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불편한 이야기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렇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입에 담기 힘든 협박의 기억을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이, 한 가족의 역사가 어떻게 파괴됐는지 기록하고 있다. 국가폭력 사건, 모두에게 불편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 한때는 들추면 총칼로 위협을 당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그랬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말만 꺼내도 색깔을 입히고 쌍욕을 해댄다. 예나 지금이나 금기어 취급당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다. 이건, 내게 특별한 이야기다. 국가폭력의 흔적을 음식으로 풀어냈다. 잔혹한 기억을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으로 표현했다. 짬뽕에선 통쾌한 결말을, 오리고기는 잔인한 현실을, 아귀 라면에선 가슴 아린 사연을 기록했다. ‘국가폭력 이야기-인권을 먹다’ 이야기다.
여기, 불편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이다.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이 사람의 공이 컸다. 진실을 파헤치고 세상에 알린 변상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지금부터 그가 기억하는 음식과 거기에 얽힌 국가폭력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는 짬뽕과 제2, 제3의 이근안에 관한 기록이다.
그날은 짜장면을 시키고 짬뽕을 먹은 날이었다. 주문 사고는 아니었다. 김상원 씨는 짬뽕을 앞에 두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끝내는 한술도 뜨지 못하고 변상철 시민기자에게 “바꿔 먹자”라고 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군소리하지 않았다. 어떤 기억이 되살아나서 이러는 줄 알았다. 중국집에 오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일은 끝났으나 제2의, 제3의 이근안은 30년이 가까이 김상원 씨의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지난 2010년 4월,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변상철 시민기자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있을 때다. 그가 기억하는 김상원 씨는 이랬다.
“오토바이를 타고 찾아왔다. 거칠고 투박한 사람이었다. 감방 동기가 소개해줬다며, 작은 종이상자를 들고 왔다. 거기엔 지난 1982년 있었던 국가폭력에 관한 조사기록이 들어 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선 짬뽕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놨다.
“수사관들이 기록을 정리하는 동안에는 원산포격으로 대기시켜 놓고 이 사람, 저 사람 들어오면 발로 짓이기고 각목으로 구타를 해요. 뭐 그냥 샌드백이 된 기분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점심때 짬뽕이 식사로 나왔는데 면만 먹고 국물을 남기면 더 맛있게 먹게 해준다기에 저는 시키는 대로 국물은 남겼습니다. 밥이라도 말아주는 줄 알았죠.
(중략) 홍 계장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이제 시작하지’라고 하자, 수사관 김종O, 이한O, 안영O 등이 들어왔어요. (중략) 얼굴에 큰 수건을 덮더니 물 주전자에 짬뽕 국물을 섞어서 코 주위에 물을 부었어요.”
짬뽕은 고문 도구였다. 김상원 씨에겐 흔하디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답답했다. 억울한 사연은 알겠는데, 풀어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었다. 접수도 안 된 사건을 조사할 수도 없었다. 고민이 깊어졌다.
길이 보였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직권조사’란 단어를 발견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서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위원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진실규명사건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진실규명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이를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 (제22조)
김상원 씨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최선을 다해 보겠다”라고 했던 게 가슴에 남았다. 팀장을 만나고 국장을 찾아가 설득했다. 위원들에게 부탁했다. 조사라도 할 수 있게 됐다.
조사결과, 진실은 이랬다. 고문과 협박에 의한 허위자백. 하지만 직권조사 결정은 기각됐다. 김상원 씨는 조사결과보고서라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걸 들고 법원으로 달려가 재심을 신청했다. 지난 2013년, 김상원 씨는 30년간 자신을 옭아맸던 ‘간첩 혐의’에서 벗어났다. 그는 법정을 나오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형제들도 그를 얼싸안고 울었다.
그래서다. 이젠, 변상철 시민기자는 짬뽕을 보면, 김상원 씨가 떠오른다. 두 사람이 음식을 바꿔 먹던 날이 생각난다. 이날 김상원 씨는 한 장의 사진도 보여줬다. 거기엔 그가 고향 경북 예천의 시골 마을 길가에 내건 현수막이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1983년 8월 안기부에 끌려가 불법구금과 온갖 구타 및 고문으로 조작하여 간첩 누명 썼던 암천 김성환의 셋째 김상원이 2013년 12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에서 재심하여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김상원 씨는 짜장면을 앞에 두고 즐거워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짬뽕을 먹으며, 통쾌해했다.
