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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딱히 놀 거리와 읽을 것이 많지 않아서 어릴 때부터 신문 읽기가 취미일 정도였다. 어용언론으로 지탔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 신문 덕택에 그 때의 시대적 요구와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모대에는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다. 가장 친한 친구는 꽤 높은 학생 지도부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애에게 오히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니? 차라리 40대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맞다”고 까지 주장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운동을 했다가 계속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소수였고, 그 중에서 TV에도 나오거나 국회의원이 되신 분들은 극소수이다.
그때 학생 운동을 했던 많은 선배와 동기들은 사회에 나와서 직업으로 학원이나 술집 등을 하였고, 많은 이들이 내 친구도 함께 학생운동하다 만난 선배와 결혼을 했다. 선배는 대학 중퇴의 학력이라 사무직이 아닌 기술직업을 가졌고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다 소설처럼 40대에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친구는 학생들 공부를 봐주거나 요가도 가르치며 열심히 아이들을 키웠고 이제 우리는 어느새 노년으로 가는 중년이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나는 정말 기대했었다. 그렇게 간절히 꿈꾸며 소리 외쳐 운동하시던 분들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우리나라가 유토피아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별 변화가 없었고 누가 하던 똑같은 것이 정치인가보다 생각하게 되었고 정치인들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노무현대통령 때는 샌디에고에 살았는 데 대통령의 아들이 남편과 같은 사무실이였고 우리 집에 오기도 했었다. 서민적인 분이라 생각했고 '자살'은 충격적이였고 화가났다. 내가 투표를 했던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비록 독재로 비명에 가신 대통령이었지만 그 분의 딸이니 아버지가 해낸 업적만큼은 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자기 앞가림도 스스로 변변히 못하고, 최순실에게 의존하는 꼭두각시였다니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나 없는지 자괴감을 느꼈었다.
‘1987’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안 보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그 시절 나는 모른 척 했고, 기득권이 되었고, 내 또래 죽고 다치고 가난하게 세월을 보낸 그들의 이야기를 마주 할 용기가 없다. '미.안.하.다...' 하지만 다시 산다고 하여도 데모는 하지 않을 것같다. 누가 선택한 인생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내 마음 속에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들이 흘린 눈물과 땀과 피 위에 이 대한민국이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