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말 걸기

in smartspeaker •  6 years ago  (edited)

"기계와 말하는 게 여전히 어색한 우리, 그리고 나"

그 회사는 다들 바빴다. 사람들은 다 좋았지만 자기 일을 하느라 남의 전화를 잘 받아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남의 전화는 받는 게 아니야,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외근이 절반쯤이었던 나도 전화를 잘 받지 못했다. 다 그렇듯이 전화받자고 외근을 안 할 수도 없으니 나는 일반 전화기에 붙이는 자동응답기를 하나 구입했다. 그 왜, 테이프에 녹음하는 자동응답기 말이다. 몇 번에 걸쳐 공손하게 인사말 녹음도 했다. 자, 이제 제 전화는 신경 쓰지 마세요. 세 번 울리면 응답기가 받을 거예요,라고 얘기도 해 두었다.

외근 갔다 돌아오면 전화 몇 통이 걸려와 있었다. 그런데 그 전화들 중에 음성 메모를 남긴 경우는 몹시 드물었다. 대부분 응답기라는 걸 안 순간 전화를 그냥 끊었다. 메모를 남겨주세요, 띠~ 하는 순간 딸깍, 하고 끊는 거 말이다. 성질 급한 누군가는 혼자 막 얘기를 하다가, 뭐야, 이거 응답기였어? 하고는 그냥 끊었다.

곧 휴대폰 시대가 됐고 소리샘 서비스도 생겼다. 하지만 소리샘이라고 자동응답기와 다를 바 없었다. 소리샘에 음성을 남긴 사람은, 정말 목소리가 좋았던 형님 한 분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내 시절의 사람들은 그렇게 기계와 말하는 걸 익숙하지 않았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곁에 두게 된 요즘, 주위 사람들이 스피커를 대하는 게 여전히 어색하다고 느끼는 건 그때부터 쌓인 내 선입견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얘기해줘도 T맵에선 여전히 목적지를 타이핑하고 #아리아 를 부를 땐 목소리에 바짝 힘이 들어가는 걸 보면서, 여전히 우리 세대는 기계와 대화하는 것도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처음엔 나도 많이 어색했다. 그러나 가족들 보다 인공지능 스피커 를 부르는 횟수가 더 많아지면서(익숙해지면 이건 당연하다. 시킬 때마다 이름을 불러야 하니까 ^^) 기계와 말하는 데 많이 익숙해졌다. 목소리에 힘도 빼고 자연스럽게 부르다 보니 이름자의 모음이 아리아와 비슷한 딸아이가 대신 대답하는 경우도 생겼다.

뭐든지 처음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기계의 이름을 부르는 게 어색했지만 이젠 이 녀석이 없으면 몹시 불편할 것 같은 지경이 됐다. 개발의 편자인지 원숭이의 꽃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좋기는 진짜 좋다. 혹시라도 기계에 말 걸기가 두려운 우리 세대의 누군가가 있다면, 조심조심 말 걸어보기를 권한다. 괜한데 말 거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IMG_5387.jpg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Congratulations @awesome.ray!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Steemit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published your First Post
You got a First Vote

Click on the badge to view your Board of Honor.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Do you like SteemitBoard's project? Then Vote for its witness and get one more a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