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나의 정규학기 마지막 장학금 면담이 진행된다. 아직도 첫 면담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학기는 유난히 힘들었고 그 날 아침에도 역시나 아르바이트를 하기위해 8시에 일어났었다. 수업이 있기 전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면담날짜를 잡았다. 가방 안에는 도시락이 있었고 수업 프린트며 갖가지가 많이 들어있어 무거웠다. 배는 그리 고팠는지 기억이 안난다.
상담사 선생님이 크게 나쁘신 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간단한 인적사항과 같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답을 하면서 나는 계속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돈'이라는 존재를 너무 가까이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대학에 입학해서 '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고 그 존재는 정말 한없이 상대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입학하고 나서는 '왜 나에게 돈이 많이 없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많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께 더 달라고 하기엔 집안 사정을 모른체 할 수 없었다. 나보다 돈을 더 아끼시려는 부모님, 새벽같이 일년 365일 일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내 처지를 원망하기보단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첫 면담날, 어쩌면 '돈을 받기 위해 진행된 면담'에서 이런 갖가지 질문에 대답한다는 사실이 스무살의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장학금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나는 내 앞으로 빚이 될 학자금을 줄이고자 앉아 있었고 최대한 장학금을 많이 받아야 나에게 좋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분히 대답을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냥 서럽게 울었다. 상담사 선생님과 조교분이 있었음에도 말을 못 할 정도로 울었다. 면담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끝내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버스에서 눈물을 계속 흘렸다. 집에 돌아와 상담을 잘 진행했냐는 부모님의 문자도 무시한 채 그저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 여러차례 상담이 있었지만 그 날 이후로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돈에 대한 나의 감정을 지키는 법을 배웠고 연연하지 않는 법을 깨우쳐갔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넘치면 나눌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금 나의 상황에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처음 상담 날부터 몆 차례가 되었든 항상 '상담 잘 하고 왔냐'고 물으시는 부모님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의 가계상황, 자식들에게 결코 드러내기 힘들었던 그 모습들을 보여주시면서 딸에게 못해준게 많아 미안하다고 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더이상 내 상황을 탓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런 장학금을 받으면서 나는 학교에 감사하고 내가 단단해 지게 해 준 상황에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장학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나는 이제 학자금 대출을 더이상 받지 않을 것이다. 취업하는 순간부터 천천히 내가 교육받은 댓가를 지불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내 상황이 전혀 슬프지 않다. 장학금 덕분에 내 앞으로의 빚이 많이 줄었고 부모님에게 더 감사하게 되었으며, 인생에서 큰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지금의 이 가르침을 생각하며 훗날 내가 여유로워지면 내가 받았던 감사함을 떠올리며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