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기발하고도 대담한 저항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마을, 한 저택에 8명의 멤버가 모였다. '강도'를 모의하기 위해, 그것도 매우 독특한 방식의 '강도'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마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TFT인 셈이다. 이름도 모르고 서로 안면조차 없던 이들을 사상 최대의 '강도'를 위해 한 팀으로 조직한 이는 자신을 '교수(프로페서)'라 부른다. 강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성격을 가진 그는 이제 여기 이 외딴 저택에서 5개월간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치밀하고도 거대한 이 프로젝트, 사상 최대의 '강도'를 교육할 계획이다.
그들은 이제 서로를 도시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다. '프로페서'는 완전한 범죄를 위해 서로의 개인사를 절대 공유하지 말 것을 원칙으로 둔다. 이후 시리즈 내내 '프로페서'의 이 모든 디테일한 설계가 어떻게 이들을 경찰수사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게 되는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이들은 서로 처음부터 몰랐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팀웍은 돈독해진다.
'도쿄', '베를린', '덴버', '모스크바', '리우', '헬싱키', '오슬로', '나이로비' , 그리고 이 모든 작전을 구상하고 치밀하게 계획한 한 남자 '프로페서'
생각해봐.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 다니지.
그렇게해서 잘 풀린다해도 형편없는 일을 해.
성공해서 다시는 일하지 않을려고.
'성공해서 다시는 일하지 않으려고', 와우.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지 않나. 나도, 당신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사업을 준비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단, 이들이 준비하는 프로젝트는 상상초월 특수작업일 뿐이다. 이제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이 대담한 프로젝트의 타겟은 '스페인 조폐국'이다. 이들은 지금 '스페인 조폐국'을 털 계획이다.
시리즈 제목인 '종이의 집'이란 바로 '스페인 조폐국'을 의미한다. 알고보면 돈(Money)이란게 그냥 종이에 인쇄된 것 뿐이니까. 이들 8인조 강도는 바로 이 '종이'를 이용한다. '스페인 조폐국'으로 입고되는 '화폐용지' 배송 트럭을 통해 강력한 보안을 뚫고 무장 침투하면서 본격적인 '강도'가 시작된다. 첫 편부터 스펙터클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첫 편에서부터 이 대담한 '강도'의 목적이 조폐국을 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왜? 그들은 이제 여기 '스페인 조폐국'에서 정해진 시간을 버텨야 한다. 얼마나? 왜 굳이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일까? 경찰은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계획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모든 것은 '프로페서'의 시나리오대로. 이것은 설계인지 계획인지, 우연인지, 예측불가의 상황이 발생한 것인지, 위기인지, 아닌지 계속해서 우리의 심리를 들었나놨다 한다. 멈출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프로페서'는 항상 잘 차려진 젠틀한 신사의 애티튜드를 고수한다. 어느 누구도 그가 이 모든 범죄의 설계자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비단 경찰 수뇌부라 하더라도. '교수'라는 번역 대신 굳이 '프로페서'로 지칭하는 이유가 있다. 그가 8명의 멤버에겐 단순히 범죄의 설계자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정신적 지도자와도 같다. 완전하게 신뢰하는 이름, '프로페서'. 마치 영화 X맨에 나오는 바로 그 '프로페서'처럼 말이다. 이 프로젝트는 바로 리더에 대한 완전한 신뢰만이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간단치는 않는 게 문제다. '프로페서'는 모든 변수를 상정하고 그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아주 세부적인 모든 것들을 계획하고 빈틈없이 교육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도쿄'의 돌발 행동이 계획을 조금씩 어긋나게 한다. 예정에 없던 상황에 내몰리고 감정이 격해진다. 위기 상황에서 멤버간 신뢰는 언제나 위태롭다. 과연 그들은 경찰과 대치되는 완전 고립 상황에서 이 '조폐국'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레지스탕스(저항군)'다.
단 한명의 피해자도 없어야 한다.
