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수 없다.
오히려 삶은 본질부터가 완전히 무의미하며 이는 왜 세계가 지금과 같은 상태인지 설명해준다.
하지만 바로 이 존재의 무의미함으로부터 갑자기 의미가 생겨난다.
세계는 지옥같은 장소일지 모르나 바로 그 이유때문에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일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로 향하는 길을 구원으로 향하는 길을 앞서 나아감으로써 말 그대로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는 우리를 옳은 방향으로 부단히 밀어붙힘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달성하도록 돕고 있다.
서두에서 우리는 세계에 이처럼 악이 만연함에도 우리가 어떻게 세계가 구성된 방식에 그리고 세계 속에 위치한 우리의 존재에 목적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고수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이제 우리는 그 의문에 답을 하나 얻었다.
고통이 곧 목적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묘하게 위안이 된다.
이제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겪는 고통이 무언가의 유익이 된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고통이 충분히 가해진다면 우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경계까지 내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고통은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다.
나름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존재의 목적이 행복이 아닌 것은 매우 명백하다.
존재의 목적이 행복이었다면 세계는 지금 가는 굉장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근본적인 판단의 오류 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 실패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삶의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고 느끼게 되며 그만큼 더 불행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삶의 모든 요소는 우리를 바로 그 초기 오류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데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 존재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하는 데 맞춰져 있다.
우리가 삶을 더 자세히 그리고 편견없이 들여다 본다면 삶은 대놓고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삶의 구성 곳곳에 우리가 역겨워 할만한 그리고 실수 라고 격하 할만한 것이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의 마음은 쾌락 중독으로부터 결국 삶, 중독으로부터 치유되며 세계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中 구원의 절차
Downvoting a post can decrease pending rewards and make it less visible. Common reasons: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