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부터 나는 고양이 관련 용품과 지식을 모으기 시작했다. 누리는 접종과 중성화가 필요 없는 아이이니 내가 준비할 일은 절반도 넘게 줄었다. 그런데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는 쉬운 게 아니었다. 먼저 내과에서 알러지 반응 검사를 했고, 상철에게 물어 누리에게 급여되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밥과 모래를 주문했다. 사실 가장 사고 싶었던 건 장난감과 타워였지만, 그것만은 누리가 원래 쓰던 것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고양이를 데려올 준비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가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도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리는 상철의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입양 시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먼저 그 시기에 대해 말을 꺼내기 힘들어서, 개인 메시지로 상철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몇 번 보내 보았다. 내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낮에 일을 하는 나보다도 자기 육신과의 투쟁을 하는 그가 훨씬 바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보내는 별 의미없는 메시지에 꼭 성실하게 답장해주었지만, 그 간격은 완전히 제멋대로였다. 어떤 답장은 72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도착하기도 했다. 그는 내게 완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답장만 보냈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조현병의 주요 증상 중 와해된 언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환자들이 문법적으로만 정합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어의 나열로 이루어진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철과 나의 메신저 대화에서 굳이 짚자면, 언어가 와해된 건 내 쪽이었다. 나는 내가 친구들과 사용하는 종류의 인터넷 언어들을 최대한 여과 없이 사용했고, 그는 늘 정갈한 문장으로 답장하곤 했다. 다만 그가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누리에 대해서 뿐이었다. 그마저도 우리가 대화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대화를 끝맺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으레 이모티콘을 보내듯이 누리 사진을 보냈다. 나는 누리 사진을 받을 때마다 소동물을 쓰다듬는 이모티콘을 보냈고, 그러면 대화는 그쯤에서 끝이 났다. 우리의 연락은 그런 식으로 한 달여를 이어졌다.
나는 상철에게 ‘비 많이 온다ㅋㅋ/오빠 좋겠네/비 좋아하잖아’ 라고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연락을 받았다. 상철의 어머님이 보내신, 상철의 부고였다. 목요일이었다. 반차를 내고 그의 집에 갔더니, 그의 아버님이 방을 정리하고 계셨다.
-자네가… 백승아양인가?
아버님은 상철의 스마트폰을 보며 말씀하셨다. 아마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손을 모아 공손히 말했다.
-네. 제가 백승아입니다.
-많이 놀랐지? 친구들 부음을 들을 나이는 아니니 놀랐을 것 같은데? 고생이 많았네 그래.
나는 아버님에게서, 상철이 가지고 있던 겸양의 의문문을 그대로 느꼈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의 눈가는 슬픔이 눈곱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잘 관리된 중노년의 남자가 보일 수 있는 모습 중 가장 수척한 모습이었다. 그는 말쑥하고 단정했지만, 마음으로 낡아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생판 처음 보는 내게, 그 슬픔의 단 한 톨도 전가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몸에서 떨어져 나올 슬픔의 먼지를 필사적으로 내게 묻히지 않으려는 몸가짐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얘기를 하기는 조금…, 멋쩍군. 커피 좋아하나?
-아, 네.
우리는 상철의 집 밖으로 나와서, 나와 상철이 재회했던 카페로 들어갔다. 각자 음료를 받아온 후, 아버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내가 상철이 주변 사람들 인적사항을 파악한 건 부음을 전하기 위해서야. 대화같은 건 일절 보지를 않았네. 그래서 나는 자네와 우리 상철이가 어떤 관곈지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혹시, 친구 이상의 관계였다면 미안하네. 병든 아이를 낳아서. 내가 병든 아이를 낳아 놓아서 자네 마음에 심려를 끼친 게 아닌가?
나는 그 말에 얼른 부정하려다가,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예요. 아마, 아닐 거예요. 그냥, 저는, 고양이를 받으러….
