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생각해보자.
우선 현금의 기능이 위축되고 있는데 이는 온라인 거래가 늘어나면서 주된 지급수단으로 현금이 아닌 디지털화된 화폐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금 발행 주체인 중앙은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현금을 계속 발행하면서 화폐가치의 안정과 잠재적인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운 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기술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핀테크·빅테크 기업, 크립토화폐네트워크 등이 화폐적 기능을 갖춘 지급수단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게 된 측면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중앙은행은 디지털시대의 현금, 이른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 발행에 나서고 있다. 줄어든 현금통화를 디지털시대에 맞게 탈바꿈하여 다시 사용을 늘려보자는 것이다.
여러 중앙은행이 그동안 발표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각국의 CBDC 발행은 지급결제 발전정도에 따라 연구 검토, 기술적 증명 실험, 상용화에 이르는 단계가 상이하지만 불가피한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CBDC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 기능과 파급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아직은 그 모습이 어떠할지를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CBDC가 현금의 지급수단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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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시중은행의 2-Tier(계층)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소매지급 및 금융중개 기능에 있어 혁신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민간업자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적용기술에 있어서 검증· 관리가 용이한 방향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CBDC가 발행되면 현금은 데이터의 형태로 변환하여 현금을 보유한 자와 중앙은행을 더 가깝게 연결할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변환에 힘입어 기존에 현금 발행 및 이용에 있어 관련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금융 포용 등 서비스 확대로 대체적 화폐수단에 대한 경쟁력도 회복될 것이다.
다만 CBDC가 법정 디지털 현금으로 그 지위를 굳건히 자리잡고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공공재(central bank public good)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해결할 과제가 남아 있고 이를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선 법정통화를 가까이서 위협하는 테더(Tether), 유에스디 코인 등 스테이블코인과 페이스북이 발행할 디엠(Diem,올 12월 발행 예상)보다 이용 편의성, 관리 효율성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중앙은행은 암호화폐 기술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한 가운데 대체기술 적용의 어려움, 이에 따른 관리의 복잡성을 이겨낼 만한 정보기술(IT)인력을 양성하고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또한 중앙은행은 데이터로 변환된 현금에 대한 발행·이용·상환 등의 정보를 관리 또는 감독해야 하는 책무가 늘어나면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사회적 활용을 동시에 달성하는 마이데이터(MyData )접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현금 외에 지급결제 수단이 다양해지고 화폐가 갖는 주요기능이 분화되어 나아가는 새로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real world)이 아니라 접근가능한 세상, 즉 디지털 세상(mirror world)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추어 중앙은행이 발행한 현금만이 독점하기보다는 CBDC, 민간페이, 스테이블코인, 비트코인을 포함하는 다양한 디지털화폐의 스펙트럼에서 화폐적 기능의 우위를 다투면서 서로간에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누가 발행하느냐가 아니라 안전하고 신뢰하는 지급수단만이 최종적인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1원의 순자산가치를 유지하는 화폐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