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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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벨을 눌렀는데 집에 아무도 안온 것 같다면서 “강아무개씨가 서류 같은 걸 보낸 거 같아요.” 아 그게 왔구나. 동아리 친구가 보낸 자작 시모음 제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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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출판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 문학 동아리 대표를 한 다른 친구의 추천사를 머리에 이고, 그 동안 자신이 써왔던 시들을 묶은 것이었지요. 언젠가 녀석이 단톡방에서 받을 놈 있어? 손 들길래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라면 받침대로 쓸라고?” “이 자슥이 문학중년 김형민을 뭘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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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34년이니 만난지 34년 된 친구입니다. 오히려 대학 때에는 좀 서먹했었죠. 거친 것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예민하고, 말 막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누구보다 남 생각하는 건 두터운 친구인 건 알았는데 스스럼이 없어지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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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보다 그놈의 ‘정파’가 좀 다른 것도 한몫을 했습니다. “너는 씨바 왜 그래?” “니들은 씨바 왜 그러는데?”의 대결을 몇 번 하다 보면 친한 사람도 멀어질 때가 많았으니까요. 얼굴 붉히고 싸운 적도 여러 번이고 서로 때려치우자고 문 쾅 닫고 나간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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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얼치기 놀음도 시들해지던 졸업반 즈음이었습니다. 학교에 피라미드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른바 다단계 조직이 학생운동권에 침투한 거죠. 대관절 나보다 훨씬 머리 좋은 사람들이 무슨 영문으로 그런 데 빠져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자본주의 유통 구조를 혁명적으로 개선한” 다단계 조직은 많은 학교 여러 과와 동아리를 쑥밭으로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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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아리도 일부 연루가 되어 그 ‘괴수’(?)는 기피인물 1호로 찍혀 있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단단히 일러 뒀습니다. “그 인간 나타나면 도서관으로 나 부르러 와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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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밉더군요. “너 나 믿지? 3일만 투자해 봐라.”는 식으로 인간관계를 이용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부터 그 외 갖가지 행태는 사람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분노에 이르게 하는데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몇 년 함께 구르며 동고동락한 ‘전우’같은 사람들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피라미드의 늪에 빠지고 있는 자체가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가 새파래진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형, 그 형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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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듯이 동아리방에 달려가보니 떡 하니 앉아 있길래 대놓고 그랬습니다. “왜 왔어요? 나가요.” “내가 못올 데를 왔냐. 무슨 소리냐.” “와도 될 데를 왔다고 생각하나? 빨리 나가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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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유순하고 평화주의가 몸에 배어 물리적 충돌을 극히 꺼리는 저였지만 정말 의자라도 들어 찍고 싶었습니다. 이놈의 유식한 선배가 또 기묘한 문자를 씁니다. “내가 뭐 페스트 환자라도 되냐.” 그때 저는 이를 갈면서 이렇게 되받았습니다. “페스트 환자는 불쌍하기나 하지 씨바. 나오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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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빛이 확 변하더군요. 오케이. 좀 반응이 오네. 넌 더 당해 봐야 돼. 선배면 다냐. 속으로 이렇게 이죽거리면서 날아올 말 또는 주먹에 대응할 태세를 갖췄습니다. 다행히 그 이상은 번지지 않았고 무안당한 선배가 일어나 나가는 걸로 사태가 정리됐는데 그 뒤통수를 이글거리며 쏘아보던 제 어깨를 누군가 세게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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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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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말한 시집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역시 위에서 얘기한 바 사이가 그렇게 부드럽지만은 않았던 때라 또 뭔 시비를.... 하는 심경으로 따라 나갔는데 녀석이 역시 삐딱하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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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피라미드가 싫은 거냐. 그 인간들이 미운 거냐. 그 인간들이 피라미드에 미친 것처럼 너도 그 인간들이 미워서 돌아버린 거 같어.”
“뭐라고 이 씁.....”
그러자 녀석은 오금을 박듯 다음의 한 마디로 제 입을 막아 버리고 휙 되돌아 석양의 장고처럼 계단 아래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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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귀한 줄 알아라 씁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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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통수에 대고 “아 또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냐. 꼴통 새끼.....” 중얼중얼거리면서 욕설을 내리까는데 웬지 그 한 마디가 스멀스멀 커지면서 제 작은 머리통을 채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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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고 그들이 글렀다는 가치 판단이 너무나 확고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저의 분노 역시 정상 궤도에서는 벗어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피라미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대의와 거기에 빠져 주변에 피해를 준 사람들에 대한 의분(?)은 그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친구 녀석은 그걸 봤던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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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수십 년, 나이는 들고 세상도 바뀌었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왜 저렇게 틀려먹은 짓을 하지? 어떻게 저런 놈을 지지할 수 있지?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의문은 들 수 있는데 그 의문을 해결하기보다는 그 의문에 스스로 답하여 봉인합니다. 저렇게 행동하다니 저놈들은 상종을 못할, 쓸어버려야 할, 제거해야 할, 축출해야 할, ‘페스트 환자는 불쌍하기나 하지 사악해서 위험한 놈들’이라는 생각에 너무 쉽게 이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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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공’ 따위를 들이대는 대통령 후보를 욕했지만 ‘토착왜구’를 노래한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하는 건 좋지만 혐오해서는 안되고, 날을 세우더라도 최소한의 존중은 서로 교환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자주 까먹습니다. 30년 전 제 친구의 말처럼 “사람 귀한 줄 모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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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맹렬하다 못해 지겨웠던 사상 최악의 대통령 선거가 끝납니다. 이겼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졌다고 너무 절망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존재일 수 있음을 마지막 보루로는 남겨 뒀으면 좋겠습니다.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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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보낸 시집 가운데 시 하나를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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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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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어 떠나는 길 두려운가
오던 길 만큼만 가면
돌아 쉴자리 보이는 것을
해가 바뀌어야 길섶에 찾아오는 눈발을
손님처럼 반기며
햇볕 한 줌 간절히 헤집는
바위틈 이끼처럼 돌아눕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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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치쯤 내려가면
여정(餘情)에 머무른 바람이 있고
발길 너머 되새기며 여기까지 왔는데
서성이는 햇살이 겨울에 막혀
잠시 야위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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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길은
잊어야 할 젊음과 함께 눈속에 묻고
아득하던 기억을 더듬어
땅끝까지 엉금엉금 기어서도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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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갑갑한 선거 지켜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시 가야 할 길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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