말을 더 잇기가 어려웠다. 그의 얼굴이 살짝 갸우뚱하며 내게 다가왔다.
-고양이? 마침 잘 됐군. 나도 상철이 자식이 고양이를 키운다고 몇 번 전해듣기는 했는데, 이놈 집에 가보니 고양이같은 건 없었단다. 무슨 고양이 장난감이랑 밥이랑 화장실, 이런 게 있기는 했는데, 정작 고양이는 없었어. 이 자식이 고양이를 키웠다고 하니까, 고양이는 나랑 우리 아내가 거두어서 키워야지 했는데 글쎄 여기 와보니 아무 데도 없지 뭔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누리를 데리러 왔더니, 나보다 더 누리를 받아야 하는 분이 계셨고, 정작 누리는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누리부터 찾아야 한다.
-고양이 이름은 누리라고 했어요. 제가 사진을 많이 받았어요. 혹시 상철 오빠가 죽고 나서 어디 나가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같이 찾아봐요.
-그게 좋겠군. 그럼 누리 사진을 좀 보여주겠나?
-네, 여기요.
나는 상철에게서 받은 누리 사진 몇 장을 꺼내 아버님께 보여드렸다. 한 손으로 내 스마트폰을 들고 다른 쪽 손으로 사진들을 넘기고 확대하시더니, 1분이나 지나서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이게 대체 어디서 찍은 거지?
-자기 집에서 찍은 거 아닌가요?
-장판이랑 가구 배치가 완전히 다른데? 여길 보렴. 모든 사진에 찍힌 바닥이 전부 대리석이잖니. 내가 방금까지 상철이 집을 치우고 유품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대리석 바닥은 아무 데도 없었단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리석 바닥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상철은 죽었고, 이 집에는 누리만 남아있어야 했다. 그런데 상철을 똑 닮은 아버님만 있고, 누리는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오빠가 바닥 시공을 새로 했을지도 몰라요. 원래는 대리석 바닥인 집이구요. 가구는 기분 내키면 옮기는 거죠.
아버님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겠지? 그래, 승아 양.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그는 여기까지만 말하고는, 카페의 통유리 바깥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 고양이 사진을 이용해서 전단을 한 번 만들어 보겠네. 혹시 만약에 연락이 오면 승아 양에게 연락을 하면 좋겠지?
나는 그가 ‘혹시 만약에’라는 말의 발음을 흐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전단을 돌려도 아무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상철은 여전히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세상은 상철의 호의와는 달리 매캐한 인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상철의 호의와 겸양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그의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고 있다. 누리가 내게 눈빛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누리는 아마 상철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평소 보아두었던 현관문 여는 법을 이용해 집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녀는 센스있는 고양이답게 현관문을 닫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철의 집은 대리석 바닥이 시원해서 좋았고, 원목 바닥이 까끌해서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철이 있어서 좋았을 테다. 그녀는 배려심 많던 집사가 세상을 떠난 집을 뒤로하고 바깥 여행에 나섰을 것이다. 바깥 세상은 괴롭고, 깨끗한 먹거리도 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큰 사고가 나기 전에 구청 보호소 직원에게 보호되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전문가들의 감식과 관리를 통해, 로드 출신이 아니라 태생이 집고양이인 아이라는 게 알려졌을 것이다.
나는 상철의 집이 위치한 행정구역의 고양이 보호소에서 어렵지 않게 누리를 찾을 수 있었다. 누리는 치즈 태비였고, 세 살쯤 되어 보였으며, 접종과 중성화가 모두 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동물 등록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나는 녀석이 상철과 함께 살던 누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상철의 아버님께, 누리를 찾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잘 됐구나. 승아 양이 키울 건가?’ 라고 답장했고, 나는 말 없이 우리 집에서 물을 먹고 있는 누리의 사진을 전송했다. 그는 재미없는 이모티콘으로 답장했다. 데포르메한 캐릭터가 ‘축하해’ 말풍선을 띄우고 있는 이모티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