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이라는) 한정된 용량의 작업기억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법?
·외부 저장장치 이용(문신, 폴라로이드, 메모,...)
·계속해서 옳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시스템, 습관 만들기
·레너드는 '기억'만 왜곡한 게 아니다. 레너드는 자신의 '기록'마저 왜곡했다.
·"현재의 나를 알려면 기억이 필요하다"
· 영화 메멘토가 빨리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 10-1-9-2-8-3-7-4-6-5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뒤틀려 흐르다 (주기적으로 머리 속을 정리하라)
스릴러계 희대의 걸작 영화 '메멘토(Memento)' 몇 줄 해석
놀란(Nolan) 형제가 만들어낸 희대의 걸작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답다.
'메멘토(Memento)'는 무려 19년 전에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지만 요즘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보다 훨씬 감각적이다.
메멘토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시나리오보다 편집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상실증과 복수라는 닳고 닳은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단순히 나열했다면 이 영화는 아마 그저 그런 독립영화로 남지 않았을까.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레너드와 관객이 공정하게 추리할 수 있도록 대략 10개 정도의 시퀀스를 두 흐름으로 나누어 하나는 과거에서 현재로, 다른 하나는 현재에서 과거로 시퀀스를 교차해 흘린다.
예를 들면 10-1-9-2-8-3-7-4-6-5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뒤틀려 흐르다 결국 이야기는 중간에서 만난다. 또한 시간의 흐름을 영상의 색깔로 구분하는 것도 신선하다. 거꾸로 흐르는 시퀀스는 컬러로, 올바로 흐르는 시간의 시퀀스는 흑백 영상으로 처리했다. 덕분에 뒤죽박죽으로 흐르는 정보의 파편으로 영화는 끝까지 왜 그리 되었나 진실이 궁금증하다. 그러니 집중하지 않으면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 몇 줄로 보는 메멘토 해석(스포일러 有)
인슐린으로 아내를 죽인 보험 사기꾼 새미의 이야기는 레너드의 이야기였다.
레너드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
레너드는 가정을 파탄낸 '존.G'라는 인물의 기억을 조작했다.
테디는 마약상 지미(나탈리 애인)를 존.G로 몰아 레너드가 죽이도록 유도했다.
반대로 나탈리는 테디를 존.G로 몰아 지미의 복수를 했다.
레너드는 이미 1년 전에 존.G를 죽였었다.
레너드의 현실 탈피 욕구와 주변 인물의 욕망이 계속해서 또다른 존.G를 만들었다.
일부 평론가들이 말하는 레너드 연쇄살인마 본능설은 동의하지 않는다.
레너드는 자신을 이용하는 테디를 죽이기 위해 고의로 기억을 조작했다.
https://brunch.co.kr/@cjswognels/91
메멘토(Memento, 2000)
영화가 배열하는 시퀀스의 묘미는 그것이 바로 레나드의 상실된 기억을 반영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시퀀스는 정확히 레나드가 현재를 기억하는 단위로 쪼개진다.
우리는 영화가 구성한 시퀀스를 마주하며 단기 기억상실증 레나드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시간을 역행시킨다. 시퀀스의 접합을 어렵게 만든다.
영화의 복잡한 구성은 우리로 하여금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의 위치에 놓이게 만든다. 시퀀스에 헤매는 우리는 '기억'이 없어 현재를 방황하는 레나드의 모습과 일치한다.
레나드는 기록이 남겨진 사진을 지도에 갖다 붙이는 등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행동을 거듭 선보이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영화가 남긴 수수께끼의 퍼즐을 맞추고자 줄곧 인상을 찌푸린다.
교차 편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을 역행하는 시퀀스들은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중간중간에 시간을 순행하는 시퀀스가 교차된다. 영화의 끝에서 거꾸로 흐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고, 영화의 시작점에서 순행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두 이야기를 교차시킴으로써 영화는 관객들의 퍼즐 맞추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감독에 의해 기억 상실증 환자로 전락한 관객들의 입지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레나드가 테디를 죽인 시퀀스와 레나드가 호텔에서 눈을 뜬 시퀀스가 교차될 때 관객들은 레나드가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비슷한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두 시퀀스를 어떻게 접합시킬지에 대한 단서가 관객들에겐 전혀 없다. 관객들이 이런 난처함에서 벗어나는 건 교차되는 두 서사의 교차 지점이 분명하게 보일 때다.
