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여기까지야, 우리의 끝

in dmz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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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자를 하면 국내든 해외든 일반여행객에게 출입이 통제된 곳도 가끔 출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자라는 신분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신분도, 어떤것도 이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해주지 않는다. 사진 한 장을 찍는 것도 마음껏 찍을 수 없고, 바로 눈앞에 펼쳐진 백사장도 들어갈 수 없다. 어떠한 노력을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이별처럼 끝을 말하는 고성. 하지만 끝이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지 않는가. 새로운 고성을 만났다.

 

한 발만 더 다가가면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앳된 얼굴을 한 군인들이 막아섰다.

“여기는 오시면 안 됩니다.”

고성에서 제일 많이 듣고 본 단어. 최북단. 통행금지.
우리가 갈 수 있는 이 땅의 끝.

 

 

간절히 원하면, 통일전망대

북위 38도.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 통일전망대. 금강산과 동해의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우리나라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곳. DMZ를 방문하려면 번거로운 절차들이 기다린다. 신분증 소지 자체도 잊은 채 사는 일상이지만 이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고성 통일전망대는 승용차(또는 택시)만 입장이 가능하고 도보나 자전거 등의 기타 수단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입장권 구매 후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승용차들이 줄 지어 입장하는 모습은, 일상의 자유로움조차 잊은 우리에게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낯선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통일전망대를 향하는 길 뿐 아니라 고성 곳곳에서 도로 양 옆에 국방색으로 칠해진 콘크리트 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바로 최북단 지역으로 전쟁을 대비한 군사시설이다. 우리에겐 평화로운 일상이지만 이곳은 전쟁을 항상 준비하는 모습이라니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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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과 동해의 절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유일하게 자유로운 사진 찍기가 가능한 곳. ⓒ오승현

 

신분증과 차량 검사를 거친 후 10여 분 정도 달리다 보면 고성 통일전망대에 닿는다. 평소라면 겪지 않아도 될 번거로운 절차들을 거치고 나니 외국에 온 것만 같다. 아주 가까이 보이는 금강산 봉우리들과 짙은 푸른 빛의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찰나, 그 간의 번거로움이 쉽게 잊힌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흐린 하늘이 푸른 바다와 맞닿으니 조금은 음산한 풍경이 통일전망대와 잘 어울린다. 눈부신 햇빛이 부서지고 있었다면, 절대 갈 수 없는 그곳을 향한 애상과 대조되어 의미 없이 아름답기만 할 것 같다. 전망대에서는 아름다운 해금강과 금강산을 배경으로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는다. 각자의 사연들을 나누고 있는 방문객들은 활짝 웃고 있지만 마음이 무거워 보인다. 전망대 내부에는 북한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용품들이 있는 작은 전시관이 있다. 전망대를 둘러본 후 짧게 살펴보는 것도 좋다. 주차장 근처에 위치한 전쟁체험관은 한국전쟁의 실상을 전시해둔 곳이다. 전시관 중앙부에 전쟁 모습을 마네킹으로 꾸며놓은 체험관이 있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갑작스럽게 울리는 포탄 터지는 소리와 총성이 지나가는 모든 이를 깜짝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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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351고지 전투지원작전 기념비와 공군 전투기가 전시돼 있다.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승현

 

통일전망대에서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도 볼 수 있다. 바로 3대 종교시설이 함께 위치해 있는 것. 성모마리아 상 바로 옆에 미륵불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북쪽을 향해 손을 모으고 있는 마리아와 자비로운 표정의 미륵불이 한 눈에 보여 종교인이 아니어도 애틋한 마음이 든다. 또 전망대 입구에 위치한 최북단 개신교 교회에서는 매일 통일을 위한 예배를 드린다. 방문객들이 각자의 종교시설에서 잠시나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모두가 바라지만 쉽지 않은 일. 나도 그 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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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땅을 향해 두손을 모으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 간절한 기도의 답은 언제쯤이나. ⓒ오승현

 

검색창에 고성 여행을 검색하면 통일전망대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고성은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강산과 동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북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박물관, 항구, 사찰 등 눈으로만 담아두기 아까운 1박 2일 이상의 여행코스로 충분하다.

