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14일차 (2017.06.21)
온타나스 - 보아디야 (Boadilla) 32km.
메세타(Meseta)구간에 접어든지 이틀째로 오늘도 끝없는 평지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쾌적했던 알베르게에서 나와 어제와 비슷한 거리인 32km 를 또 걸으려니 벌써부터 발이 아파오네요ㅎㅎ
평지를 걷고 또 걷고 아스팔트길도 걷고 , 사실 흙길보다 아스팔트길이 발에 피로감을 더 주는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평평한 바닥때문인지 오히려 발에 힘을 덜 줘서 신발속에서 발과 깔창이 조금씩 미끌려서 일까요. 오늘의 일정에서 큰 언덕은 저 산(?)과 하나가 더 있는데, 그마저도 10분정도 올라가면 끝인 전체적으로는 평지였어요.
비록 낮은 언덕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정상에 올라가니 저 아래 드넓은 평야들과 농지들이 내려다 보입니다. 바다에 수평선이 있다면 이곳은 바로 지평선이 보이는 곳이예요. 마치 자로 잰 듯한 저 지평선에 왠지모를 평온함이 느껴지네요 ㅋㅋ
언덕의 반대편으로 마저 걸을 길들이 보이고 앞서 걷는 순례자들이 보입니다. 햇빛을 받은 황금빛 들판은 언제봐도 영롱해 보입니다. 사진이 밝은만큼 내리쬐는 햇살에 잠시 쉬어갈 그늘도 없이 아주 고통속의 일정이었어요. 그렇게 햇살을 피하는 방법으로 고개를 푹 숙인채 터벅터벅 내딛는 발을 보며 느꼈던 것이 있어요.
- 휴식의 이유 -
내가 걷던 그 길은 행여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세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던 볼품없는 흙길이었지만 잠시 서서 뒤돌아본 내가 걸어온 그 길은 제법 아름답고 멋진 길이었다.
정말 이 메세타 구간은 끝없는 평지로 오르막 내리막 없이 지루하기 짝이없는 우리들의 일상과 같은 느낌이었고 그 일상을 좀 더 멋지게 돌아볼 방법은 휴식이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잠시 쉬어도 가면서 걷다보니 넓은 옥수수밭에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면서 큰 무지개를 만들어주는데 이런것들마저도 이뻐보이고 이 산티아고길은 저에게 일상속의 소소하것에 감사하게 만들어 주네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오늘의 목적지인 보아디야 알베르게에 도착했고 먼저 와서 휴식하던 클라우디오 아저씨도 보입니다.
오늘의 알베르게에선 음식을 해먹을 만한 주방이 다로 없어 어쩔수 없이 두끼 모두 사먹게 됐는데, 이 아저씨가 드시던 돼지목살 샌드위치가 맛있어보여 시켜먹었더니 배고팠던 탓인지 정말 꿀맛이었네요 ㅋㅋ 힘이들때 고기만한것도 없는듯 해요.
알베르게에 이런 작은 수영장도 있어 다들 나와서 물속에 몸을 담그고 풀밭에 앉아 휴식을 취합니다. 그나저나 역시 하루종일 타는듯한 햇살아래에서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은 옷을 다 벗고선 선탠하기 바쁘네요ㅋㅋ
알베르게에 입실해서 점심을 먹고나면 저녁때까지 몇시간정도 시간이 있는데, 이때 주로 뭘 하느냐 하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멍 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휴식하기가 일쑤였어요. 왜 영양가 없이 멍때리고만 있냐 하실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멍때리기를 좋아해요. 우리들의 바쁜 일상속에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데, 뇌를 식혀줄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그게 잠이 아닌 아무 생각하지않고 멍 하게 뇌를 휴식시켜주는것은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라 생각해요.
그렇게 멍때리며 휴식하다보니 벌써 저녁시간이 와버렸고 오늘의 메뉴로 다같이 식사를 하게 됐어요.
첫번째 에피타이저로는 렌틸콩 스프가 나왔네요. 한국에서 최근 저 렌틸콩이 건강에 좋다고 유명세를 탔다지요. 고소하고 간이 살짝 짭짤한것이 맛있었어요.
본식으로는 샐러드와 함께 잘 양념된 갈비가 나왓어요. 이전의 엘꼬로 알베르게에서도 이런 음식을 먹었었는데, 이지방의 음식인것 같아요. 먹다보니 역시 흰 쌀밥이 생각나지않을수 없는 그런 익숙하고도 맛있는 맛이었어요. 후식으로 요거트까지 먹은 후 밖에서 마저 일몰과 함께 짹짹거리는 새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데, 이순간 또 멋진 풍경을 보게 됐어요.
일몰의 시간이다보니 건물과 조형물에 해가 가리고 붉은 햇빛줄기들이 그대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게 멋지지 않나요?? 오늘의 일정 저녁 끝까지 이런 멋진 풍경을 선사해주는 산티아고길에 감사하며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를 짓습니다.
‘ Buen Camino!’
- 오늘의 가계부
아침 - 3.8유로
맥주 - 2유로
알베르게 - 8유로
점심 - 9유로
저녁 - 10유로
총합 - 32.8유로
흰머리를 언제나 질끈 메고 다니시던 분의 이름이 '클라우디오'시군요.
그날의 목적인 마을에서 쉴 때는 여러 번 봤지만, 길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분이라 기억이 나네요.
아마도 언제나 일찍 길을 나서시고, 잘 걸으시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맞네요.
우리보다 항상 빠른 석찬씨네 보다도 먼저 도착하셨다니...ㅋ
Downvoting a post can decrease pending rewards and make it less visible. Common reasons: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