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멜의 패턴인터럽트전략이란?

in kr •  7 years ago 

퍼스널브랜딩입니다. 일전에 바이포인트님에게 패턴인터럽트에 대해서 배운적이 있습니다. 상대의 고정관념을 깨고 선택적 사고를 집어넣는 방법인데 과거 전쟁에서도 다양하게 사용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뇌는 지루함을 금방느껴 일반적인 광고나 홍보에 더이상 반응을 하지 않는데 사막의 여우라 불리는 롬멜도 이런 전략으로 영국군을 크게 이긴적이 있어 소개해봅니다.

마케팅 카피나 이미지를 만들때 도움을 받으실듯합니다.

아래 내용은 동아비즈니스리뷰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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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3월 하순, 롬멜의 공세가 시작됐다. 이 공세는 롬멜 스스로 자랑했듯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실시한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이 말의 의미를 알고 보면 공포스러울 정도다. 공세를 시작할 때 주력인 15기갑사단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롬멜은 먼저 도착한 제5경장비사단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는 이탈리아군 1개 사단만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5사단은 2개 대대의 전차 부대밖에 없었다. 전차는 150대로 신형인 3호, 4호 전차는 80대뿐이었다. 그러나 3호든, 4호든 영국군 전차를 격파할 능력이 없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15사단이고 5사단이고 롬멜과 단 1분도 함께 있어본 적이 없는 부대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트리폴리항에 도착해서 비로소 롬멜을 만났다. 첫 대면 자리에서 롬멜이 내린 명령은 당장 전선으로 나가 공격을 개시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군은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탈리아군을 궁지로 몰아넣은 영국군 주력 부대는 처칠의 명령으로 그리스로 파병되고 일부는 이집트로 돌아갔다. 훈련과 장비가 부족한 신참사단이 전선을 교체했다. 영국군을 지휘한 오코너(O’connor) 장군도 이집트로 돌아가고 무능한 님(Neame) 장군으로 교체됐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영국군의 안이한, 아니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영국군은 독일군이 항구에 도착하면 전차를 조립하고 부대를 정돈한 후 롬멜과 장교들이 대면식을 하는 데만 한참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전계획을 토론하고 확정한 후 사막 적응 훈련을 하고 장비를 사막전에 맞게 개조하려면 5월이나 돼야 전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신사 국가 영국군의 방식이었다. 무엇보다도 독일군이 이 적은 병력으로 공격에 나설 리는 없다고 믿었다.

반면 롬멜은 영국군이 방심하고 신병으로 교체된 지금이 적기라고 믿었다. 영국군이 적응하고 진지를 보강하면 독일군의 공세는 불가능해진다. 그는 사막을 본 적도 없는 병사들을 전선으로 내몰았다. 원래 사막에서 전차를 운행하면 모래가 들어가 쉽게 고장이 난다. 그러므로 몇 시간마다 분해 청소를 해야 하고 장거리 운행은 금지였다. 그 외에도 모래 위로 운전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다. 그러나 롬멜은 일면식도 없는 병사들이 ‘잘해 줄 것이라 믿고’ 생면부지의 땅으로 내몰았다.

기습을 당했지만 영국군은 잘 싸웠다. 독일군의 공세는 시작부터 좌절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롬멜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몸소 최전선을 시찰하며 어딘가에서는 발생하고야 마는 방어선의 약한 고리를 찾았다. 결국 그는 적 후방으로 돌입해서 보급로를 차단한다. 현대전에서는 보급로가 차단되면 하루도 버틸 수 없다. 영국군은 무너졌고 롬멜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4월2일 독일군은 아제다비아(Agedabia)를, 그 다음 날엔 벤가지(Benghazi)를 차례로 함락했다. 다음 목표는 메킬리(Mechili)였다. 메킬리까지 이르는 길은 세 갈래가 있었다. 롬멜은 적보다 열세인 상황에서 병력을 분할하지 말라는 전술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5사단을 분할해 세 방향으로 모두 진격시켰다. 롬멜은 적이 당황하고 무너지고 있으므로 아군 병력이 많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적이 무너지는 순간에 압박해야 적군을 돈좌(頓挫)시킬 수 있다는 건 전술의 모든 기본원칙에 우선하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하고 대담한 지휘관들만이 할 수 있는 전쟁의 예술이기도 했다. 전해에 롬멜은 프랑스에서도 보급선을 무시하고 고기떼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상어처럼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쾌속진격을 했다. 이때 사령부의 진격중지 명령을 피하기 위해 전 부대가 무전을 끄고 돌입하는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다. 나중에 히틀러는 롬멜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군이 진격하는 동안 나는 매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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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을 분산하지 말라는 원칙은 적군과 기동능력이 동일하고 직접 격돌할 때의 이야기다. 지금 영국군은 무너지고 있고 병력 분산 금지의 원칙에 따라 세 길 모두에서 방어선을 구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길에서 저지된다고 해도 다른 길을 통해 한 부대는 신속하게 메킬리에 도달할 수 있다. 영국군은 놀랄 것이고 메킬리를 점령하면 나머지 두 개의 길에 있는 영국군은 퇴로가 막혀 항복할 것이다. 이로써 리비아의 영국군은 궤멸되고 이집트까지 무방비 상태가 된다.

단 한판으로 끝날 뻔했던 북아프리카 전쟁은 독일군의 보급부족과 훈련부족이란 암초를 만나 성공 일보직전에 좌절됐다. 롬멜은 두 달만 자신이 훈련을 시켰어도 전쟁을 끝냈을 것이라고 땅을 쳤다. 그러나 전황을 단숨에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시켰고 영국군의 최고 명장 오코너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영국은 무능한 님을 해임하고 오코너로 교체했는데 교대를 하기 위해 오코너가 사령부에 도착했을 때 독일군이 쇄도한 것이다. 오코너조차 롬멜이 이렇게 빨리 진격할 줄 몰랐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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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운영하다보면, 경영을 하다보면 새로운 생각을 한다는게 쉽지 않은데 목숨이 달린 전장에서..
저런 상식을 깨는 행동을 했다니..

삼국지의 마속도 그러한 행동을 했다가 실패로 끝나 읍참마속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심한형벌을 받았는데
새로운 생각이나 행동은 항상 무모한 무엇인가가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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