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볼 것인가, 달을 주시할 것인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이다. 열풍을 넘어 광풍이다. 정부 규제 움직임에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그 바람에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이 구름에 가렸다. 블록체인.
비트코인은 극적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화폐'라는 특이성, 올해 들어서만 가치가 1000배 뛰었다는 폭발성, 관련 제도가 전무하다는 도발성, 고성능 컴퓨터로 '매우 어렵게' 채굴해 인터넷으로 '아주 쉽게' 유통한다는 스토리텔링까지. 비슷한 사례도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 몰아닥친 튤립 광풍과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빚어진 금광 러시다. 공통점은 '소수의 혜택과 다수의 피해'다.
'비트코인은 몰락할 것'이라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의 예언은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나중에 그는 그 발언에 대해 '후회한다'며 한발 물러 섰지만 비트코인에 대한 자신의 악담을 후회한다는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입밖으로 꺼낸 것을 후회한다는 것인지는 아리송하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경제학자 애덤 고든의 말마따나 역사적으로 전문가들의 예상은 절반 이상이 빗나갔다. 비트코인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어쨌든 절반이다.
블록체인은 처지가 다르다. 제도권에서 거부감이 적다. 보안성과 투명성, 안전성, 신속성 때문이다. 요약하면 각종 거래 정보를 중앙 서버에 저장하지 않고 여러 곳에 분산하는 기술이다. 거래 장부를 어느 한 사람이 독점하는게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두 복사해 소유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내용의 진위를 비교하는 식이다.
결국은 정보의 통제권이 '누구'에서 '모두'로 바뀌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연구하는 어느 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통제권을 중앙에 뒀던 초기 컴퓨터 시절을 거쳐 개인 PC가 등장하면서 통제권이 개인에게 넘어왔다가, 인터넷 시대에 구글과 페이스북 등 거대기업이 다시 통제권을 가져갔다. 이 시점에 등장한 블록체인은 통제권을 개인이 되찾는다는 의미가 있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실현하는 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블록체인을 꼽는 것은 그래서다. 권력의 탈중앙화, 정보의 분산, 시민 권력이라는 시대정신을 높이 사는 것이다. 미래학자 돈 탭스콧은 "19세기 자동차, 20세기 인터넷이 탄생했다면 21세기에는 블록체인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세계경제포럼(WEF)은 10년 내 전 세계 총생산의 10%가 블록체인에 저장될 것으로 예측했다. 말 많은 비트코인도 실은 블록체인의 피조물이다.
다시 손가락과 달이다. 광풍이나 투기는 마땅히 관리해야 한다. 새로운 규칙도 필요하다. 하지만 과도한 경계심은 금물이다. 지금은 거품으로 시야가 닫혔다. 광풍이 지나면 비로소 민낯이 드러난다. '광풍'을 '과잉'으로 규제하면 손가락도,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도 놓칠 수 있다. 그 결말은 '갈라파고스 코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