변상철 시민기자에겐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음식도 있다. 그는 이 고기를 보면, 움찔하게 된다. 오리고기다. 노동자 심진구 씨가 좋아하던 거였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심진구 씨는 오리 백숙과 구이를 주문했다. 건강에 좋고 소화도 잘 된다며, 요즘 들어 챙겨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식당엔 그의 아내도 함께 왔다. 남편이 오리고기를 좋아해서 자주 들르는 식당이라고 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오리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심 씨가 간첩 조작 사건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삶을 풀어놓았다. 오리고기가 목구멍에 자꾸 걸렸다. 자신의 결백과 억울함을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렸다. 배를 채우는 건, 뒷전이 됐다.
그날도 그랬다. 심진구 씨는 감정이 격해졌다. 흥분해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사기꾼”의 이야기를 믿는 거냐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1~2시간이 흘렀을까? 진실화해위원회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럴 거면 조사를 안 하겠다. 신청을 취소하겠다며 자신의 가슴을 쳤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심진구 씨를 달래기 위해 걷자고 했다. 조사관은 조사만 해선 안 됐다. 진실규명도 중요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었다. 그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였다. 두 사람은 남산 한옥마을로 갔다.
아차! 싶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후회했다. 자기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심진구 씨는 자신이 끌려갔던 남산의 그 건물을 보자 눈이 확 뒤집혔다. 오열하며, 고문과 협박을 당했던 기억을 꺼내 놨다. 지난 2005년 1월 25일, 그가 국가폭력피해자 증언대회서 한 말이다.
“안기부의 고문 과정에서 정형근 단장과 만난 것은 1986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 전인 22일경, 정형근 당시 대공수사단장이 고문을 받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중략) 정형근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내뿜더니 “심진구, 이제는 간첩이라고 불 때가 됐는데. 여기 잡혀 오면 15일 이내에 다 불지 않은 사람이 없어.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국회의원도 잡아다 줘 패는 곳이야. 간첩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돼.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죽어. (중략) 고등학교만 졸업한 놈이 아는 게 너무 많아, 너 어릴 때부터 포섭됐지. 너 북에 갔다 왔지?”하면서 “간첩 소리 나올 때까지 더 족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실장과 대머리에 눈이 치켜 올라간 부하가 몽둥이로 내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내가 심문대 책상 뒤로 넘어지자 6명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구둣발로 머리를 짓밟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을 몽둥이로 난타하더니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벌거벗긴 채 손목과 발목에 수갑을 채우고 나서는 6명이 교대로 두들겨 패대는데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타이어처럼 둥그렇게 말면서 심문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심문실 바닥에 범벅이 되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내 발목에 묶인 수갑을 풀고 “일어서! 일어서! 새끼야!” 하며 벽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일보 앞으로! 일보 앞으로!”하면서 심문대 책상까지 다가오게 하였고, 나의 성기가 심문대 책상에 걸쳐지자 그중의 한 사람이 몽둥이로 툭툭 치면서 “이것 아직도 살아 있구만”하더니 1미터 정도의 길이의 몽둥이로 내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명을 지르면서 철제 심문대 책상 앞으로 고꾸라지자 이번에는 뒤에서 어깨와 머리를 쳐 뒤로 젖혀지면 또 앞에서 성기를 내려치기를 수십 차례, 나는 대들면 죽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개새끼들아! 차라리 죽여라, 죽여! 제발 죽여다오!”라고 외쳤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거. 이것도 조사관이 해야 할 일이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말뿐만 아니라 진실규명을 통해서도 이렇게 했다. 심진구 씨가 증언한 불법감금과 고문을 사실로 확인했다. 지난 2011년, 법원은 이 사건의 재심을 결정했다.
정형근에게 연락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그에게 재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달라고 했다. 그는 출석요청을 3번 거절하고 동행명령도 뿌리쳤다.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기억나는 게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정형근 단장”은 안기부를 나와 국회의원이 됐다. 신한국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이 됐고, 이후에는 한나라당의 최고위원까지 했다. 지난 2011년, 재심이 결정됐을 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사장이었다. 현재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이다.
지난 2014년 11월, 변상철 시민 기자는 새벽녘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심진구 씨의 딸이었다.
“조사관님... 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어요.”
상상은 했으나 바라진 않았던 순간이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조사관’ 활동이 끝난 뒤에도 심진구 씨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전화를 끊고, 변상철 시민기자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심진구 씨는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가 지워진 지 2년 만에 숨을 거뒀다.
지난 2014년 11월, 변상철 시민기자는 심진구 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제야 알았다. 오리고기가 암 환자에게 좋은 음식이었다는 걸. 심 씨의 아내가 오리고기를 먹으면,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도 남편을 따라 식당에 갔다는 것을.
이날 변상철 시민기자는 장례식장서 오리고기를 먹으며, 심진구 씨를 떠올렸다. 오리고기를 씹으면서 정형근을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음식은 아귀 라면이다. 생소한 요리여서가 아니다. 국가폭력의 비극이 음식에 배어 있어서다.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게 누구인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다.
