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업으로서의 소설가)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의 용기

in sideline •  7 years ago  (edited)

“용기가 고통을 덜어주진 않는다.”

영화 <토르 : 다크월드>에서 말레키스가 토르에게 전한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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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렇게 생긴 악당이죠. 강력한 힘을 가지고도 존재감은 0에 가까운 빌런이랄까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저 대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더군요.
엉뚱한 얘기지만,
이 글을 쓰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문구 역시 저 대사였습니다.

이 글은 저 영화와 하등의 관계가 없지만,
저 대사만큼은 제 글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겁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작가를 꿈꿉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분명 블로그에 올린 글 중 근사한 문장을 몇 번이나 되뇌며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러다 며칠, 혹은 몇 년이 지나 그 글을 다시 읽곤
민망함에 살포시 삭제버튼을 누른 경험도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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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슨 정녕 이불킥각

하지만 글로, 자신의 문장으로 밥벌이를 하겠다는 결심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웹 소설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지만,
작가를 업(業)으로 삼겠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선택이죠.

인생의 선택지는 좁고, 밥벌이의 압박감은 무거운 법이니까요.

여기까지 읽으면,
‘이놈은 글쓰기를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건가?’로
오해하실 수도 있겠네요.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밥벌이 타령이나 하는 태도가
거북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왜 부업인가?’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왜 전업은 힘든가?’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작가라면 세속적인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 말이 다소 위선적으로 들립니다.

저건 뭐랄까, 작가라는 존재를
지나치게 신성화하려는 시도 같달 까요.

밥벌이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작가라면 오히려
밥벌이의 무게감을 온전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김훈의 말대로
‘돈과 밥의 지엄함을 모르는 자는
영원한 미성년자’일지도 모릅니다.

작가 역시 돈의 소중함을 알고,
밥벌이를 위한 비루함을 겪어봐야
보다 깊이 있는 글이 나온다고 (감히) 확신합니다.

유명작가 중에도 직업과 창작 활동을 병행한 이들이 있습니다.
개중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처럼
평생 작가로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샐러리맨도 있고,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처럼
<반지의 제왕> 작가보다 영문학자로 알려지길 원했던
성공한 직장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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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하다 남는 시간에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고 있소만. 허허." - 英 옥스포드대 언어학 교수의 위엄

여기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 전까지
–그러니까 전업을 위한 최소한의 물적 토대를 갖추기 전까지–
다른 일을 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범위는 더 넓어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재즈카페를 운영하면서 글을 썼고,

기욤 뮈소(Guillaume Musso)는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틈틈이 소설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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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운영하던 Peter Cat. 점심엔 카페, 저녁엔 재즈바였다고.

안과 의사였던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은
손님이 워낙 없어(…) 남는 시간에 소설을 쓰며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라는
불세출의 캐릭터를 창조해냈으며,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전형을 제시한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는
캘리포니아 석유회사에서 부사장까지 오른 후
40대가 되고 나서야 <필립 말로(Philip Marlowe)>라는,
셜록 홈즈에 버금가는 탐정 캐릭터를 만들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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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나 형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전형을 제시한 캐릭터들. 사냥모자/ 망토 코트/ 파이프 담배/ 돋보기하면 떠오르는 셜록 홈즈, 중절모/ 트렌치 코트/ 궐련 담배/ 술하면 떠오르는 필립 말로.

전업 작가로서의 배고픔
–물론 모든 분들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만– 을
감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당장의 공복감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가라면 전업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습니다.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식상한 표현입니다만,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랄까요.

용기가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면,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만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요?

그 정도의 용기만으로도 소설가에 도전할 자격은 충분합니다.
그게 소설가를 부업으로 꿈꾸는 이들의 특권이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유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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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에도 도전해봤지만... 폭망했죠. ^^
일단 여기서 열심히 해보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