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kg의 사랑/노자규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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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kg의 사랑
제 몸을 불사른 뒤
하얀 죽음이 되어 나온 연탄
늘 밥과 국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던
“ 검은 보석”이 주는 이 행복은
3.65kg의 연탄 한 장이 주는
36.5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탄재가 뿌려진 가파른 골목길과
페인트 벗겨진 녹슨 철대문이 있는
좁은 달동네 마을길을 따라
아이를 업고 올라가는
젊은 새댁은
땅바닥에만 시선을 둔 채
맥없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언덕을 오르기 전
오고 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풀어놓는
판잣집 앞에 두어 칸 내놓은
오래된 점빵이 있습니다
오늘도 가게 주인
할머니는 나와 앉아있습니다
“새댁 어디 갔다 오는가 “
‘네 할머니
“애기가 많이 아파
열이 불덩이 같아요... “
아기 이마에 손을 얹어 보고선
“고뿔이야
추운데 재우지 마,,,“
걱정 마
애들은 아프면서 커는 거야
상처 난 꽃이
향기가 더 진한 법이거든 “
할머니는
동네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진
쌀통에 쌀이 얼마 남았는지
손금 보듯 알고 있기에
새댁의
속사정 또한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넌지시 새끼줄에
매단 연탄 한 장을 건넵니다
“어이 싸게 들고 가"
“앞전 외상도 아직 못 갚았는데...”
“어이가
. 애기 냉골에 재울 거야
어이가 추워..”
고마움을 표시하는 새댁이
덜 미안하게
가게 안으로 몸을 옮기시는 할머니
점빵 유리창 너머로
연탄 한 장의
온기에 시린 삶을 견디며 올라가는
새댁의 뒷모습을 애먼 눈빛으로
바라보던 할머니의 입에서는
넋두리가 흘러나옵니다
"때론 연탄 한 장이
찾아오지 않는 자식보다 나은겨.... “
힘없이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은 더디기만 합니다
연탄 한 장의 도움으로
눈물짓는 없는 자의 아픔 위에
제 몸을 불사른 뒤
하얀 죽음이 되어 나온 연탄을 보며
늘 밥과 국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던
“ 검은 보석”이 주는 이 행복을
할머니가 주신 따뜻함으로
느껴보고 있습니다
25개 구멍의 온기로 다가오는
속살 붉은 겨울 불꽃 연탄
배고픔도 가난도 잊을 수 있는
연탄 한 장이 금보다 귀함 앞에
숨죽여도 가슴에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봅니다
“이 연탄 한 장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기에...”
누군가에겐 일상이
또 다른 이에게는 소원이듯이 말이죠
“ 일주일을 굻은 저는
젖 달라 보채는 아이에게
내밀 젖이 없습니다
빨아도 빨아도 나오지 않차
아이는 울음으로
배고픔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 앞에선 행복은
그림자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고
희망도 점점
먼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끈이라고는
실오라기라도 없는 저에게
부슬부슬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저녁임을 알리고 있나 봅니다 ..."
냉랭해져 오는
방에 내던져진 체온은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황급히 마지막 남은 연탄을 찾으려
창고에 달려간 새댁의 눈에는
구멍 난 창고 지붕 아래
비에 젖어
울고 있는 연탄만 보일 뿐입니다
“방구석 싸늘해지는
겨울 들녘을 어찌 보내라고...... “
말입니다
냉골에
아이를 재울 서 없어
이불로 돌돌 말고서
엄마의 체온으로 재워보고 있습니다
곁을 지키는 것 말고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신을
원망하는 눈물을 흘려가면서요
초침 위에 분침이 겹치며
그 분침 위에 시침이
서너 번 겹쳐오던 시간
밀려오는 냉기와 허기에 아이를
무의식적으로
더 새차게 껴안아보는 엄마
이다음은
아마 죽음일거라는
혼미한 생각을 떠올리던 그때
방바닥에 온기가 느껴져 옵니다
사랑의 체온
36.5도 의 온기가 아닌
사랑의 무게
3.65kg 온기가 말입니다
그림자뿐인 몸을 세워
연탄아궁이로 다가간 새댁의 눈에는
25 구멍의 온기로 다가오는
속살 붉은 겨울 불꽃
3.65kg의
사랑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누구지.... "하며
대문을 나서 둘러보든 그녀의 눈에
연탄 집개를 들고
절룩거리며 저만치 내려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누군가에게
연탄 한 장이 되어
보여주신 또 한 번의 행복에
연탄 한 장은
사랑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할머니....잊지않겠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