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상태(인간의 조건)] 마가렛 캐노번의 소개

in kr •  6 years ago  (edited)

(56)20180906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975)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애니멀 라보란스가 공적인 권역을 포제션하는 한, 참다운 공적인 권역은 있을 수 없고, 오직 공공연하게 전개되는 사적인 활동들만이 있게 될 뿐이다. 그것이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의 뿌리깊은 골칫거리는 보편적인 어떤 불행함이다(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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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캐노번에 의한 소개Introduction by Margaret Canovan

Margaret Canovan

With the creation of man, the principle of beginning came into the world. ... It is in the nature of beginning that something new is started which cannot be expected.(Below, p. 177)

I

인간의 조건상태 안에는 구별들이 잔뜩 들어있다: 노동, 작업, 행동 사이에, 권력, 폭력, 강력함 사이에, 지구와 세계 사이에, 프로퍼티와 웰쓰 사이에(51)The Human Condition is crammed with distinctions: between labor, work, and action; between power, violence, and strength; between the earth and the world; between property and wealth

참여민주주의(52)participatory democracy

풀뿌리 시민들의 "평의회"(53)grassroots citizens' "councils"

중심적인 정치적인 활동은 행동이다(53)"the central political activity is action," she explained, it had been necessary first to carry out a preliminary exercise in 노동이나 작업과같은 다른 인간활동들로부터 개념적으로 분리해서 행동을 깨끗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53)clarification "to separate action conceptually from other human activities with which it is usually confounded, such as labor and work."

its phenomenological analysis of three forms of activity that are fundamental to the human condition: 동물로써의 사람의 생물학적인 생명삶에 상응하는 것인 <노동>, 인간존재들이 지상 위에 지은 인공적인 오브젝트들에 상응하는 것인 <작업>, 구별되는 인디비두얼들로써 우리의 여럿됨에 상응하는 것인 <행동>(54)labor, which corresponds to the biological life of man as an animal; work, which corresponds to the artificial world of objects that human beings build upon the earth; and action,

아렌트는 인간행동에 대한 전통적인 정치철학의 잘못된표상화를 비판한다(54)Arendt's critique of traditional political philosophy's misrepresentation of human activity.

II

아렌트의 결론은, 정치적인 행동을 맑스가 다른 인간활동들인 작업 및 노동과 짬뽕시키는 바람에 재앙수준의 잘못된 관념화를 저질렀다는 것이다(56)notably her conclusion that Marx had fatally misconceived political action in terms of a mixture of the other human activities she calls work and labor.

아렌트의 관점 안에서는 정치적인 <행동>을 일부거시기를 <만들기>로써 이해함은 위험한 어떤 실수이다... 새로운 어떤 사회를 창조하려는 어떤 시도를 위해 또는 역사를 만들려는 어떤 시도를 위해서 인간존재들은 원물질로써 결코 배역맡지 않는다. 자신의 가진바의 역사를 만드는 대문자 "사람"의 얘기는 우리를 잘못이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격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대문자 사람이 아니라 소문자 사람이 지상 위에 살고 그리고 세계에 거주한다." 정치학을 <만들기>로써 관념화함은 이론적으로는 인간의 여럿됨을 무시함이고, 실천적으로는 인디비두얼을 강압함이다(56)To understand political action as making something is in Arendt's view a dangerous mistake. Making— the activity she calls work— is something a craftsman does by forcing raw material to conform to his model. The raw material has no say in the process, and neither do human beings cast as raw material for an attempt to create a new society or make history. Talk of "Man" making his own history is misleading, for(as Arendt continually reminds us) there is no such person: "men, not Man, live on the earth and inhabit the world." To conceive of politics as making is to ignore human plurality in theory and to coerce individuals in practice. Nonetheless,

아렌트는 이러한 맑스의 파티큘라한 잘못된관념화는 서양 정치학의 위대한 전통들을 대물림한 탓이라고 본다. 인간존재들이 여럿됨이라는 점, 인디비두얼들은 각자의 새로운 관점들의 역량 및 새로운 행동들의 역량을 갖는다는 점, 이러한 정치적인 역량들이 뭉개지지 않는 한 인간존재들은 깔끔하게 예측가능한 어떤 모델에 결코 들어맞을 수 없다는 점, 이러한 인간존재들의 약동하는 정치적인 특질들을 체계적으로 무시한 채, 플라톤 이래 정치철학자들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등을 돌리고 이상적인 어떤 도시를 위한 스키마를 세팅하는 정치학에 관한 글쓰기를 해왔다고 아렌트는 깝니다(57)Arendt found that Marx had inherited this particular misconception of politics from the great tradition of Western political thought. Ever since Plato turned his back on the Athenian democracy and set out his scheme for an ideal city, political philosophers had been writing about politics in a way that systematically ignored the most salient political features of human beings— that they are plural, that each of them is capable of new perspectives and new actions, and that they will not fit a tidy, predictable model unless these political capacities are crushed.

맑스는 행동적으로는 동물의 삶 곧 노동에 더욱 가까운 생산과 소비의 과정들의 용어들 안에서 역사를 이해했다고 아렌트는 클레임한다. 예측가능한 어떤 과정으로써의 인간 역사에 대한 맑스의 비전은 유일하고 죽어야만하는 인디비두얼들의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종의 집단적인 생명삶-과정의 이야기이다. 이 과정이 혁명을 통해서(역사를) "프리덤의 권역"으로 이끈다라고 맑스는 잘못헤아렸다(57)Arendt claims that he actually understood history in terms of processes of production and consumption much closer to animal life— labor, in fact. His vision of human history as a predictable process is a story not of unique, mortal individuals but of the collective life-process of a species. While he was in Arendt's view quite wrong to suppose that this process could lead through revolution to "the realm of freedom,"

내구성있는 어떤 인간세계의 문명시민화된 실존의 치명적인 중요성이 인간조건상태에 관한 그녀의 분석의 심장에 있다. 죽어야하는 생명삶들을 위한 안정된 세팅을 제공하려고, 그리고 자연적인 과정들에 맞서 우리를 방패막아주려고, 인간세계라는 것이 지구 위에 지어진 것이다. 인민들이 그 둘레에 모여앉은 어떤 탁자처럼 세계는 "사람들을 관계시키고 동시에 분리시킨다." 공통된 어떤 인간세계를(관점이 다른) 타자들과더불어써 공유하는 경험만이 우리로하여금 일상의 실재현실을 보게끔 해주고, 그리고 공유된 어떤 코먼센스를 개발하게 해준다. 인공세계가 없다면, 우리는 각각 우리의 느낌들, 바램들 그리고 욕심들만이 실재현실인 우리의 가진바의 주관적인 경험 상에로 뒤로 추동될 것이다(58)At the heart of her analysis of the human condition is the vital importance for civilized existence of a durable human world, built upon the earth to shield us against natural processes and provide a stable setting for our mortal lives. Like a table around which people are gathered, that world "relates and separates men at the same time"(p. 52). Only the experience of sharing a common human world with others who look at it from different perspectives can enable us to see reality in the round and to develop a shared common sense. Without it, we are each driven back on our own subjective experience, in which only our feelings, wants, and desires have reality.

Ill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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