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록사전 박영보 항목, 일반정의와 고유정의 부분입니다.
일반정의
박영보(朴永輔, 1808~1872)는 조선 후기 문인이다. 본관은 고령, 자는 성백(星伯), 호는 금령(錦舲)이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암행어사를 지냈던 박문수(朴文秀, 1691~1756)의 고손자이며 신위(申緯, 1769~1847)의 문인이다. 이조참의, 대사헌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862년(철종 14)에 동지사행의 부사로 선발되어 청나라로 파견되어 외교업무를 수행하면서 현지 지식인들과 교유하였다. 문집인 『아경당시집(雅經堂詩集)』, 연행록인 『연사록(燕槎錄)』 있다.
고유정의
박영보는 1862년에 동지사행 부사로 임명되었다. 10월 21일에 그를 비롯한 삼사(三使)가 철종을 알현하고 출발하였다. 당시 함께한 사행원으로는 정사 이의익(李宜翼)과 서장관 이재문(李在聞)이었다.
박영보는 부사의 신분으로 청나라 문인과 교유하였는데 동문환(董文渙)과의 관계가 주목된다. 동문환은 조선의 사신들과 시를 수창하고 친분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한객시록(韓客詩錄)』(현전하지 않음)에 조선 사신이 지어준 시들을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자신의 한시 「추회(秋懷)」를 창화한 청국과 조선 문인들의 시를 모아 『추회창화집(秋懷唱和集)』을 발간하는 등 조선 문인과의 문화교류를 이룬 주역이다.
박영보도 동문환과의 문학적 교류와 관련이 깊다. 그는 청나라 문인 심병성(沈秉成)을 만나 『아경당시초(雅經堂詩鈔)』, 『연사록(燕槎錄)』과 그 아들 박봉빈이 쓴 『봉상록(蓬桑錄)』을 보여주며 동문환의 시집에 넣어달라고 부탁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 동행한 역관 이용숙을 통해 자작시 「추회창화시(秋懷唱和詩)」를 동문환에게 전송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시 성향을 호평하였다. 그 뒤로 1863년 정월 10일에 이용숙과 박영보 그리고 그의 아들 박봉빈과 함께 동문환을 방문하여 친분을 맺으며 담소를 나누고 시를 창수하였다. 그 뒤인 1866년, 1868년에도 서로 서신을 주고받아 교류를 이어갔다.
그는 청국의 여러 신진문물을 비롯한 풍습과 경관을 관심 있게 살폈다. 그가 지은 여러 편의 연행시 중에 「연행잡언일백절구(燕行雜言一百絶句)」에 집약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에는 유리창(琉璃廠)의 모습, 몽고족과 한족의 모습, 마술공연, 벽돌과 수레의 사용뿐만 아니라 아편의 만연과 병폐 그리고 서구열강에 굴복한 청국의 현실 등 시대상을 반영한 부분도 있다. 박영보는 대명의리에 구애되지 않고 청국의 신진문물에 깊은 관심과 개방적인 시선을 보여서 기존의 사대부들과는 달리 선진적인 성향을 갖추었다.
「연행잡언일백절구(燕行雜言一百絶句)」에 집약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에는 유리창(琉璃廠)의 모습, 몽고족과 한족의 모습, 마술공연, 벽돌과 수레의 사용뿐만 아니라 아편의 만연과 병폐 그리고 서구열강에 굴복한 청국의 현실 등 시대상을 반영한 부분도 있다.
<< 연작연행시의 유행 양상이 보여짐
Downvoting a post can decrease pending rewards and make it less visible. Common reasons: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