 

 

남한 최북단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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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가 생긴 당시의 표지판을 재현해놓은 전시물. ⓒ오승현

 

고성에 있는 내내 제일 많이 듣는 말 최북단. 그리고 최북단 박물관인 DMZ 박물관. DMZ 박물관은 통일전망대와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주는 지루함 때문일까. 통일전망대를 둘러본 후 바로 민통선 밖으로 나가는 차량이 대부분이라 박물관 내부 주차장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DMZ 박물관은 통일전망대만 보고 놓치고 가기엔 너무 아까운 볼거리가 많다. 통일과 안보를 강조한 채 부실한 시설을 가지고 있는 여타 박물관과는 달리 세련된 모습으로 알찬 전시와 체험공간을 구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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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원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렇듯 거대한 평화의 나무를 만들었다. ⓒ오승현

 

주차장과 이어진 넓은 정원에서 야생화와 생태 연못, 저류지를 둘러볼 수 있을 뿐 아니라 DMZ 철책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박물관 내부는 ‘축복받지 못한 탄생 DMZ’, ‘냉전 유산은 이어진다’, ‘그러나 DMZ는 살아있다’, ‘다시 꿈꾸는 땅 DMZ’의 총 4구역으로 짜임새 있게 전시가 구성돼있다. 게다가 정전협정서를 비롯해 미군 포로 편지, 군사 분계선을 재현한 전시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물품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지 알게 된다. 특히 30대 군인 임춘수의 편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해 동해 풍경을 바라보며 가족을 그리는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해 마음을 아프게 한다. 3층에 오르면 평화의 나무가 자라는 DMZ 공간이 나타난다. 개관 후 20만 명의 염원이 담긴 이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아픈 마음에 희망의 싹이 자란다. 푸른 나뭇잎에 소원을 적어 나무에 달아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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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철책을 그대로 재현한 곳. 철망 사이로 보이는 ‘한계’라는 단어가 도드라져 보인다. ⓒ오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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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우리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 전시관. 차근차근 살펴보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저리다. ⓒ오승현

 

 

조용한 산책길에 소원돌탑이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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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단, 금강산 자락에 위치해서인지 이곳의 시간은 더 고요하고,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오승현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됐다가 다시 차근차근 옛 모습을 되찾고 있는 건봉사.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산책길 옆에는 나란히 작은 소원 돌탑이 세워져 있다. 사찰로 들어서는 능파교 옆 기다란 나무로 연결된 식수대의 흐르는 물만 보고 있어도 시원하다. 건봉사는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자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치아사리 자체가 진신이라고 여겨져 불상을 따로 만들지 않는 사찰을 ‘적멸보궁’이라고 하는데, 건봉사가 그렇다. 옛 모습을 찾으려고 불자들의 마음을 조금씩 모아 곳곳을 보수하고 있는데, 옛 사찰터에 벚꽃나무의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최북단 금강산 건봉사는 ‘괜찮아’라는 테마로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으니 자연 속에서 불교문화를 체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관람료 무료
위치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템플스테이 문의 033-682-8103

 

 

전통, 그 불편함이 주는 매력

왕곡마을은 고려 말, 조선 초 이래 양근 함 씨와 강릉 최 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600년을 전쟁과 화마를 피해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송지호에서 왕곡마을을 바라보면 배의 형상을 띠고 있어, 배가 가라앉을 까봐 마을에 우물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풍수지리 요인 때문에 그동안 화마와 전쟁의 위험을 피해갔다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한국전쟁 때에는 포탄이 세 개나 떨어졌는데 전부 뇌관이 없어 터지지 않았고, 주민 모두가 대피할 정도의 큰 화재 때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을 윗부분에 다다라 불이 자연스레 꺼졌다고 한다.

왕곡마을에는 기와집이 20여 채, 초가집이 30여 채 있으며 현재 대부분의 가옥에서 60여 명 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 중 몇 채는 왕곡마을에 머물고 싶은 작가나 감독들에게 연세를 받고 빌려주기도 한다. 새소리, 벌레소리 가득한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내면의 진수를 한껏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을에 한발 들어서는 것도 전통의 운치를 느끼는 일이지만 하룻밤 묵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작은 백촌집’, ‘큰상 나말집’ 등의 이름을 가진 전통가옥에서 하룻밤 머무는 전통한옥숙박체험 프로그램은 도시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특히 유익하다. 자기 방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모여서 하룻밤을 보내고 가옥 외부에 위치한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 모두가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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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마을에서는 아궁이를 직접 지펴서 한과 등의 전통 음식을 만들고 그 열로 온돌도 데운다. ⓒ오승현

 

24시간 빛이 사라지지 않는 곳에 사는 도시인들에게도 칠흑 같은 어둠 속,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덮고 온돌의 포근함을 느끼는 이곳에서의 하룻밤은 치유의 시간이 된다. 가마솥에 직접 끓여 만든 한과는 왕곡마을의 명물이다. 전통의 방식으로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한과는 한 입만 베어 먹어봐도 그간 먹어왔던 공장식 한과와는 다르다. 콩, 쌀 등을 튀겨 섞어서 묻힌 한과라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남고 달지 않아 여러 개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왕곡마을에 들렀다면 반드시 한 박스 사길 권한다.

 


관람시간 9:00~18:00
전통한옥 숙박 입실 14:00~18:00 | 퇴실 12:00 이전
위치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문의 (사)왕곡마을보존회 033-631-2120

 

 

글 김유정|사진 오승현 | 취재협찬 왕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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