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주변 카페가 망하는걸 수도없이 보면서
'카페 차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쉽게 할까?
우리는 왜 해마다 50% 육박하는 이혼율을 보면서도 결혼을 하고 싶어 할까?
(월간 9,038건 / 연간 10만6,500건 _ 네이버 통계 21년 7월 기준)
바로 '나는 아닐꺼야' 라는 마법의 문장 때문이다.
'나는 아닐꺼야'
'나는 수많은 이혼커플 중 하나가 되지 않을꺼야'
'나는 카페사업에 실패하지 않을거야'
'여태 잘해왔어'
'내 인생 잘풀릴 때가 됐어, 큰 사고 없을거야'
'망하기야 하겠어'
이런 생각들 말이다.
Why?
■ 비현실적 낙관주의
행동경제학 대표서적 [넛지]에 의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하는 사업, 결혼생활은 평균이상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실제로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본결과, 약94%가 자신이 평균적인 교수들보다 낫다
고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원적 무지 (pluralistic ignorance)
나는 그렇게 믿지 않지만, 모두 다 그렇게 믿을 것이라 믿는 현상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동화를 보면 이 개념이 나온다. '착한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이 있다. 나는 그 옷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다른 군중들은 볼 수 있을거란 믿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기에 왕에게 차마 '옷이 없다'고 용기내어 말하지 못한다.
카페사업의 약점과 결혼의 부정적인 점을 분명 인지하고 있지만, 두터운 벽의 사회적 관행들로 명맥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게 된다.
우린 기억해야 한다.
그 어느 누구도 폐업을 목표로 카페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 어느 누구도 이혼을 최종 종착지로 정해놓고, 결혼을 하진 않았다.
'나는 아니겠지'
'나는 아니겠지'
아마 그 생각이 아닐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