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속에서 안전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종.
2018년 4월 현재 방영 중인 tvn 다큐예능 '숲 속의 작은 집'을 보다가 떠오른 작품이 하나 있는데, '맨헌트: 유나바머(MANHUNT: UNABAMBER)' 2017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에서 제작된 미니시리즈이자 이 드라마가 미국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라는 충격적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이 더욱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오늘 당신의 집 현관벨은 몇 번 울렸나요? 하루가 멀다하고 택배 기사의 방문을 받고 있지 않나요? 현대인에게 우편물은 너무 일상적인 방문이며, 따라서 겉면에 주소와 이름만 있다면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말이죠. 만약 당신이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잠깐 우편물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이것이 '고작 우편물 한 통(?)' 이라고 여겼다면, 예고편을 보는 순간부터 당신은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 우편물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라고 시작하는데, 현대인에게 제발 잠깐만이라도 생각 좀 해보라고 부탁하는 카진스키의 권유같다. 어디서 발송되고 어떻게 전달됐는지 모를 어떤 우편물에는 기폭 장치가 심어져 있다. 하지만 이 우편물은 아무런 의심없이 유유히 전달되고 전달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폭탄 테러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편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언제든 위협 속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매우 잘 관리되는 시스템 속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스템 속 인간은 그저 '복종하는 순한 양-카진스키의 표현에 따르면-'처럼 행동한다. 그는 우편물 전달 과정에 속한 개개인 모두가 '생각 없는 로봇'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누구도 일탈하지 않으며, 사색할 여유도 없이. 그렇게 시스템은 아무 문제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위협은 모두가 '생각 없는 로봇'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 자신 탓이 아니며, 사회가 우리를 '순종적인 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유의지를 가졌다 주장하는 사람이더라도 말이다.
잠깐 우편물에 관해 생각해보기 바란다. 아주 순한 양처럼 무조건 순종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미국 우편물이 고려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교실에서 쪽지를 건네듯 종이 한 장이 대륙을 건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당신에게 쿠키를 보낼 수도 있다. 그저 상자 위에 당신 이름을 쓰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그럴 수 있는 건 우편물 전달 과정에 속한 개개인 모두가 생각 없는 로봇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소를 쓰면 그들은 복종한다. 의구심도 없고, 일탈도 없고, 영원을 사색할 여유도 없다. 아름다움이나 죽음도 심지어 자유 의지를 주장하는 당신조차도 당신 앞으로 온 소포가 도착하면 무조건 순종할 뿐 다른 생각은 못 한다. 그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 사회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다. 당신은 양이며, 양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 당신들 모두가 양이고 순종밖에 못 하므로 난 어느 곳의 누구라도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다.
이는 미국에서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범인은 무려 17년간 우편물을 통해 사업가, 과학자 등 3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런데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범죄의 치밀함에 오랜 시간 FBI가 무려 15년간이나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고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을 가리켜 일명 '유니버시티(대학) 폭탄 테러'라는 의미의 '유나바머'로 불렸다. 이 작품은 바로 당시 우편물 연쇄 테러 사건을 쫓는 신참 프로파일러 '제임스 피츠제랄드'의 이야기이자, 실제 범인이었던 하버드 출신의 수학자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작품 속 인물은 '시어도어 테드 카진스키'로 나옴)의 이야기이다. 국내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도 이 사건을 다룬 적 있다고 한다.
1995년 처음으로 FBI 공식 프로파일러가 된 제임스 피츠제럴드('피츠')는 일명 '유나바머'로 불린 테러범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기존 FBI 조직 내 관료주의와 공고한 질서는 신참내기의 의견을 들어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프로파일링을 이어가는 '피츠', 그러던 중 FBI로 전달된 우편물 한 통에는 일종의 논문과도 같은 선언문이 담겨 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범인은 자신의 선언문이 담긴 이 글을 유력 일간지에 게재할 것을 요구해 온다. 제목은 '산업사회와 그것이 가져올 미래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 기술의 진보가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시키는지에 관한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다. 실제로 이 선언문이 당시 '뉴욕 타임즈'에 게재된 바 있다.
FBI 수사당국은 '폭탄테러'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누구도 이 선언문 따위에 관심이 없지만 신참 프로파일러 '피츠'는 유독 이 '선언문'에 집착한다. 고정 관념을 깨고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한다. 선언문에 담긴 언어적 특성을 바탕으로 범인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 당시로서는 거의 최초로 시도된 Linguistic Profiling이 아니었을까? 이를 바탕으로 드디어 범인을 특정하게 되는데, 그가 어떻게 범인을 추적해 가는지 프로파일링 과정이 두뇌게임처럼 흥미롭게 전개된다.
결국 1995년에 FBI는 몬태나 주 '숲 속의 작은 집'에서 '시어도어 테드 카진스키'를 체포한다. 그의 삶은 그 자신의 선언문의 실천과도 같다. 현대 문명과 단절한 채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 작품 속 그의 과거사와 모든 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가운데 재판이 열리고, 끝까지 논리적 반박을 이어가는 '카진스키', 법언어적 증거가 허용되지 않아 자백이 꼭 필요한 상황이지만 '카진스키'는 만만치 않다. 법률 시스템은 과연 옳은 판단을 내렸을까? 판다는 시청자 몫이다. '카진스키'에게 가장 잔인한 징벌이 내려진다. 마지막 편에서 확인하길. '시어도어 (테드) 카진스키'를 연기한 '폴 베타니'의 연기로 인해 감정적으로 동화되기도 한다.
당신은 자신에게 말한다. 통제하는 것은 당신이며 그들이 당신과 당신 기술 당신 기계에 복종한다고 하지만 차와 전화기가 없으면 당신은 어떻게 되지? 모든 비행기가 멈추면 어떻게 되지? 10년 전에는 컴퓨터가 비싼 장난감이었지만 오늘날엔 컴퓨터가 없다면 우리 문명은 붕괴할 것이다. 당신은 정전과 컴퓨터 고장을 걱정하고 자동차와 전화기가 작동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당신 삶과 사회를 구축한다 모든 건 그들의 욕구 위주로 돌아간다 그들이 부르면 뛰어가고 그들이 전화하면 받는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통제하는 것일까? 당신인가, 그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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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 보면,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상실된 인간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각자가 자신을 신뢰하며 삶의 순간마다 잠깐 멈춰 생각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