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이야기-인도네시아 2 (콘도 첫 날 에피소드)

in kr •  6 years ago 

<도착 첫 날>
2008년 4월 16일, 동남아라는 곳에 첫 발을 내딛은 날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Soekarno-Hatta 국제 공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니 사장님과 개발 이사님 그리고 관리를 맡고 있는 부장, 이렇게 3분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회사가 세워진지는 근 5개월 가량 되었으나, 실제 서비스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
현지 개발자, SE 직원 4-5명, 관리직원 3명, 마케팅 직원 4-5명 그리고 게임 서비스를 맡고 있는 GM 3-4명에 한국사람은 나와 위에서 언급한 3분, 이렇게 대략 20여명이 한 식구다.

밤늦게 도착을 한 지라 바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메디뜨라니아 가든, 한국어로 번역하면 '지중해 정원 콘도?' 정도.. 인도네시아는 콘도 가격이 비싼 편이다. 해외가 대부분 그렇지만 인니 역시 전세 개념이 없기 때문에 구매를 하지 않는 한, 연 단위 월세로만 계약이 가능하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콘도는 월 400불 수준이었다.
당시 20여평 내외 괜찮네 하는 콘도 월 렌트비가 1,000불-1,200여불 내외였음을 감안하면 딱히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근처에 3-4개의 대학이 포진하고 있어 주로 학생들, 혹은 독신자들도 제법 살고 있었다.

평수는 약 10평에 엘리베이터 수도 부족하고 프로그램도 이상하게 짜여 있어 아침, 저녁으로 한 번 타려면 보통 5분, 10분을 기다리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1년 동안 고맙게 잘 살았다. 수영장이 아주 크게 있었는 데 수영을 배우지 않아 이용은 거의 하지 못했다.

이 아파트에서 약 200미터 앞에 따만 앙그렉이라는 대단위 콘도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도 이미 낡은 콘도였지만 그럼에도 처음 지어질 때 국가 고급 공무원들도 많이 살았던 꽤 좋은 곳이었다. 주상 복합 형태인 따만 앙그렉은 4-5층까지는 고급 쇼핑몰로 아이스 링크까지 갖추고 있었고, 정원 겸 산책로, 그리고 크고 작은 3-4개의 풀장이 9층인가?에 위치해있어 당시의 내겐 '와 저기 살면 너무 좋겠다' 싶은 꿈의 숙소였다.

지금은 풀만 호텔, 센트럴 파크몰 그리고 콘도 들이 대단위로 들어서서 자카르타 내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중의 하나가 되어 버린 곳이지만 당시엔 이 따만 앙그렉 그리고 내가 살던 콘도가 전부였었다.

그날 사장님이 해주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저기 따만 앙그렉에 숙소를 마련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우리 열심히 해서 내년엔 꼭 숙소를 저기로 옮겨 볼 수 있도록 해보자"

캡처.PNG

(따만 앙그렉에서 몇 년 전 설치한, 콘도 전체를 두르는 LED 광고판. 처음엔 엄청난 광고비로 인해 광고를 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것 같더니 요즘엔 모바일 게임 등으로 인해 인기 광고 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는 듯 하다.)

이 집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아마도 이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인니 사람과 생활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 하여 소개를 해본다.

<바퀴 벌레와 감사>
집 안에 바퀴 벌레가 참 많이 살았다.
저녁에 회사에서 퇴근 후 문을 열고 불을 켤 땐
늘 마음의 준비를 해야했다. 불을 켜는 순간 최소 4-5마리의 바퀴벌레가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숨는 모습을 매일 같이 보아야만 했다. 크기는 또 어찌나 큰지 엄지 손가락만 했었다.

처음엔 참 부담스러웠는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더라. 그런데 몇 개월 후에 갑자기 바퀴 벌레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 하루는 보이지 않아서 오늘은 어쩐 일로 안보이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이틀, 삼일이 지나도 한 마리도 보이지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지진 등 대자연의 변화가 감지되면 바퀴 벌레 같은 류들이 가장 먼저 안다던데 하는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정말 그랬었다. 자카르타엔 지진이 난 적이 거의 없지만 인도네시아 자체가 워낙 지진이 많은 나라라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음날도 보이지가 않으니 그 때부턴 정말 지진이 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불쑥 불쑥 들었다.

그러다가 1주일이 지났을 즈음 불을 키는 데, 몇 녀석이 순식간에 몸을 숨기는 것을 발견했다.
어찌나 안심이 되든지 ㅎ 그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지진과 관련해서는 추후 별도로 나눌 이야기가 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감사'는 정말 마음에 달린 거구나...라는 것을.

