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대상 인물의 지인 'a'를 보면서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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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 매번 남에게 날 선 비판을 던지던 a는 성추행 피의자인 자신의 지인에게는 그렇게 안 한다. 오히려 증거 없는 피해자의 진술을 어떻게 믿느냐며 의구심을 던진다. 그의 귀는 '피해자의 진술' 보다 '피해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에만 쏠려있다. 전형적인 확증 편향의 오류다.

a는 두 가지를 놓치고 있다.

첫째, 인간은 원래 겉과 속이 다르다.
a는 자기와 지금까지 교류하던 그 사람을 성추행범으로 판단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알아온 그 사람이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거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제주 게스트하우스 투숙객 살인사건 용의자는 피해자를 살해 후 태연하게 다른 직원들과 밥을 먹고 SNS에 파티 사진도 올렸다. 당시 직원들이 사람을 죽이고 온 관리인과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나. a도 자신의 지인이 충분히 성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저명하거나 똑똑하거나 그런 것들에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편견을 던져주므로 배제해야 한다. 그 사람도 범인(凡人)일 뿐이다.

본래 인간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거나, 아버지가 딸을 성추행하는 사건 기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때 이웃들은 "그런 사람처럼 안 보였다”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걸 잘 아는 a가 자신의 지인이 성추행범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고 말하는 걸 보면 짜증난다.

둘째, 성범죄에서는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판단할 수 있다.
a는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관련 보도를 '일방적인 보도'라고 말한다. 답답하다. 경찰은 성 관련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을 결정적 증거로 본다. 검찰도 성범죄에서 피해자 진술이 유일할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안다. 법원은 그 내용이 범죄 성립을 인정할 만큼 믿을 만하면 그 진술만으로 유죄를 판단한다. a가 말하는 피해자의 주장은 그 정도 ‘급’이다.

한편 피해자 진술만으로 어떻게 믿냐는 a의 말을 다른 사건에 적용해보자. 그렇다면 오피스텔에 억지로 여제자를 눕힌 조민기 씨는 증거가 없으니 무죄다. 뉴스룸에서 오달수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배우 엄지영 씨의 말도 거짓말로 들렸을 것이다. 혹여 시간이 지나 피해자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피해 사실을 폭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지금이 그것을 판단할 시점은 아니다. 근데 a는 진술의 신빙성만을 물고 늘어진다. 가슴 구석에 묻어둔 상처를 어렵사리 꺼낸 피해자의 용기에는 관심조차 없다. 내가 인상이 찌푸려지는 이유다.

식자층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일비재했다.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유도 그것에 있고, 조선 시대 양반층의 타락도 그것에 있다.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들도 그것으로 고생했고, 군사독재에서 민주사회로 거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식자층이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여줬다. 놀랍지 않다. 다만 직접 그걸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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