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트라이사이클링

in kr •  3 years ago 

혁명적 트라이사이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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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배우는 게 더디다. 그리고 익숙해지는 게 힘든 편이다. 남들은 30분이면 따라 하는 일을 하루 이틀 걸리기도 하고, 뭐든 폼 갖추는 건 그야말로 구경거리가 될 만큼 엉성하다. 골프 한 번 배워 볼까 골프 레슨을 받아 본 적이 있는데 당시 코치들이 구경하러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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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렇게 이상하게 휘두를 수 있을까.” 코치가 목이 쉬도록 얘기해 줘도 내 머리는 들렸고 스탠스는 꼬였고 팔은 부드럽게 꺾이지 않았다. 결국 골프는 때려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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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일도 마찬가지고 기계 같은 걸 다루는 건 거의 개발에 가위손이다. 그래서 뭔가 새로 배우는 걸 두려워하고 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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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릉이 앱을 깐 지가 몇 년이 지났고 내 자전거를 타고 전철역까지 자주 나다니는데 따릉이를 이용해 본 적이 없다. 가입하고 또 뭐하고 하는 간단한 절차가 귀찮아서다.....가 아니라 두려워서(?)다. 설명서를 들여다보고 안내문을 읽는 게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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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놓고 보면 별 게 아닌데 시도하는 발걸음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그런데 오늘 집에 걸어오려다가 문득 이 상큼한 가을 공기를 자전거 타고 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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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따릉이 한 번 이용해 보자. 앱을 열고 가입을 하는데 카톡으로 가입했더니 또 뭐가 안돼서 다시 돌아오고, 그러다 전화가 와서 한동안 통화하다보니 다시 리셋돼 있고..... 길거리에서 20분을 잡아먹었다. 다시 가입을 하고 결제에 성공하고 득의양양 따릉이를 찾는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도처에 눈에 띄던 따릉이 거치대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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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이하게 앱을 켜고 위치 찾기를 했는데 처음 간 곳은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다시 위치앱을 활용해서 간 거치대에는 딱 한 대가 남아 있었다. 와 드디어 따릉이를 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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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떻게 된 게 QR인증이 제대로 안된다. 분명히 핸드폰 카메라를 잘 갖다 댔는데 영 먹통이었다. 하 이상하네...... 누가 자전거를 세우러 왔길래 물었다. 그분이 이상한데? 하면서 핸드폰을 건네서 대자마자 제꺽 자전거가 열리는 게 아닌가. 무슨 자전거가 초짜를 구분이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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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꼴 다 본다는 눈길로 핸드폰을 돌려주고 돌아가는 분을 또 불러야 했다. “제가 처음이라 그런데 이거 안장이 이거밖에 안올라가나요?” 안장이 올라가지 않아 무슨 세발 자전거 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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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분이 파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새싹 자전거예요. 애들 타는 거라 안장이 그것 밖에 안올라가요. 제가 갖다 둔 거 타세..... 어? 누가 가져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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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결국 새싹 자전거였다. 매우 악몽같은 동심의 시작.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수준의 트라이시클링이 시작됐다. 무릎에 쥐가 나도록 페달을 밟아도 속도는 나지 않았다. 가양대교를 건너 오는데 연신 뒷사람이 추월하면서 한 번씩 보고 갔다. 저 사람 저걸로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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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도 자존심이 있어서 자전거에서 내려 걷지는 아니했다. 낑낑대며 페달을 굴렸다. 꽉 막혀 있던 가양대교 위에 서 있던 차량 운전자들은 매우 진기한 구경을 했을 것이다. 가방 멘 50대 아저씨가 앙징맞은 자전거를 타고 영화 <벤허>의 노예들이 노를 젓듯 끙끙거리며 페달을 밟는 모습을.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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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양대교를 건너왔다. 집 근처의 거치대는 알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갈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가양대교 근처의 거치대를 앱 켜고 찾았다. 양천향교 방향에 있는 것 같아 한참을 갔는데 거치대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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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앱을 켜고 지도를 확대하니 길 건너에서 헤매고 있었다. 전철역에서 500미터는 왔는데 거치대는 길 건너편 전철역 출입구 코 앞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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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치대를 찾았는데 자리가 없다. 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지? 거치대에 넣으라고 안내돼 있는데..... 누가 혹시 자전거를 꺼내 가면 빈자리가 나지 않을까 기다렸는데 가망이 없어 보였다.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는 거치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길거리에 세우고 간다. 어 저러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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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냥 두고 가면 돼요? 거치대 자리가 나야 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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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듯 쳐다본다. 아니 그럼 빈 자리 안나면 밤 새라고? “길거리에 두고 레버만 당기시면 돼요.” 아 그렇구나. 따릉이를 세우고 레버를 당기고 반환 확인 멘트를 듣고서야 나의 첫 따릉이 대여가 끝났다. 시간을 보니 45분이 넘어 있었다. 그냥 걸어왔어도 가양대교를 넘어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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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뭐한건가 싶다가도 이 개발에 가위손에 곰발바닥에 공룡 센스의 내가 따릉이 이용에 성공한 것에 커다란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 참 웃기는 게 그 45분 세 발 자전거 식으로 탔다고 전철역에 매어 있던 내 자전거에 오르니 바로 기우뚱이다. 어 이 자전거 왜 이렇게 높아! 마침 전화온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인간이 참 간사해 그지?” 하자 친구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멍청한 거야. 그리고 불쌍한 거고.”

어찌 되었건 나는 오늘 따릉이를 탔다. 새싹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운동은 더 너끈히 됐을 것이다. 지금도 허벅지에 힘이 없다....... 이렇게 역사는 발전하고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억지로 되뇌 본다. 오늘 나는 혁명적 트라이사이클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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