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선생의 파리를 조문하는 글[弔蠅文]

in kr •  4 years ago  (edited)

정약용 선생의 파리를 조문하는 글[弔蠅文]

아래의 글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조승문(弔蠅文)입니다.
번역문과 원문을 따로 실었습니다.
고전번역원의 링크는 원문 밑에 달아놓았습니다.

'파리를 조문하는 글'인데요,
파리를 조문하게 된 이유를 읽어보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1809년 경 굶주려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있다가,
겨울이 지나 봄이 되니 그 시체가 썩자 구더기가 쓸어서 나온 파리가 창궐하여 온 마을을 뒤덮은 사건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파리를 잡으려 하였으나,
정약용 선생은 한상 푸지게 차려놓고 파리를 먹였습니다.
굶어죽는 자가 파리로 환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굶어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원래 사람이 길거리에 죽어 널부러지면,
매골승(埋骨僧)이 발견하여 이를 묻어주고 극락왕생을 빌어주었습니다.
삼정(三政)이 문란하였던 당시에 매골승이 있었을 리가 없겠지요.

원문의 판본을 보면 더욱 놀라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글을 죽 읽어보시지요....


파리를 조문하는 글

가경(嘉慶 청 인종(淸仁宗)의 연호) 경오년(1810, 순조 10) 여름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하여 산곡(山谷)에까지 만연하였다.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도 일찍이 동사(凍死)하지 않더니 술집과 떡가게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뢰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성을 내며 소탕전을 폈다. 그리하여 혹은 구통(笱筒)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독약을 쳐서 약기운에 마취되어 전멸하게 하였다. 이에 나는 말하기를,
“아! 이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는 굶주려 죽은 자의 전신(轉身)이다. 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널려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가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과 새 추깃물이 고여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어 항하(恒河)의 모래보다도 만 배나 많았는데, 아! 이 구더기가 날개를 가진 파리로 변해 인가로 날아드는 것이다. 아! 이 파리가 어찌 우리의 유(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와 모이게 하니 서로 기별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
하고 다음과 같이 조문하였다.

파리야, 날아와서 이 음식 소반에 모여라. 소북이 담은 흰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 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포식하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대가 가득하며 뜰은 무너지고 벽과 문짝도 찌그러졌는데,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또 그대의 옛 밭을 보니 가라지만 길게 자랐다. 금년에는 비가 많아 흙에 윤기가 흐르건만,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황무한 폐허가 되었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으라. 살진 소다리의 그 살집도 깊으며 초장에 파도 쪄놓고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그리고 또 도마에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마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 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에서 그 썩는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창을 채워 잡초가 무성하다. 이리가 와 뜯어 먹으며 좋아 날뛰는데, 구멍이 뻐끔뻐끔한 해골만이 나뒹군다. 그대는 이미 나비되어 날고 번데기만 남겨 놓았구나.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마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서리가 붓대잡고 그 얼굴을 세찰(細察)한다. 대나무처럼 빽빽이 늘어선 사람 중에 다행히 한번 간택된다 하여도 물 같이 멀건 죽 한 모금 얻어 마시면 그만인데도 묵은 곡식에서 생긴 쌀벌레는 상하에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돼지처럼 살찐 건 호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서로 부동하여 공로를 아뢰면 가상히 여겨 견책하지 않는다. 보리만 익으면 진장(賑場 기민(飢民)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구호소)을 거두고 연회를 베푸는데,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아미(蛾眉)의 아리따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 부채로 가리운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도 그대는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館)으로 들어가지 마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나열하여 꽂혀 있다. 돼지고기 쇠고기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 지짐에 오리국, 그리고 꽃무늬 아름다운 중배끼 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며 어루만지고 구경하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장리(長吏)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살피는데. 쟁개비에 고기를 지지며 입으로 불을 분다. 계피물 설탕물에 칭찬도 자자하나,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철통같이 막아 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데로 판결하여, 역마를 달려 여리(閭里)가 안일하다고 치보(馳報)하면서,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고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還魂)하지 말라. 지각없이 영원토록 흔흔한 그대를 축하한다. 죽어도 앙화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그 호령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山岳)을 뒤흔든다. 가마와 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어다가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고기 물크러지듯 죽어가지만 만민의 원망,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어진이는 위축되어 있고 뭇 소인배가 날뛰니 봉황은 입을 다물고 까마귀가 짖어대는 격이다.
파리야, 날아가려거든 북쪽으로 날아가라, 북쪽 천리를 날아가 구중궁궐에 가서 그대의 충정(衷情)을 호소하고 그 깊은 슬픔을 진달하라. 강어(强禦)를 겁내지 않고 시비가 없다. 해와 달이 밝게 비치어 그 빛을 날리니, 정사를 폄에 인(仁)을 베풀고 신명에 고함에 규(圭)를 쓴다. 뇌정(雷霆)같이 울려 천위(天威)를 감격시키면 곡식도 잘되어 풍년을 이룰 것이다. 파리야, 그때에 남쪽으로 날아오라.

