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방향 - 영화《 쓰리빌보드》 후기

in threebillboards •  6 years ago 

고등학교 때 잠깐 배웠던 심리학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다룬 적이 있다. 개중에 분노를 조절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분류가 인상적이었는데, 남에게 투사하거나, 상황을 탓하거나, 자신을 질책하거나, 문제를 외면하는 등 무려 십 여개의 항목이 있었다. 그러나 한 두가지를 제외하면 본질은 같았다. 우리는 분노를 주체하기 위해 귀책사유를 찾는다.
주인공 밀드레드 역시 이처럼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억울하게 피살당한 딸을 위해 범인을 찾는데 인생을 바치다시피 하는 그녀가 광고회사를 찾아간 처음 장면부터 우리는 그녀가 분노로 가득 차있음을 알 수 있다. 약 30여년 간 사용되지 않을만큼 유동인구가 적은 대형 광고판 3개를 1년씩이나, 그것도 그녀의 형편에 비하면 거금을 주고 단 번에 계약하는 모습은 이미 분노가 이성을 지배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노를 쏟을 그 귀책사유는, 다시 말해 인과관계와 그 원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명징하지 않다. 칸트는 인과율이 시공간만큼이나 선험적 인식의 범주라고 하였는데 그 말을 거꾸로 읽으면 인과율은 결국 완전한 논리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학에서 전제하는 인과율도 결국 작용변수를 최대한 통제한 뒤 통계적으로 유의한 동시사건을 추린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사람 사이의 일은 오죽할까. 가령 오늘 회사에 지각했다고 하자. 그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제 회식을 하자고 한 부장? 하필이면 고장난 지하철 스크린도어? 오늘따라 고장인 엘리베이터? 그도 아니면 애초에 회사에 입사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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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택한 방식이 광고라는 점은 이러한 혼란을 잘 드러낸다. 비록 월러비 서장을 겨냥하고는 있지만 광고라는 매체의 특성은 그녀의 외침이 특정인보다는 다수의 무관심을 향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그녀는 신부, 치과의사, 전 남편, 심지어는 아들에게까지 줄곧 격정을 낸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녀의 인터뷰나 갱단규제에 관해 신부에게 역설하는 대목은 윌러비서장이 엄밀한 인과적 추론에 의하기보단 적절한 선에서 지목하기 쉬운 대표자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마구잡이로 발산하는 분노는 주변인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화살을 모두들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화살이 잘못된 사람에게 쏠리는 순간 그 격리는 멸시로 바뀐다. 지역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직업 소명에 충실하며, 겉으로는 까칠할 지언정 정의감을 잃지 않는, 게다가 췌장암을 앓고 있는 윌러비를 지목한 결과 모두가 그녀에게 등을 돌리듯 말이다. 게다가 밀드레드가 치과의사의 손가락에 구멍을 뚫어도 그녀를 놓아주고 심지어는 자살 직전 광고비까지 대납해준 대인배 윌러비의 모습은 밀드레드를 더욱 소인배처럼 보이게 한다.
물론 분노가 반드시 부작용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산불에 맞불을 놓듯, 방황하는 밀드레드의 분노는 또다른 방황하는 분노인 딕슨의 화를 막아선다.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광고회사 직원을 폭행하며, 빌보드를 불태우는 등 헤매이는 딕슨의 분노는 밀드레드가 던진 화염병에 의해 멈춘다. 이 때 얼굴 절반에 화상을 입은 딕슨의 모습이 나타는데, 이는 <다크나이트>의 하비덴트를 연상케 한다. 다만 선한 하비덴트가 얼굴의 절반을 잃고 악의 화신이 되었다면, 딕슨은 그 반대로 선한 자아를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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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요행에 기대어 방황하는 분노를 정당화할 순 없다. 밀드레드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강인해 보이는 그녀도 윌러비가 죽은 뒤 딸과의 마지막 언쟁을 떠올리거나 딸에 관한 전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너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윌러비가 딕슨에게 해준 조언처럼, 또는 전남편의 어린 애인이 한 말처럼 이러한 분노의 본질은 꿰뚫고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부터 다시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의 말을 믿지 않듯 그러한 자기반성의 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윌러비에 머물던 분노는 딕슨이 지목한 그럴듯한 용의자에게 넘어간다. 그에게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밀드레드와 딕슨 모두 그를 죽이는데 확신이 있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리기 힘들어하지만 '가는 길에 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편의적 답변은 계속된 방황을 보여줄 뿐이다.
투어에서 만났던 미국인이 최근 이 영화가 Black Lives Matter운동과 맞물리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은 그와 다르다. 겉으로는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적 모습을 꼬집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영화는 무릇 분노란 이성을 짓누른 채 방황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현대 사회는 누구에게 분노해야할지 알기 어려움을 그 특징으로 한다. 더군다나 인과율 자체가 그럴듯한 환상에 불과하다면, 과연 우리의 분노는 올바른 곳을 향할 수 있긴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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