개고생이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강원도 삼척까지 가느라 대설경보를 무시하고 기차를 탔다. 강원도 신기역에서 선로가 사라졌다. 눈에 철길이 파묻힌 거다. 객실에서 나와 눈밭으로 뛰어들었다. 한겨울 땀을 흘리며 눈을 치웠다.
어렵사리 동해역에 도착했다. 대합실을 빠져나오니 입이 벌어졌다. 그의 가슴까지 눈이 쌓여 있었던 거다. 삼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회사는 운행하는 차량이 한 대도 없다고 했다.
무작정 걸었다. 그는 눈을 헤치며, 삼척을 향해 나아갔다. 물 먹은 바지가 살에 달라붙었다. 다리가 어는 것 같았다. 이렇게 3시간쯤 걸었을까. 제설차를 발견했다. 달려가 사정을 말하니 타란다. 약속 장소에서 김용태 씨와 그의 세 친구를 만났다.
거기서 들었다. 생지옥을 경험한 증언을, 비극적인 삶을 살아온 김용태 씨의 이야기를. 네 남자와 아귀 라면을 먹으며, 국가폭력의 흔적을 기록했다. 이 기사가 그거다.
조작된 진실은 김용태 씨의 삶을 조각냈다. 그 아들의 인생도 조각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물림 돼 한 가정을 파괴했다. 반면, 고문과 협박으로 ‘간첩 조작 사건’을 꾸민 수사관은 당시 훈장을 받았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진실을 추적했다. 이때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관 신분이 아니었다.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도 만들기 전이였다. 말 그대로 ‘무직’이었다. 하지만 국가폭력의 진실을 추적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강릉 경찰서에 기록을 요청했다. 김용태 씨와 관련한 게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았다. 사건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황당한 사건을 거친 후 기록을 찾았다. 알고 보니 없는 게 아니라 숨기고 있었던 거다.
“지난 2012년 강릉 경찰서에 연락할 일이 있었다. 기록 관리원에게 오래전에 요청한 김용태 씨 기록을 찾았냐고 물었다. 사건번호를 물어 알려주니 5분 만에 전화가 왔다. 기록을 찾았다는 거다. 그동안 기록이 없어서가 아니라 숨기고 있었던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료를 건네준 기록 관리원이 신입이었다. 이 일로 상사에게 엄청 깨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그 직원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당시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 사람들을 데려가 그 직원을 소개하고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했다. 이렇게 2년 동안, 강릉 경찰서가 숨겼던 기록을 5분 만에 얻게 됐다.”
기록은 진실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015년, 김용태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김용태 씨는 20년 만에 죽은 아들을 찾아갔다. 그는 벽제공동묘지에 있던 아들의 납골함을 품고 삼척으로 갔다. 선산에 아들을 묻기 위해서다. 이날 그는 아들을 처음 가슴에 품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곁을 지켰다.
국가폭력의 흔적을 장소로도 기억했다. 변상철 시민기자가 간첩 조작 사건의 가해자들을 만났던 곳이다. 그들은 만날 장소를 까다롭게 선택했다.
“전·현직 국정원 직원은 호텔 커피숍이나 일식집에서 만나자고 한다. 요정이나 비싼 레스토랑에서 보자고 한 적도 있다. 동네는 주로 강남이다. 한 번 만날 때마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경찰은 자기 집 주변이나 그 앞 카페에서 만났다. 국밥집을 가기도 했다. 정보를 수집하던 습관이 남아서인지 그런 장소 아니면, 사람들이 편하게 자주 가는 곳에서 얼굴을 봤다.”
그가 가해자를 만났다고 해서 물었다.
-간첩 조작 사건의 가해자가 사과한 적이 있는가?
“지금껏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법원에서 최종 무죄선고가 난 후에도 그렇다. 아무런 반응도 없다. 가해자는 여전히 뻔뻔했고, 피해자는 여전히 주눅 들어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국가폭력 이야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난 19일, 변상철 시민기자가 기록한 스물두 번째 국가폭력 이야기가 <오마이뉴스>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이 기사가 그거다.
그의 국가폭력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고문과 협박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이 책상에 수북이 쌓여 있다. 오늘도 그는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두 발로 뛰고 있다.
지난 20일에도 그랬다. 그는 현장에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군산에서 간첩 조작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고 했다. 곧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이젠 심판해야 한다. 고문과 협박에 가담했던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 간첩 조작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죗값을 물어야 한다. 이게 삶이 조각나고 가족이 파괴된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이 시작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는 거부터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전화를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
“곧 사건으로 말하겠다. 결과를 지켜봐 달라.”
변상철 시민기자가 지치지 않게 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후원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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