弔蠅文
嘉慶庚午之夏,蒼蠅大作,充牣室屋,戢孴蕃息,漫山蔽谷,層構桀閣,曾莫癡凍,酒戶餅市,雲屯雷鬨,耇老歎嗟,指爲怪變,少年發憤,思與搏戰,或設笱筒,使其離罥,或置酖毒,殲以瞑眩。余曰:“噫嘻!時不可殺,時惟餓莩之轉身。嗟乎,崎嶇而得活!哀去年之大饑,又苦寒之栗烈,因之以瘟疫,承之以剝割,積尸橫路,載顚載連,虆梩被阜,不襚不棺,風薰暑歊,肌肉腐壞,舊淋新瀝,渟滀翳薈,化而爲蛆,萬倍河沙,迺羽迺翼,飛入人家。嗚呼蒼蠅,豈非我類?念爾之生,汪然出淚。於是具飯爲殽,普請來集,傳相報告,是嘬是咂。” 乃弔曰,蠅兮飛來,敶盂盤只。有饛白飯,和羹酸只。酒醴醲薰,雜麪饅只。沾君之渴喉,潤君之焦肝只。蠅兮飛來,無啜泣只。挈爾父母,妻子合只。聊玆一飽,無於悒只。觀君之故室,蓬虆盈只。崩櫩敗壁,戶欹傾只。伏翼夜飛,狐晝鳴只。觀君之故田,童粱茁只。今年多雨,泥滑滑只。衖無居人,蕪而不墢只。蠅兮飛來,麗以腴只。肥牛之臑,䰞倫膚只。酢醬蔥㳿,鱠鱻鱸只。塞君之莩腸,顏色敷只。砧有餘腥,饗君徒只。視君之恒幹,衡從壟只。無所衣被,薪草籠只。雨淋日炙,化異種只。詰屈沸騰,紛蠢動只。氾濫脅幹,滿鼻孔只。於玆蟬蛻,脫梏拲只。惟路有僵,行人竦只。嬰孩據胷,猶吮湩只。里不埋胔,山無塚只。塡坑塞塹,雜草蓊只。貍來搰食,喜跳踊只。髑髏圜轉,多穴孔只。君旣蛾飛,有遺蛹只。蠅兮飛來,無入縣只。鵠形菜色,嚴簡選只。胥吏握管,察其面只。立如密竹,幸一揀只。淡鬻如水,纔一咽只。有飛者蠱,上下眴只。膚如腯豕,是豪掾只。敷同奏功,嘉而無譴只。登麥罷賑,張筵宴只。擊鼓其鏜,簫管囀只。曼睩蛾眉,舞回旋只。含嬌作態,遮紈扇只。雖有豐膳,君不可流羨只。蠅兮飛來,無入館只。旗纛森張,棨戟攢只。膮膷盈望,爛璀璨只。煔鶉煎鰿,臛鳧鴈只。粔籹蜜餌,雕花蔓只。滿志喜悅,撫以玩只。揮颺巨扇,君無所窺覸只。長吏入廚,視饎爨只。倭銚爇肉,口吹炭只。桂釀蔗漿,騰稱讚只。虎豹守閽,毅防捍只。麾斥哀籲,無雜亂只。寂而不譁,飮食衎衎只。吏坐酒家,倩題判只。馳驛飛書,閭里晏只。道無捐瘠,太平無患只。蠅兮飛來,無還魂只。賀君之無知,長昏昏只。死有餘殃,詒弟昆只。六月催租,吏打門只。聲如獅吼,山岳掀只。私其錡釜,曳犢豚只。驅之入縣,株困臀只。歸而委頓,遘癘瘟只。艸薙魚爛,羣煩冤只。天地四方,無所告只。民莫不阽,不可悼只。彦聖負屈,衆胥媢只。鳳皇噤口,烏鵶噪只。蠅兮飛來,又北飛只。北飛千里,入金扉只。愬君之衷情,宣深悲只。不吐疆禦,無是非只。日月昭明,舒光輝只。發政施仁,告用圭只。如雷如霆,激天威只。禾黍穰穰,民無饑只。蠅兮飛來,乃南歸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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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놀랍냐...
이 글을 판본으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래 부(賦)는 운문(韻文)의 한 종류로, 네 글자로 이루어지며 뒷부분에 어조사 혜(兮)자로 마무리 합니다.
조승문에서는 다만 지(只)자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원문을 보시면 뭔가 느껴지시는 게 없는가요?
잘 살펴보시지요.
힌트는... 다만 지(只)자가 어떤 것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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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마치 파리가 앉아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지요?
붉은 색으로 동그라미를 쳐 보았습니다.
다산 선생이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지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진장(賑場)을 파하면 파진연(罷賑宴)을 베풀되, 기악(妓樂)은 쓰지 않는다'는 [목민심서]의 조항으로도 그 마음을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 겨우 몇 사람 살려 놓은 상황에,
생각있는 목민관이라면 음악은 엄두조차 내지 않겠지요.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은 시점에,
생각해 볼 것이 많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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