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왔다. 잔뜩 말다툼을 하고 들어간 자리. 그 아름다운 영상을 보는데도 마음은 좋지 않았다.
"흥. 예쁘기만 한 영화네."
삼시세끼 영화 버전? 뭐 그런 영화군.
하지만 멋진 영상들은 곧 비뚤어진 마음을 녹였다. 영화는 아름다운 자연과 맛깔스러운 요리를 재료로 녹여낸, 삶에 관한 것이었다.
삶을 고민하는 영화는 많다. 어쩌면 너무 뻔한 내러티브. 하지만 그만큼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주제다.
영화는 우리 삶이 자연과도 같다는 걸 이야기한다.
어느 가을 밤.
큰 태풍이 오고 봄, 여름동안 정성 들여 가꾼 논은 폐허가 됐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가꾼 프로젝트가 엉망이 된 걸 상상해 봤다. 정말 억울하다. 그렇지만 농사일은, 누군가에게 화를 낼 수도 없다. 자연이 한 일인걸. 자연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힘을 가졌다. 큰고모와 혜원은 벼 세우는 작업을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작업은 큰고모의 말처럼, 말없이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 새 끝을 보인다.
지독한 서울생활에서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은 자신이 고민해야할 일을 비겁하게 피하고만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어느 날 혜원이 사라진다. 그리고 재하는 안다. 혜원은 아주심기를 위해 잠시 모종심기 중이라는 걸. 그러니 곧 고향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재하의 예상대로 혜원은 곧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한껏 밝은 얼굴이다. 자전거로 동네를 한바퀴 돌고 집에 들어온다. 문이 살짝 열려있다. 그 사이로 하얀 커튼이 날린다. 그 모습을 보고 혜은은 밝게 웃는다.
아마, 엄마가 돌아왔는가 보다.
혹은 아주심기로 인생의 방향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들.
엄마도 많이 생각이 났고.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집에 엄마가 없으면 그렇게 울었다. 엄마- 엄마-, 맨발로 마당까지 나와 엄마-를 부르면 곧 엄마가 달려왔다. 내 낮잠 시간은 엄마에게 옆집 아줌마와 수다떠는 시간과도 같았다. 조금 크고 나선, 집에 엄마가 없어도 울지 않았다. 그리고 옆집 아줌마네로 갔다. 그러면 거기에 엄마가 있었다.
뒷산에서 밤을 줍다 엄마를 찾는 어린 혜원의 모습에 어릴 적 엄마를 찾다 울던 때가 생각났다. 엄마는 그런 존재다. 나에게도, 혜원에게도.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데, 같은 영화를 본 관람객 중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이렇게 피곤한 날 보기에는.. 좀 시간이 아깝다."
그 말에 힘이 쭉 빠졌다. 잘 본 사람도 있는데.. 왜 굳이 입 밖으로 내뱉어서 타인의 기분까지 해치는 걸까?
그러다가 금방 이해하기로 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다기 보단 그냥 시간의 흐름처럼 잔잔히 흘러가는 영화였고, 결말 역시 (다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열린 결말이었고, 그래서 마침표를 찍지 않은 것 같아 찝찝할지도. 그 사람에겐 그랬을지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
이 생각은 정말 오랫동안 갖고 있는 생각이지만 아직도 어렵다. 이 영화가 그런 걸 질문하는 영화가 아니었는데도, 나는 가끔 이렇게 "기-승-전-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에 빠진다.
뻔한 대답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 평생을 살면서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자신 없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좋은 사람? 자기 일을 잘 하는 사람? 주변을 잘 살피는 사람?
아직도 좀 어렵다.
꾸준히 가져가야 할 질문이다.
지금으로서 나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을 때 내가 당장에 실천하고 싶은 건,
주변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겸손.
쥐뿔 가진 것도 없는데 겸손이 왠말인가 싶지만, 아무 것도 없는데 떠는 유세는 더 꼴보기 싫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겸손이다. 겸손하자.
그리고 눈을 주변으로 돌리자. 나는 늘 나에게만 집중한다. 나를 돌아봐야 타인 역시 돌아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연습하자.
혼자 사는 삶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