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손 아버지와 조막손이 아들/노자규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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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손 아버지와 조막손이 아들
“아들아!
아무리 가위가 잘 들어도
그리움은 못 자르는 기라.... “
오늘은 섬마을 이발사의
49년의 애환의
기다림을 얘기하려 합니다
이북 황해도와
2.5㎞ 떨어진 이 섬에
바다 건너 피난 온 살 향민 이발사가
섬마을 이발관에서
일흔아홉 살의 이발사가 되어
오늘도 아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손님 없는 빈 이발관에서
텔레비전이
혼자 떠들고 있는 자리엔
하루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이 이젠 전부가 되었습니다
전쟁통에 미쳐 나오지 못한
작은 아들을 데리러 돌아갔다
나오지 못한 채
남편과 아내는
아들 하나씩을 맡은 채
생이별을 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곧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섬사람으로 49년을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는 기대로
덧 자란 머리카락
잘라내듯 시간을 견뎌내면서 말이죠
그런 그에게도
그 긴 그리움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아버지는 지난날
아들에 대한 기억 한편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띄웁니다
아들이 어릴 적에 동네 친구들에게
가위바위보로 놀림을 당해
친구들이 놀아주지도 않는다며
울면서 들어왔었죠
울다 그치다
밤새 투정을 부리다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조막손이
아들의 손을 매만지는 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고요
손가락장갑도 끼지 못하고
엄지 장갑조차 끼기 힘든 아들
엄지 장갑에 엄지손가락을 잘라
바느질을 해 머리맡에 놓아두었더니
아침에 일어난
아들은 장갑을 냉동댕이 치더군요
“,, 이게 뭐야,
멍텅구리 장갑이 됐잖아,,,,,
울며 학교로 간 아들을 생각하며
손님이 없는 이발관을 홀로 지키다
그리움만 한껏 매단 집으로 왔을 때
다락방에서 추위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보고선
말없이 누어 팔베개를 해주었답니다
아들을 꼭 끌어안아 주면서요....
“어미도 없이,,,,,,,“
두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아들의 빰에까지 닿아
온기에 눈을 뜬 아들도
저와 똑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지나는 저 바람에게 물어봤어요
“이 그리움을
어디에 숨겨둘 때 없냐고...”
가장 추운 다락방에서
가장 따뜻한 밤을 보낸 것 같아요
우리 사람들의 몸속엔
끊어내고 끊어내도 돋아나는
저 머리카락처럼 그리움도
지치지도 않고 자라나 봅니다
그려....
아마 43번째 생일이었든 것 같네요
그 조막손으로 아들이
차려준 밥상은 행복이 가득했지요
“미역국 맛나다..
우리 아들 잘 끓였네 “
“그지, 맛있지,,“
저는 국그릇이 구멍이 나게
박박 긁어 다 먹고는
흐뭇한 트림 한 점을
토해 내었을 겁니다 아마..
조막손이 아들과의
추억 여행을 마치고
건너지 못한 그리움의 저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그때
"아버지요“하며
부르며 들어서는
이젠 30살이 되어버린 조막손이 아들
조용히 아버지 옆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 진짜 정은
저 바다 건너 니 엄마밖에 없다 “
아직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길어 나는 저 머리카락처럼
끝없이 싹을 틔우는
필사적인 뿌리가 존재하듯
그리움도 아버지의 가슴에
살아있기때문일 겁니다
아버지는
늘 집에 오시면 잠든 저를 깨워
“우리 아들
가위바위보 한번 하고자야지...”
이겨서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직 주먹밖에 낼 수 없는
조막손이 아들 앞에서
아버지가 낼 수 있었던 건
“가위”밖에 없었어면서도요
두 손을 꼭 쥐어주시며
아들아!
“니손을 보지 말고 니꿈을 보거래 “
하시든 말씀이 지금도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도
현관 앞에 먼저 들어오신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기력 있을 때까지 가위질해야지”라든
아버지의 퇴근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 마음이 아파옵니다
바다 건너
고향 밟을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하루를 저어온
내 아버지의 저 낡은 구두가
오늘은 배가 항구에서 닿을 내리듯
현관 앞에 머물러 잠들어 있습니다
닳아 빠져 굽이 없어져 버린
저 구두는
아버지와 같이 늙어가면서 말이죠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는 그대로 지만
그 자리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마지막 이별을 연습하듯이 말이죠
“ 다음엔 내 차례겠제....
내죽 거 든 저 바다에 뿌리 도라
내 뼈라도 흘러 니 엄마한테 가고 싶다... “
가윗날을 아무리 날카롭게 갈아도
그리움만은
잘라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실향민을 위한
노래자랑이 벌어집니다
가위손 아버지와 조막손이 아들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언제나 어둠이
내려앉은 그믐달을 올려다보며
걸한 술 한잔에 시름을 토해내듯
밤하늘에 울려 퍼지던
아버지의 그 노래를
오늘은 저도 같이 불러보려고요
남진의 “가슴 아프게,,.”
“당신과♪ 나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평생을 해온 가위질에
휘어진 손가락 따라
울려 퍼지는 내 아버지의 그 노래가
엄마가 있는
저 바다 건너 까지 닿기를 바라며
또 바라며......
노래를 마친 뒤
가위손 아버지는 아들에게 묻습니다
“ 아들아
니랑 나랑
사는 여기가 어디라고?
아버지요! 여기는
“ 대한민국/ 행복시/ 기쁨 구/ 사랑동/ 아닙니까...
아버지!
아들아!
사랑한데이....
그렇게 여름 밤하늘을
수놓은 노래자랑은 끝이 났습니다
가위손 아버지와 조막손이 아들은
하루살이 별들이
수놓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로를 꼭 안아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모습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하늘을 올려다는 아들에 눈에
엄마 잃은
별 하나가
반짝 거리고 있었습니다
출처/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