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며

in writing •  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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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저서 <불과 글>을 요약하는 문장이다. 내가 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내면은 뜨거운 불로 가득차 있지만, 외부는 차가운 물과 같은 성향 때문이다. 서로 섞이지 못하는 곳에 경계가 있고 그 경계의 불은 꺼져있는 신비로운 장소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서사를 이야기와 글로 쓸 때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불은 신비이고 글은 서사이다.

아감벤에 의하면 신비의 구원은 문학이다. 불과 장소와 주문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은 이야기 서사로 태초의 신비가 사라지고 남은 것이 바로 문학이다. 모든 글, 모든 문학은 불의 상실에 대한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불의 상실은 불의 신비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나의 글쓰기와 같을 것이다. 다시 풀이하자면 나는 불이다. 내면의 뜨거운 불이 신비의 영감에 의해 상상을 만들어내는 몽상가이다.

이야기(Story)는 신비로운 요소가 소진되면서 자취를 감추는 공간이다. 역사가의 이야기는 히스토리(history)라 표현하며, 소설가의 이야기는 스토리(Story)이다. 불의 신비가 경계로 넘어가며 상실 될 때 현실세계에 이야기로 표현된다. 이야기는 말하기이자 글쓰기이다. 역사가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동시대의 잊혀진 신비의 공간을 객관적 서사로 만드는 존재이다. 역사가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서사로 만든다. 신비는 역사가의 손에 의해 글이 된다. 소설가는 신비로운 장소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만드어 글쓰기, 문학으로 서사를 만드는 자이다.

"이야기의 신비가 스스로 불을 끄고 감춰놓은 공간과 일치한다."

다시 아감벤에 의하면 언젠가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도 불의 기억과 함께 사라진다고 한다. 신비로움의 상실인 동시에 기념, 불의 공식과 공간의 소실이자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소설과 글의 본질이다. 신비주의적 구원의 열악함과 불안함의 모든 흔적을 지우거나, 사적인 사건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그속에 신비로움을 묻어버린다. 여기서 독자는 소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잔인하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펼쳐보이는 상황과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어떤식으로든 주인공의 운명에 참여하고 자신의 존재를 신비주의적 차원으로 끌여들인다. 소설처럼 문학장르는 신비의 망각의 언어를 할퀴며 만들어내는 상처로 비극, 애가, 송가, 희극 등은 언어가 '불'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는 방식이다. 슬픔은 언어로 불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통할 수 없음에서 오는 경계의 표현일 수 있다. 불의 신비가 꿈틀대며 차오르지만 이야기를 글로 표현할 수 없음의 슬픔일 것이다.

아감벤은 문헌학이라는 과제의 현실 속에서(직업적인 한계) 길을 잃을 위험과 발견하려는 신비주의적 요소를 시야에서 잃어버릴 위험을 찾는다. 그렇게 학자의 방법론이란 신비주의적 경험으로 길을 잃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를 응시하는 것이다. 언어는 글과 불을 분리하는 틈새와 단절이 위로 받을 수 없는 상처로 드러나는 것이 언어를 통해서 나타난다.

개인적인 글쓰기 외에 탐구의 글쓰기에 있어 언어를 응시함으로 불과 글을 분리하는 틈새를 통해 방법론을 찾는 빈틈에서 신비가 드러날 수 있다. 이러한 필력을 아감벤은 더듬거리는 말과 함께 분위기가 퇴색하고 엉키면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이 전율이 필력이다. 신비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분해하고 느슨하게 만드는 반면, 불은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일그러뜨리고 소모한다.

최초의 이미지는 신비로움을 잃고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그것은 이제 사라질 수 있을 뿐이다. 인생 역시 처음에는 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퇴보를 멈출 수 없는 존재의 한계속에서 천천히 삶의 신비로움을 잃고 불꽃을 하나 하나씩 꺼뜨린다. 아감벤은 인간의 삶 역시 결국에 하나의 이야기로만, 다른 모든 종류의 이야기들처럼 아무런 비밀도 없고 무의미한 이야기로 남는다는 자신의 이론인 무의를 끌어낸다. 글을 통해서만 전해 질 수 있는 불, 하나의 이야기 속에 완전히 녹아든 신비는 이제 우리의 말을 빼앗고 스스로를 가두면서 한점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나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남기는 것이 내가 글을 쓰는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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