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13:00 제8사단을 전투지경선을 포함하여 제1군단 지휘 하로부터 제2군단장 지휘하에 들게 하고 따라서 제1 및 제2군단 내의 전투지경선은 자연적으로 제8사단 및 수도사단 간의 지경선으로 변경되었다.
군은 전선의 긴박성과 적의 최후 발악적인 강압에 대비하고 차기 작전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9월 6일 육군본부를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9월 10일 16:00 적 2개 사단은 포항~안강 선을 점령하고 계속 남침할 것을 시사하였다. 아 제3군단은 이 적에 대하여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섬멸전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육군본부 직할 제1유격대대는 9월 13일부터 동대산(1225~1493)을 거점으로 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제1군단의 작전을 유리하게 하였다.
9월 12일 영천을 일시 점령하고 대구 방면의 아군을 견제하여 경주 방면으로 일거 돌파를 기도하던 적은 아군 제8사단 및 제6사단의 일부 및 제7사단의 일부와 수도사단의 일부 병력의 반격에 의하여 북방 및 일부는 안강 방면으로 패주하였으며 아군은 대패한 적 제15사단을 영천 동북방 지구에서 추격 소탕 중에 있었다.
9월 18일 적 제1군단 일부 병력도 가산(1156~1459) 방면으로 퇴각하고 그 주력은 531고지(1167~1460), 570.9고지(1155~1456)를 연하는 선 일대에 집결하였다. 아군 제1군단은 9월 13일 12:00부로 아 제8군사령부의 무전 통보에 의하여 제2군단장 지휘하로부터 연합군 제1군단장 지휘하로 들어갔다.
적은 9월 14일 우익 전선의 패세를 만회하기 위한 반격의 지원점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5사단, 제12사단 주력으로서 포항~안강 정면에서 견고한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군은 9월 21일 경에 실시될 연합군의 서해안으로부터의 수륙양면작전에 따라 현 위치를 9월 21일까지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적 주력과 적극적이며 강력한 접촉을 계속하고 좌익선 연합군 제1군단과 끊임없는 연락을 확보 유지하면서 최후적 발악으로 국부적인 반격을 실시하여 침투를 기도하는 적을 배제 현 진지를 방어하였다.
그리하여 아군 전 부대는 확고한 전술상의 지위를 확보하여 9월 22일 실시될 일제 공세 이전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착착 갖추고 있었다.
육군본부는 제1차 진출 예정 선으로서 점령 목표를 제1 청하(1230.4~1480.2), 제2 사정리(1229.0~1479.2), 제3 상옥리(1218.0~1406.2), 제4 대전동(1202.8~1497.2), 제5 인지동(1195.5~1493.7), 제6 구산동(1186.5~1489.0), 제7 의성(1166.7~1497.2), 제8 도원동(1155.0~1490.5)으로 정하고 제2차 진출 예정 선으로서 그 목표를 영덕(1232.3~1506.5)과 (1214~1415) 지점의 도로 교차점 덕천동(1201.5~1508.3), 천지동(1186.2~1510.8), 안동(1169.5~1523.5), 예천(1142.5~1534.2), 함창(1115.6~1523.2)으로 정하여 9월 22일 07:30을 기하여 일제 공격을 개시하고 제1차 진출선 진출 후에는 즉시 제2차 진출선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도록 명령하였다. 또한 예비사단인 제7사단은 첫째 제1군단 및 제2군단 간격으로 침투하는 적을 포착시키기 위하여 사단 및 연대 단위로 사용할 것과 둘째로 제1군단 및 제2군단 지구 내의 주요 돌파구의 효과를 확대하기 위하여 연대 혹은 사단 단위로 이동할 준비를 갖추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