교차 전개되던 서사가 하나로 이어진다. 영화는 레너드가 테디를 만나 지미(래리 홀든)를 살해하러 가는 장면을 선보인다.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기억'이 하나로 완성되며 비로소 관객들은 '현재의 레너드'란 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테디는 말한다. 레너드는 이미 아내와 그 자신을 습격한 괴한들을 죽였다고. 심지어 그 아내는 그 괴한들의 습격으로 죽은 게 아니다. 테디는 레너드가 구구절절 얘기해 주는 새미 젠키스(스티븐 토보로스키)의 이야기가 실은 그의 경험을 통해 재구성한 이야기라고 한다.
테디의 설명을 통해 레너드가 자신의 '기억'을 왜곡한 채 거듭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있음이 드러난다. 레너드는 '기억'만 왜곡한 게 아니다. 레너드는 자신의 '기록'마저 왜곡했다.
영화는 테디와 레너드란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기억'과 '기록' 사이의 우선순위 논쟁을 전개시키나 영화는 말미에 이 논쟁 자체를 무위로 돌린다. '현재'의 레너드는 관객들이 기대하던 '과거'의 레너드와 명백히 다르다. '완성된 기억'은 현재의 레너드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영화는 특유의 구성만으로 "현재의 나를 알려면 기억이 필요하다"는 레너드의 말을 몸소 증명한다. 오직 그 '기억'이 레너드에게만 없음은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니 그는 그런 살인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영화의 구성은 기억의 놀라운 힘을 증명토록 짜여져 있다. 제 아무리 복잡한 구성이라도 관객들은 기어코 하나의 '서사'를 완성시킨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지닌 단기 기억을 바탕으로 영화가 내놓은 퍼즐 조각을 완성시킨다.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시퀀스를 주워 담아 하나의 '서사'로 만드는 건 관객들이 지닌 기억의 힘이다. 이전 시퀀스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 관객들은 그것을 다음 시퀀스와 연결하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현재의 레나드'를 이해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영화의 구성은 그 자체만으로 관객이 지닌 기억의 힘을 긍정하는 면이 있다. 영화가 제시한 퍼즐을 풀고 나면 나도 모르게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에 환호성을 보내게 된다.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줄곧 왜곡이 범해질지라도 명백히 축복이다.
영화의 결말은 모호하다. 레너드는 테디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을 믿어선 안 된다."고 사진에 적는다. 용의자 리스트에 '갬멀'의 이름을 올린다. 자동차 번호판을 기록한다. 훗날 레너드가 적은 기록들은 레너드가 테디를 죽이는 데 활용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중요한 건 이때부터 이미 레너드가 테디에게 복수할 뜻을 품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사한 오프닝 시퀀스와 클로징 시퀀스의 대조는 이 영화가 어디까지나 테디에 대한 레너드의 복수극임을 명확히 한다. 레너드는 나탈리에게 속아 테디를 죽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레너드는 자신의 기억과 기록을 왜곡한 데 불과하다. 테디를 죽이고자 레널드를 이용한 건 나탈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용당한 쪽은 나탈리다. 지미를 죽인 레너드가 그 행세를 하고서 현장을 떠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윽고 레너드는 나탈리를 만난다. 테디를 죽일 수 있는 상황에 떠밀린다. 애초부터 레너드는 테디를 죽일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실행코자 나탈리에게 접근했다고 보는 게 옳다.
'구성'의 힘을 똑똑히 느낄 수 있는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왜 그리도 우호적인 찬사를 받는지 알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만이 영화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 더 나아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일을 제대로 해낸다. 나는 영화를 보고 영화 감독이란 이런 파격을 선보이는 위치에 있는 인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메멘토'의 매력은 특유의 '구성'과 '편집 방식'에 있다. 영화 자체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런 영화가 문득 그립다. -by Nseulgi Sep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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