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은 처음이라

in book •  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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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클래식이 처음은 아니다. 피아노도 배워봤고 바이올린도 배워봤다.
하지만 클래식이 처음이기도 하다. 나에게 클래식은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해봤던 경험을 무기 삼아 적어도 클래식의 클 자 정도는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정도-.

​책 <클래식은 처음이라>의 저자 조현영은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과 인문학을 접목한 교양 강연자이다. 피아노 실기를 전공하였지만, 클래식 음악가들의 삶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완벽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자연히 그들의 삶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곡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고민해 봐야 하니까. (이는 실제 저자가 책을 통해 밝힌 바이기도 하다.) 덕분에, 마치 음악사를 전공했다 해도 믿을 정도의 쫀쫀한 서사 덕분에 말 그대로 한 사람의 일대기를 읽을 수 있었다.

​책 <클래식은 처음이라>에는 총 10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가부터 클래식에 관심이 없으면 자주 들어보지 못했을 음악가까지 두루 소개하고 있었다. 그중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책을 통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된 드뷔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처음 드뷔시의 음악을 들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음악 시간에 클래식 수업을 하던 중, 드뷔시의 '달빛'을 듣게 되었다. 고등학생이라면 으레(?) 음미체 시간은 멍을 때리기 마련이라, 나 또한 수업에 크게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드뷔시의 '달빛'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두 귀가 쫑긋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간 들어왔던 클래식, 내가 알고 있는 클래식의 전형을 벗어난 굉장히 세련된 음악이라는 것이 드뷔시에 대한 나의 첫 감상평이었다. 그 후로 막연히,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드뷔시라 답하곤 했었다. 들어본 음악은 단 한 곡뿐이었지만, 그만큼 나에게 인상적인 음악가였던 것이다.

​드뷔시는 파리 출신의 음악가이다. 그리고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음악에서도, 또 사랑에서도. 책에 나온 구절 중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흥미로운 우연이겠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 드뷔시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pp. 280) 내가 드뷔시에게 반한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뷔시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새로운 음계를 사용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으며 전통적인 규칙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다.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화를 이루지 않은 화음은 혁명과 같은 거야. 전에 그런 예가 없었다면 내가 새롭게 창조하겠어. (pp. 288)라고 말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음악이란 진정 표현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그것을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기록하였다.

​책을 통해 드뷔시의 대표작들 중 하나인 교향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L.86>을 들어보았다. 서정적이면서 부드러운 느낌. 몽환적이면서도 가볍게 흘러가는 음들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눈을 감고 평화로운 오후를 상상해보았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풀밭이 그려졌다.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실제 이 곡은 드뷔시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를 읽고 느낀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라고 한다. (pp. 279) 시를 읽고 떠오른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해서 그런지, 확실히 시각적으로 더 잘 연상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드뷔시를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왜 이토록 드뷔시가 좋았을까?의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드뷔시의 곡에 꽂힌 이유, 드뷔시의 곡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왠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통적인 규칙에서 벗어나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쳤던 드뷔시. 음악가이지만, 문학과 그림 등 다방면에서 영감을 받았던 유연한 그의 태도가 어쩐지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느끼는 그것이 답이라 말하는 드뷔시의 음악이 이정표가 가득한 삶보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자 하는 나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책의 프롤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클래식 또한 사람이 만들어낸 음악입니다. 작곡가들이 만들어낸 음악에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pp. 006)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처음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며 드뷔시를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먼저 살아낸 선배, 드뷔시를 만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음악을 듣고 나는 그를 느꼈던 것이다. 갑자기, '달빛'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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