스페인 대중이 우리에게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살바도르 달리'의 가면을 쓰고 빨간 작업복을 입은 8인조 강도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한다. 그렇다. 그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강도'가 아닌 '레지스탕스'로 규정하고 원칙을 세웠다. 이것은 '저항운동'이란 것이다. 대체 무엇에 대한 저항운동인지 전편을 다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천재 화가이자 한 때 반정부 운동으로 투옥된 적도 있는 인물이다. 기이하고 유쾌한 그의 행동이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달리'는 스페인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이기도 하다
또 하나 이 작품의 쾌활하고 극적인 장면을 완성하는 것은 음악이다. 이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오 벨라 차오(O Bella Ciao!)'는 레지스탕스(저항군)의 상징과도 같은 대중적인 음악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파시스트에 저항하는 노래이지만, 자유와 평화에 대한 희망이 담긴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라서 혁명적인 이벤트에 많이 불리는 꽤 대중적인 노래다. '프로페서'와 '베를린'이 이 대담한 강도의 실행을 앞두고 하루 앞두고 마지막 만찬 후 함께 부르는 노래는 마치 '마드리드 투우사'같다.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2017년 파트1에 이어 2018년 드디어 파트2까지 시리즈 전편이 완성되었다. 스페인 조폐국 무장강도 사건을 스토리라인으로 발빠른 전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 전개와 이에 따른 긴장감이 스페인 특유의 리듬감으로 살아있다. 디테일한 설계와 계획, 그러나 예측불허의 변수는 계속되고, 작품 곳곳에 숨겨진 스페인의 상징과 메세지를 읽어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를 준다.
2012년 스페인을 떠올려 보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의 시작은 당시 거리로 쏟아져나온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일지도. "생각해봐. 그저 종이에 인쇄된 것 뿐일텐테 '돈' 때문에 잃어버린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프로페서'는 처음 8명의 멤버를 구성할 때 그렇게 말했다. 이들이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2012년 마드리드는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시위로 뜨거웠다. 스페인 경제와 정부의 긴축 개정에 반대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다. 당시는 실업률 평균 26%, 청년 실업률이 40%에 육박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스페인 '모피아'의 부패와 비리는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전직 중앙은행장과 금감원장 등이 공모하여 회계부정과 파산위기의 특정 은행에 무려 200억 유로(한화 28조원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고, 결국 유럽연합의 구제금융 상태를 촉발했다. 스페인 대중은 경제 위기 처방으로 정부가 과감하게 사회경제 기반 시설 사업에 돈을 풀어 일자리를 만들 것을 주장했으나, 유로권 지도자들은 '긴축'을 고집했다. 결국 스페인 경제의 고통은 고스란히 스페인 국민들이 짊어졌다. 유럽중앙은행의 막대한 유로는 은행과 모피아를 배불렸고, 반면 민중은 긴축으로 고통받았다 여겼다. 2017년, 스페인에서는 2012년 스페인 국가 부도 사태 위기 책임을 물어 전직 중앙은행장과 금감원장 등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이들을 모두 입건했다고 전해진다. 소위 모피아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우리는 아직글쎄.
최근 스페인에서 들려 온 기쁜 소식은 '스페인 경제가 가파른 성장세를 회복했다'는 것이다. 많은 청년들이 스페인 지역 곳곳에서 창업 열정을 이어가고 있고, 2018년 유로존 3위의 경제국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스페인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경제구조의 재편'을 꼽고 있다. 스페인 경제 상황과 비교해 이 작품을 본다면 한 국가의 중앙은행과 조폐국이 발행하는 '돈'이 과연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기 좋은 작품이다. 이들이 왜 자신들을 '레지스탕스'라 했는지 마지막 편에서 확인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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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들이 이 대담한 '스페인 조폐국' 무장강도를 계획하고 준비한 저택이 위치한 곳, '톨레도'
이 곳은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km에 위치한 스페인 역사 유적지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이지만 한 때 로마군에 저항한 스페인 민중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성지같은 곳이기도 하다. 로마가 아무리 힘과 권력으로 눌러도 끊임없이 저항하는 톨레도의 민중을 가리켜 '무섭도록 인내하며 항복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톨레도'라는 지역명으로 불리게 되었다니, '프로페서'만큼 디테일한 작가와 감독이지 않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설계가 작품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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