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심야영화로 1987을 봤다. 이하 70년대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의 Frame Analysis 이론에 입각해서 1987의 후기를 적어 본다.
모든 위기의 본질은 한 사회의 현실을 정의하는 지배적 프레임의 균열과 파괴(Frame Breaking)로 인해 사람들의 상황인식과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관여 (involvement)가 급변하는데 있다.
보통 한 체제가 현실을 정의하는 지배적인 프레임은 다양한 국가기관의 행정조직, 제도권 미디어의 공적인 담론, 권력의 핵심부가 장악하고 있는 정당들의 제도적 실천에 의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므로 이 체제 자체의 구조적 취약점으로 인해 모순적인 사건들이 가끔씩 그러나 필연적으로 발생해서 그것이 일시적으로 고장난다 하더라도 문제를 청산하는 제도적 절차에 의해 쉽게 봉합될 수 있다. " 옆구리 좀 터졌다고 소란 떨 필요 있갔어"라는 박처장의 말처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그들이 일상적으로 작동시키는 제도적 메카니즘에 의해 충분히 봉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이라도 어떤 국면에서 우연이나 다양한 액터들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기존체제의 봉합 메카니즘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이벤트나 사건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Frame Breaking Event라 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북한과 내통하는 빨갱이들에 의해 안보가 위협받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비도덕적 권력에 의해 인권이 폭력적으로 압살되는 독재자들의 세상"으로 현실에 대한 "공식적" 정의를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는데 의미가 있다. 국민 다수가 80년대 대한민국이 야만적인 독재국가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저항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만으로는 기존 체제내에서 안정적으로 동작라는 지배적 프레임을 털 끝만큼도 훼손하지 못한다. 국민 다수가 공유하는 현실인식은 프레임 브레이킹 이벤트를 통해 "공식화"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마치 박근혜의 수많은 액션이 쇼 - 누군가에 의해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따라 하는 전시적 행위 (scripted activity on the stage) - 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세계를 인식하는 공식적인 인식의 틀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던 것과 같다. 친노와 종북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지배적인 프레임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표면화된 이후에야 비로소 급속하게 깨지기 시작했다. 촛불혁명은 박근혜의 본질이 최순실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현실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변화된 이후에야 시작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1987은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어떻게 Frame Breaking Event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1987은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처럼 이것을 은밀하게 봉합하기 위한 폭력적 국가조직의 제도적 실천을 소심하고 평범한 액터들이 생사를 위협하는 공포와 인간 내면의 양심 사이에서 도덕적 갈등을 겪으면서 시신처리 절차, 사망원인 보고서, 보도지침, 교도소내 보안지침과 같이 그들의 현실을 조작하기 위해 동원하는 강압적인 Framing Device들을 분쇄하고 돌파해 가는 이야기...그리고 마침내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극적으로 공개됨으로써 그들의 "안보 프레임"을 박살내고 - 즉 Frame Breaking 시키고 - 다수 국민이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된 소설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보다 더욱 극적인 현실 로서 많은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에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감격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 진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