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video artist from Korea. At the center of the Fluxus movement in the 1960s, he created sensations with avant-garde and experimental performances and exhibitions. He is a pioneer in video art and has expanded the scope of his definition and expression of art through various media. [Naver Knowledge Encyclopedia] Nam June Paik [Nam June Paik] (Doosan Encyclopedia)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보았으며 예술을 통해 전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던 백남준은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 “아주 특별한 진정한 천재이자 선견지명 있는 미래학자”로 평가 받으며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서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백남준 아트센터 내 백남준 작가에 대하여-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아티스트인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백남준아트센터'가 있습니다.
Address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상갈동)
Gyeonggi-do Yongin-si Giheung-gu, Nam Junejong-ro 10, korea
아들녀석과 2번 찾아본 곳으로 다양한 예술적 볼거리와 함께 쾌적한 전시공간 또한 관람에 편안함을 줍니다.
요즘 세대인 아들은 아무래도 비쥬얼적인 것에 관심이 더욱 많이 가는것 같아 데리고 갔었지만
저 역시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디어 아트'로 분류되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제 자신이 예술에 큰 흥미가 없는지라)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2번이나 방문하여 보았지만 지금도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없던 미디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간단한 사실만은 작가의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이해의 수준이죠 ^^
오늘 포스팅은 스팀잇 여러나라의 사람들에게 백남준 작가를 소개하기 위함이기에
어줍지 않은 제 느낌보다 작가의 설명글을 가져와 붙여봅니다.
또한 하단의 백남준 작가의 작품에 관한 내용과 더욱 자세한 사진을 볼 수 있는 주소를 더해놓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꼬~옥 한 번 방문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Born in Seoul in 1932, he attended junior high school in Seoul and Hong Kong, high school in Kamakura, Japan, majored in aesthetics after graduating from Tokyo University and wrote his graduation thesis with music from Arnold Schoenberg. While studying European philosophy and modern music in 1956, he actively interacted with contemporary avant-garde artists and engaged in artistic activities with radically different performances from existing artistic norms and customs. From this time on he began to search for the way of art using new media, and in 1963 he transformed the internal circuits of television and expressed his works as art works. Electronic television "to enter the path of media artists.
In 1964, Paik moved to the United States and began to work on videos using video. In addition to video images, we have developed a video synthesizer that combines sculptures, installations and video images and can be freely edited. In addition, we have built a unique art world of Paik Nam . Since the 1980s, he has organized a global project to destroy the walls of avant-garde arts and popular culture through television live broadcasts using satellite technology, beginning with Good Morning Mr. Orwell. He participated in the 1993 Venice Biennale as a representative of the German Pavilion and became a nomadic artist He also won a Golden Lion Award for his work on the subject. Since then, he has been developing laser technology, and in the mid-1990s he had a stroke. However, until his departure in Miami in 2006, Paik did not stop his artistic practice.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일본 가마쿠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도쿄대학교에 진학해 미학을 전공한 후, 아놀드 쇤베르크의 음악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공부하는 동안 동시대 전위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기존의 예술 규범, 관습과는 다른 급진적 퍼포먼스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이 때부터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백남준은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비디오 영상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작품과 비디오 영상을 결합하고,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하였으며, 여기에 음악과 신체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까지 더해져 백남준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필두로 위성 기술을 이용한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으며,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관 대표로 참가하여 유목민인 예술가라는 주제의 작업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레이저 기술에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가운데 1990년대 중반 뇌졸증이 발병했다. 하지만 2006년 마이애미에서 타개할 때까지 백남준은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작업실을 재현해놓은 곳을 보며 한 예술가의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열정을 느꼈던 것을 끝으로 오늘 포스팅을 마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작품의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웬지 형이상학적인 모습으로 수없이 늘어서있던 금속의 정렬이 주는 느낌에 매료되어 담았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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