<샤워장 내 공포의 가스통?>
도착 첫 날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 겸 욕실에 들어갔다. 사이즈는 약 1-2평, 욕조는 물론 없고 변기와 샤워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난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변기 바로 옆에 어인 일로 대형 가스통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왜 가스통이 샤워실에 있어?" 하고 살펴 보니, Oh My God!... 따뜻한 물이 나오게 하려면 온수기를 켜야 하는데 온수기 버튼을 누르면 이 가스통과 연결이 되어 마치 가스레인지 불 켜는 것처럼 딱딱딱 소리가 나면서 불꽃이 튀며 점화가 되고 그 후 뜨거운 물이 나오는 구조였다.

동남아이긴 하지만 찬물로 샤워를 하긴 어려웠다. 따뜻한 물을 쓰긴 해야 하는데, 샤워를 하려고 할 때마다 바로 옆에 뜬금없이 서있는 가스통은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워낙 위험에 둔감한 동남아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다보니 이 가스통이 제대로 연결은 되어 있는 건가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었다.

한 달이 지난 후 첫 월급을 받아 제일 처음 한 일은 이 가스통을 제거하고, 전자식 온수기로 교체를 한 것이었다.

당시 비용이 한국돈으로 30만원.
대졸자 현지 직원의 한 달 급여가 20여만원임을 감안하면 엄청 큰 돈이었지만 교체 후 샤워를 할 때의 그 만족감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1년 후 이 교체가 문제가 될 줄은 그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스통을 내놓든지 돈을 내놓든지>
1년이 지나 계약 기간이 끝나고 집을 옮기게 되었다. 주인이 와서 계약서에 명기된 리스트에 따라 혹시 분실된 물건은 없는 지 파손된 물건은 없는 지 확인을 하고 문제가 없으면 deposit을 돌려주고 문제가 있을 시 deposit에서 까고 돈을 돌려 주는데, 보통은 어떻게든 흠집을 잡아 deduct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주인 할머니는 다행히 마음씨가 좋아 보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갑자기 가스통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온다.

그래서 난 자신 있게 이야기 해줬다.
"할머님, 가스통이 너무 위험해서 제가 그거 빼고 이렇게 30만원 들여서 전자 온수기로 바꿨어요, 이거 안가져 갈테니 여기서 쓰세요"라고 선심까지 쓰면서. 그렇게 말하면 난 당연히 할머니가 고마와 할 줄 알았다.

근데 이 할머니 뜬금없이 이런다.
"가스통은 어디 있어?"

난 다시 찬찬히 설명 해주었다.
"할머니, 그 가스통이 샤워실에 있으니 너무 위험해 보여서 그거 빼고 이거 30만원이나 주고 달았어요.
한 달 월세가 40여만원인데 이게 30만원짜리 파나소닉 제품이에요, 이거 그냥 쓰세요. 안떼갈테니까요"

할머니 왈
"알았어. 이거 내가 쓸게, 근데 가스통은 어디 있냐고?"

뭔가 잘못되어 간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스통은 그 때 처분해버렸어요"

할머니 왈
"아니, 가스통을 왜 버려? 가스통값 환불해 그럼"

난 어이가 없었다.
"할머니, 가스통 이거 어차피 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쓰는 건데 제가 전자 온수기 달았잖아요. 이거 안가져 간다니까요"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가스통은 밥 지을 때도 쓸 수 있고 용도가 다양한데 이건 아니잖아. 환불해"

난 대답했다.
"할머니, 이거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선 어차피 뜨거운 물 용도로 밖에 못쓰시잖아요, 환불해달라는 게 말이 되요?"

할머니가 다시 말하길
"그럼 이거 전자 온수기 떼서 가져가, 그리고 다시 가스통 연결해"

난 그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 집이 없는 서러움이란 게 이런건가.. 결국 가스통 값을 물어주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온수기도 그냥 두고 나왔다. 이런 삶의 방식도 있구나 하는 삶의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인도네시아 콘도비>
자카르타의 콘도비는 2010년 이후부터 2013년여 사이에 급격히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저렴하지 않던 콘도 비용은 동 기간동안 거의 40-50%가량 올랐던 것 같다.

내가 살았던 메디뜨라니아 가든도 400불에서 추후 600-700불까지 임대료가 올랐고, 우리 직원들이 살던 아파트도 700-800불하던 곳이 1,200불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금은 렌트비가 그 때에 비해선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인기 있는 곳, 예를 들어 끄망 지역이나 혹은 남부 자카르타의 고급 콘도들은 월세가 3,000불을 넘는 곳도 상당히 많다. 남부 자카르타의 괜찮은 콘도들은 대략 30여평 기준으로 1,500불-2,000불 내외 수준인 듯 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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