폐휴지를 줍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 만석에게 우유는 많은 의미를 지닌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도 큰 배려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단지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는 부족하다. 우유가 또 다른 배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송씨에게 필요한 건 사랑도 있지만 조금 더 현실적인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돈’이다. 따라서 만석이 선물한 우유는 사랑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소득도 안겨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유로 물질적 소득을 얻는 것이 뭐가 있을까. 바로 폐휴지 줍기이다. 우유를 다 먹고 나면 폐휴지가 생기고 그것을 모아서 팔면 돈이 된다. 따라서 우유가 그에게 결핍된 것들을 모두 채워주는 선물이 되려면 송씨의 직업은 폐휴지 줍는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송씨는 이름이 없이 성만 있었다. 만석은 그런 송씨에게 ‘이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준다.
신분, 즉 이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딘가에 소속됨을 뜻한다. 지금까지 송씨의 삶은 불안정했다. 이름이 없는 송씨에게 기댈 곳이라곤 없었고 그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나 송씨에게 이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순간, 그녀의 삶에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안정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주민등록증이 생기고, 그로 인해 금전적 혜택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지어준 것이 ‘만석’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살피게 됐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이따금씩 애착이 가는 물건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그렇게 이름을 받은 것들은 ‘그 사람의 것’이라는 소속감이 생긴다. 그러면서 자신을 보듬어 줄 존재가 생긴다. 송씨가 그랬다. 만석에게 이름을 받음으로써 송씨는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이고 보살핌을 받는, 즉 누군가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이름이 없던 송씨는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준 만석에 의해 안정적인 삶을 얻게 되었다.
[어느 순간 ‘고물’이 되어버린 그들]
만석은 주말이니 약수터에 가라는 손녀 연아의 말에 함께 가자고 제안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군봉은 아내의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을 부르지만 대부분 부양을 시킬까 걱정하며 서로에게 미룬다.
나이가 들면 한 순간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버린다. 늙었다는 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 몫은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맞닥뜨린 자식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거부감이다. 참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자식들도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이 생기기 전에는 마냥 효자 효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끌어야 할 ‘가정’이 생기면서 늙은 부모는 저 뒤편으로 밀려나게 된다. 더 이상 예전처럼 마냥 부모를 섬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그저 욕할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지금 눈앞에 있는 자식과 자녀들이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현실’이기 때문이다.
만석은 군봉의 고물 택시를 보며 자신들의 처지와 닮았다 말한다. 고물, 힘겹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겨우 자식들을 키워놓은 것에 대한 결과가 그것이었다.
[삶의 변화는 작은 조짐에서 시작된다]
송씨는 만석이 써준 연애편지를 읽지 못해 약속 시간에 늦은 후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송씨는 오랜 세월동안 글을 모르는 까막눈으로 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것을 고칠 의지가 별로 없었다. 송씨에게 이렇게 늦은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큰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 와서 세상에 대해 더 알아가 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석을 만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그에게 이름을 받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았고 지금이 무언가를 배우기에 전혀 늦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석과의 소통, 즉 ‘사랑’을 위해서는 글을 배워야만 했다. 글을 알아야 만석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그에게 받은 애정에 보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송씨가 가장 처음 배운 글자는 만석의 이름 석 자였다. 만석은 송씨가 글을 배우고 삶을 변화할 수 있는 의지를 갖게 해준 가장 큰 디딤돌이었다. 이렇게 그동안 외면해왔던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송씨의 인생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의 의미]
만석은 송씨의 생일 선물로 머리핀을 사주고 송씨는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가죽 장갑을 사준다.
이들의 선물은 단순히 잠깐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선물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먼저 만석이 선물한 머리핀은 가장 먼저 ‘여성성’을 지닌다. 송씨는 나이를 먹고 늙어가면서 점차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만석은 송씨에게 그가 여성, 그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꽃무늬 머리핀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여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은 꽃이었다. 이렇게 꽃을 머리에 다는 것으로 송씨가 스스로가 가진 여성스러움을 깨닫길 바랐던 것이다.
만석의 선물이 ‘잃어버린 여성스러움’을 뜻한다면 송씨의 선물은 그에 대한 ‘깊은 관심’을 뜻한다. 송씨는 오랫동안 만석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가 날씨가 추움에도 불구하고 장갑을 끼고 다니지 않고, 손이 아프도록 오토바이 손잡이를 잡고 다닌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를 위해 손을 따뜻하게 할 수 있고 아프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장갑을 선물한 것이다.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군봉은 방에 일부로 가스 불을 피워놓고 아내와 함께 세상을 떠난다. 만석은 그를 잊으려 고향으로 떠난 송씨를 찾아가 죽기 전날까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 군봉은 자신들의 처지를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군봉의 죽음을 보며 ‘호상’이라 한다. 만석은 그것을 듣고 세상에 호상이 어디 있냐 물으며 화를 낸다. 군봉의 죽음 이후 그것에 대한 송씨와 만석의 두려움은 커져갔고 그들은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것이 두려워 이별을 택하려 한다. 그러나 이내 깨달음이 찾아온다. 어차피 언젠가 죽을 거라면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택한다. 군봉의 죽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들의 말처럼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가 자신의 아내와 함께, 사랑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삶의 끝에서 그들이 인생에 남은 것은 돈도, 자식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내 곁에 있는, 몸으로 느끼고 있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후회 없이 사랑하는 이와 사랑했다. 누군가는 평생을 함께 있던 ‘당신’과, 또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알게 해준 ‘그대’와 사랑을 하고 그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 전 그들의 삶은 사랑으로 가득 차있었다.
[삶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는 모두 주변의 있는 사람들과 일상들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 중 결코 당연한 것은 없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 당연한 것이란 없었다. 나이가 들면 나라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노후연금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바다도, 항상 나의 곁에 있어주는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그들은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하였고 그것에서 오는 행복을 마음껏 누렸다.
사람들은 이렇게 감사할 것들을 잊고 살곤 한다. 세상이 좋아지고 많은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인생에서 ‘새로운 것’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항상 기억해두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 당연한 것이란 없고 모든 것이 새롭고, 감사하고, 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모두가 영화 속 인물들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면서 후회 없는 생애를 보내길 바란다.
저도 이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보고 여운이 있으신분들은 꼭 원작인 웹툰을 보시는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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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웹툰 추천드려요!!! 자주 소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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