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역사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유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1 : 현재가 바뀌면 역사도 바뀐다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2 : 소결론에서 끌어낸 세 가지 진리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3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하는 오디세우스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4 : 카의 블랙유머--고대사 픽션이 부러워요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유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빼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십 년도 더 된[1] 이론서이지만 여전히 읽히고 있고 앞으로도 읽힐 겁니다. 적어도 한두 세대는 더. 예, 맞습니다. 2013년에 개봉된 영화 <변호인> 덕분에 ‘다시’ 유명해졌지요.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금서였고, 실제로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옥에서 실형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2]
읽어본 분들은 대개 좀 어렵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일 겁니다. 이 책은 영국의 역사가(전문가)들을 상대로 했던 강의록이었으니까요. 한국의 일반 독자에게 더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책에 나오는 구체적인 예들이 모두 서구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상식적인 내용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앞뒤 설명 없이 마구 인용하니 쉬울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대중들에게도 전 세계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세 가지일 겁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역사이론서인데다가 감탄스러운 통찰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 통찰력이 역사학계에 혁명을 일으켰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완전히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의 역사는 이제 더이상 전문가들의 성역이 아닙니다. 한 유명한 런던 대학의 역사학 교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오늘날 역사는 지배층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연구대상으로만이 아니라 연구 참여자로 포함해야 한다.’[3] 그러면서 역사 전공자들 앞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을 던지고 강의함으로써 1960년대 이후 역사학에 혁명을 일으켰던 E. H. 카 역시 역사학 학위를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카의 역사이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학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끊임없이 진보를 강조하는 『역사란 무엇인가?』가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데 보수적인 역사학자가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흠정강좌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제프리 엘턴 경이 그 깃발을 들었는데, 그는 카의 주장은 지독하게 거만한 태도를 드러낸 엉뚱한 것이라고까지 했어요.[4]
재미있는 것은 ‘대표적인 급진적 역사가’라는 평가[5]를 받는 한국어판 번역자인 김택현 교수도 역자 후기에서 자신은 역사에 대한 생각이 카와 다르기 때문에 번역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지는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를 가로막는 불합리한 요소들이 이 사회 곳곳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면’ 여전히 카의 이 저작물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인문학을 광범위하게 공부하는 저에게 이 책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역사’라는 말 대신에 ‘기억’이나 ‘지식’으로 바꿔 읽어도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1장의 ‘역사가와 사실들’이 그랬는데요, 제 강의에서 ‘들어가는 말’을 읽은 분이라면 기시감을 느낄 정도일 겁니다.
일단 거기에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닮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액턴(Acton, Lord John Dalberg-Acton, 1834~1902)이라는 유명한 역사가인데요, 그는 ‘모든 사실을 알아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언젠가 완전한 역사ultimate history를 만들 수 있을 것’[6]이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스승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불완전한 자료들로는 글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자료들은 언제나 불완전했다’는 겁니다. 아마 그 스승의 그 제자였나 봅니다. 액턴 역시 역사책을 한 권도 써내지 못하는 ‘이상한 상태’에 이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는 너무나 깊고 넓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저작물을 남기지 못했고, 위대한 역사가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다고 합니다.[7]
‘역사는 절대로 사실이 아니라 해석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카는 액턴을 등장시킨 것이지요. 이어서 카는 마치 다음과 같은 기억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섭렵한 사람처럼 차근차근 논증해 나갑니다. 아래 글은 2015년에 쓴 저작물이고,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에 쓴 것입니다.
……기억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기억은 경험을 그저 서랍 속에 넣어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항상 새롭게 재처리하여 미래를 위해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기억이 따르는 논리는 기본적으로 앞을 내다본다. 그 논리는 우리가 이미 경험했고 오래전에 처리가 끝났다고 여기는 것들을 다룰 때에도(또한 바로 그럴 때에) 앞을 내다본다. 요컨대 우리는 기억에 대한 이해를 철저히 뒤집어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기억의 주요 과제는 계획 수립이라는 점, 따라서 계획 수립만큼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제들을 담당하는 별도의 능력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최종 목표는 어떻게 잡다한 과거 경험으로부터 추구할 만한 미래 전망이 발생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8]
인간이 가진 기억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경험적 사실에 대한 자료 저장 창고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계획 수립에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기억을 역사로 바꿔 읽어도 그리 큰 문제는 없겠죠? 그러면 카가 설명한 ‘역사란 무엇인가’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역사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볼까요?
Truly neat
Downvoting a post can decrease pending rewards and make it less visible. Common reasons:
Submit
Congratulations @mmmagazine!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Click here to view your Board of Honor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Do not miss the last post from @steemitboard:
Downvoting a post can decrease pending rewards and make it less visible. Common reasons: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