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넘어서는 스포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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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은 서해 바다 서쪽의 나라의 국명에 가운데 중자를 붙여 주지 않을랍니다. 자기네 문자긴 하지만 가운데 중자가 아깝고 치사해서 부르지 못하겠습니다. 영어로 부르겠습니다. 차이나 사람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니 내일이라도 올림픽 걷어치우고 귀국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해 주고 싶죠. "축구도 못하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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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사람들의 횡포에 화딱지를 내다보니 2002년과 1988년의 우리 홈 어드밴티지도 스멀스멀 되살아나지만 그래도 우리가 저 정도는 아니지 않았을까 애써 스스로를 단속하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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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란 게 참 그렇습니다. 운동경기일 뿐인데 이게 어떻게 얽히면 그 어떤 정치적 문제 이상으로 사람들을 격동시키고, 더 높이 더 빨리 더 힘차게 몸을 쓰는 일일 뿐인데 사람들의 정신을 나가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스포츠의 역사는 단순한 운동 경기의 역사가 아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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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니스의 별, 아서 애시도 그 중 한 사람일 겁니다.
"흑인은 테니스를 칠 수 없다."는 법이 버젓이 존재했던 버지니아에서 자라난 흑인 애시. 그는 테니스의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흑인을 오지도 못하게 했던 남아공 US 오픈을 몇 번이나 두드려 기어코 참가해 우승했고 테니스의 본고장이나 본산이라 할 윔블던 테니스 코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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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세상이 나를 테니스 선수로만 기억한다면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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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권운동가로 자리매김합니다. 미국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가던 그 해, 그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됐죠. 수혈로 인해 AIDS에 걸린 뒤에도 그는 열정적으로 AIDS 문제를 홍보하고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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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불치병 앞에서 그가 한 말은 유명합니다. "왜 하필 저입니까?라고 묻지 않는 이유는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들마다 신에게 왜 저에게 이런 행운을 주십니까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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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에서 봉변당한 한국 선수단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라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수십 번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차이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고, 앞으로 여러분들이 그럴 때 '왜 나냐?'고 묻지 않았고 묻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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