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몽골
아침에 1차 신호가 왔다. 여기서만큼은 큰 일을 보기 싫어서 식사도 조금 했는데. 비록 전날 삼겹살과 라면을 먹었지만. 술도 좀 마셨고. 많이 먹었네. 준비물 중에서 우산은 비 오는 걸 막기 위한 용도가 아니다. 울란바토르 시내 외 사막 등 게르 주변이 모두 화장실이다. 문이 없는 화장실을 대신해 우산으로 가리기 위함이었다. 물티슈와 우산을 챙기고 먼 풀 뒤에서 일을 봤다. 1차 위기는 넘겼다. 조식으로 빵과 쨈, 커피 등이 있었다. 블루베리 잼을 빵과 함께 먹는 순간 배에서 한 번 더 신호가 왔다. 이건 조금만 늦으면 큰 일 날 것 같다. 물티슈를 챙겨서 아까와 다른 자리의 풀로 갔는데 이미 누가 왔다간 흔적이 있었다. 뒤에 있는 풀에서 해결했고, 살 것 같은 표정 지으며 차로 돌아왔다. 풀에서만큼은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쨌든 살았으니 다행이다. 막상 닥치면 누구든지 나와 같이 행동할 것이다. 지은이는 풀 밭을 찾다가 화장실로 갔다. 변기가 너무 높아 엉덩이를 살포시 올려놓고 일을 봤다는데. 그 말이 너무 생생해 순간 상상할 뻔했다. 차로 타서 시내로 가려는데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저 당당함 뭐야.
8월은 낮엔 해가 뜨거워서 덥고 저녁은 춥다. 사람들 후기를 보니 긴팔에 바람막이, 후리스, 침낭을 덮어도 춥다고 했다. 우린 핫팩으로 그 추위를 견딜 수 있었지. 우리가 있었던 날들은 계속 비가 와서 낮에도 추웠지만. 다행히 어제 게르보다 덜 추웠다. 아침에 문을 여니 춥지 않은 바람이 들어왔다. 그 바람을 1초 느끼고 바로 풀밭으로 달려갔지만. 누가 볼까 조마조마하며. 온통 초록색인 밭에서 살색 엉덩이가 보이지 않길. 미어캣처럼 주변을 봤다.
시내로 가는 내내 잤다. 차에서 잘 못 잔다는 나와 주영이가 푹 잘 정도. 어디서나 잘 자는 지은이. "지은아" 하고 말을 걸려고 하면 목은 이미 90도로 껵여있다. 잠들었다. 차 탄지 몇 분 안 지난 거 같은데. 목 안 아프냐?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전망대에 갔다. 자다 일어나서 그런가 추웠다. 많은 계단 끝에 전망대에 올라섰다. 그냥 높은 건물이 보이네. 뭐지, 이 정도의 감흥은. 높은 초원과 여러 게르 등 자연과 함께 있는 모습을 생각했지만 우리 집 근처 산에서 본 도시와 별다를 게 없다. 전망대에 몽골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가이드 언니의 발음은 알아듣기 어려웠고 이미 이곳을 많이 왔다 가서 그런지 설명도 안 해줬다. 아쉽.
기대한 캐시미어 쇼핑. 캐시미어 공장에서 내 니트와 엄마 아빠 목도리를 구매했다. 국영백화점에서 낙타 인형을 사려했는데 생각보다 예쁘지 않아서 똘똘이 선물 낙타 인형과 여권케이스, 친구들 초콜릿을 샀다. 너무 빨리 쇼핑을 끝냈다. 천천히 봐도 되는데. 예약한 시간보다 일찍 식당에 갔고 밥을 먹었다. 샤브샤브. 유명한 만큼이나 사람도 많았다. 버섯 국물에 먹었는데 그냥 무맛. 시원한 물을 잘 먹지 않는 몽골사람들. 너무 목말랐는데 뜨거운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 언니는 우리가 불쌍했는지 시원한 물 2병을 사다 주셨다. 그 물의 달콤함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일정 왜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지? 저녁 11시 15분 비행기인데 밥을 6시쯤에 다 먹은 것 같다. 공항에 7시 전에 도착했고 우린 탐앤탐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난 여행할 때마다 카페에 꼭 간다. 떠나기 전, 이곳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시내에서 땅을 밝을 기회가 많지 않아 결국 공항 카페를 이용했다. 사진은 찍고 싶지만 차 안에서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흔들렸고 필름을 3 롤 챙겼지만 1 롤만 썼다. 마지막까지 여행하는 느낌이 없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우린 계속 한국말을 들었고, 자는 시간이 많았다. 잠시 한국 어딘가의 시골에 다녀온 기분이랄까. 그래서 계속 아쉬움이 남나 보다. 비싼 비행기표와 시간을 들였으니 뽕을 뽑아야 될 것만 같은데 그러지 못한 것도 같고. 뷔페에서 한 접시만 이용한 기분이랄까.
9월 2일 새벽 인천 도착
비행기를 타니 비가 쏟아졌다. 역시 우린 날씨 운이 있어. 비가 와서 그런지 비행기가 너무 흔들렸다. 멀미 날 정도로. 결국 기내식도 못 먹고 와인도 못 마셨다. 이럴 수가. 와인 기대했는데. 속이 울렁거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시고를 반복하다 테이블에 엎드려 잤다. 곧 도착할 거란 안내방송과 함께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서 다행이긴 한데, 후다닥 끝나버린 듯한 기분이랄까. 도착하고 주영이는 택시 타고 집으로 갔고 지은이랑 나는 짐 정리를 좀 하다가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을 봤다. 도경석. 경석이는 너무 잘생겼다. 진짜 만화 주인공처럼 생겼어. 서로 심쿵 하는 얼굴을 보며 놀렸다. 첫 차 타고 집으로 갔다.
우린 몽골에서 먹은 음식을 며칠 째 폭풍처럼 내뱉고 있다. 물이 맞지 않았는지, 그동안 먹은 걸 똥으로 보내고 있다. 회사에서 회의 중 2번이나 화장실 직행,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직행, 잠에서 깨자마자 직행.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배 아픈 기분은 싫다. 그래도 우린 짧지만 달콤한 꿈을 꿨다. 별 아래서 수다 떨며 웃었고 그냥 멍하게 별을 보기도 했다. 그곳에서 먹은 라면은 꿀맛이었지.
우리 아기한테 낙타 인형을 선물해줬는데 낙타를 뜯어 눈을 뽑고 그 안에 있는 솜을 다 꺼냈다. 인형을 사주면 하루도 못 간다. 그래도 하루 동안 계속 가지고 놀았으니 괜찮아. 아빠는 목도리를 마음에 들어했고 엄마는 2개나 있는데 왜 사 왔냐며 비싸다고 뭐라 하셨다. 그래도 하고 다닐 거면서.
우린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해외여행 처음인 지은이가 "이번 몽골 여행 괜히 갔어"라고 했다. 순간 이번 여행이 별로였던 건 아닌지 했지만, 다른 곳도 여행하고 싶다며 큰일이라 했다. 역시 여행은 멈출 수 없어. 주영이는 "같이 갔던 여행에 대한 너의 생각을 보는 거라 더 재밌는 것 같아"라며 우리 여행을 생각하는 듯싶다. 앞으로도 이렇게 여행할 것 같다. 주영이는 우리에게 든든함을 주고, 지은이는 유머를 주고, 난 우리의 여행을 기록하고. 싸울 일없이 좋은 꿈을 꾸고 왔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야지. 이력서나 써야겠다. 안녕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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