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의 예술혼을 간직한 곳

in gangweondo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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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속도로 신림 IC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고판화박물관이 있다. 명주사 한선학 스님이 오랫동안 수집한 고판화 4,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티베트, 몽골 등 아시아 지역 고판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에 고판화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을 세운 사람은 명주사 한선학 주지스님이다. 그는 20여 년 동안 한국, 중국, 일본, 티베트, 몽골 등 아시아 지역을 돌며 고판화 원판과 인출된 서적을 비롯해 능화판, 시전지 목판, 부적판, 원본판화 등 4,000여 점을 모았고, 이를 기반으로 2004년 명주사 내에 고판화박물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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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한 한선학 관장은 낙산사에 출가한 후 군승으로 입대한 뒤 군에서 15년 간 군 포교 활동을 했다. 그는 국방부 법당에 있던 1996년 신도들과 함께 중국을 여행했다. 중국 불교 4대 성지 중 한 곳인 구화사(九華寺)를 찾았다. 이 절은 중국의 지장보살로 추앙받는 김교각 스님이 있는 곳이다. 구화사를 가던 길에 항저우에 있는 골동품 시장을 들렀다. 그곳에서 그는 도자기로 된 부처님 한 분을 모시게 되었다.

 

 

 

아시아 고판화를 수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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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에서 만난 부처님이 계기가 되어 고미술품에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사동에 나갈 때면 난장에 펼쳐진 고미술품을 눈여겨보곤 했는데, 어느 날 중국의 지장보살 목판이 눈에 띄었다. 반가워 1만 원을 지불하고 구매했다. 중국의 절에서 인쇄해 신도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만든 목판이었다. 중국 목판화는 종류와 내용이 다양하고, 모양이나 색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때부터 인사동과 중국 등지를 돌며 중국 판화는 물론 티베트나 몽골 판화까지 수집했다.

중국 목판화에 집중하던 한선학 관장은 영남대박물관에서 개최한 전시에서 능화판을 만나게 된다. 능화판의 아름다움은 다른 목판을 압도했다.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 목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능화판은 대학뿐 아리나 개인 컬렉터들이 많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집한 능화판은 50여 점을 넘어서고 있다.

2004년부터는 일본 목판화 수집에 집중했다. 아시아 판화 수집을 하면서 일본 판화를 수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안평 미술품 가게에서 일본 채색 판화를 구입했고, 일본을 갈 때마다 잊지 않고 판화를 몇 점씩 사왔다. 일본 목판은 인터넷 판매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인터넷에서도 여러 점 구매를 했다.

한선학 관장은 가치가 있어 보이는 판화는 무조건 구매를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고판화는 보관이 쉽지 않아 쉽게 훼손되었다. 그래서 수집여행을 할 때는 시장은 물론 마을로도 돌아다녔다. 문화재급인 판화들이 엉뚱한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땔감으로 사용하려고 장작더미 속에 있는 것도 있었고, 마당에 까는 발판, 심지어 닭장이나 돼지우리, 도마로 사용되던 것도 있었다. 하마터면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있던 것들을 되살린 것이다.

 

 

오륜행실도를 찾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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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 목판

 

2006년에는 보물 중의 보물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발견했다. 1797년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가 그려 제작한 오륜행실도를 찾은 경위가 놀랍다. 그때를 회상하며 한선학 관장을 말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 사각형의 함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문화재가 사각형의 상자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쪽에 손잡이를 달았을 것으로 보이는 구멍도 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차를 끊이기 위한 화로용 목함으로 사용했던 것 같았습니다.”

판화는 그 나라의 인쇄문화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팔만대장경 등이 대표적인 목판 문화재이다. 우리 선조들은 판화를 일상생활에도 많이 활용했다. 능화판을 제작하여 책표지를 아름답게 장식하였으며, 떡살을 만들어서 떡에 장식성을 더하였고, 보판을 활용하여 이불보를 아름답게 찍는다든지, 반자지를 찍어 벽지나 장롱의 안쪽을 장식하는데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도를 목판으로 찍어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판화를 생활예술로 활용하였다.

판화는 예로부터 예술과 지식을 대량 복제해 백성들의 감성과 지성을 키운 매체이다. 새해가 되면 임금은 세화를 그려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이 그림을 받은 신하들은 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대문에 붙여두었다. 세화 판화의 대표적인 그림은 호작도이다. 호작도는 작호도나 까치와 호랑이 그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까치가 앉아 있는 소나무 아래에 커다란 호랑이를 배치하는 호작도는 민화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유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우리나라 민속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호랑이는 산신령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나쁜 귀신을 막아 주고 착한 이를 도와주는 영물로 여겨져 세화의 주요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까치 역시 길조에 해당하며 일 년 내내 좋은 일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고판화의 예술성을 전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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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일본은 우수한 목판화 예술을 발전시킨 나라들이다. 중국의 고판화는 수나라 내지 당나라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에는 주로 종교적인 내용을 다루었지만 송이나 원대에 와서는 학술서, 기술서, 실용서의 삽화로 활용되었다. 또한 사전류, 문학과 역사고사서, 예술서, 연화에 이르기까지 활용 범위와 용도가 확대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발달했다. 왕실과 국가의 간행물, 사대부의 문집간행과 시전지판, 불교와 도교 및 민간신앙의 경변상도와 부적, 문집과 서법첩, 문자도까지 판화가 사용되었다. 일본의 판화는 헤이안 시대부터 발전하여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크게 발전했다. 에도 시대에는 우키요에 판화가 등장해 판화 자체가 독립 미술로 성장했다.

한선학 관장은 고판화의 예술성이 오늘날의 창의교육에 주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판화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직접 학생들에게 고판화의 우수성과 매력을 설명하는가 하면 체험을 통해 몸으로 익히게 하고 있다.

“고판화의 작품성과 매력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2년부터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생생문화재 사업기관으로 선정되어 실시하는 목판본 삽화를 활용한 전통판화학교는 참가자들이 직접 고인쇄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목판화를 체험해 보는 특성이 있습니다. 강원도와 원주시와 함께 흑백판화와 채색판화 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모와 축제도 합니다. 한중일 교류를 통해 아시아의 콘텐츠로 확대하는 노력도 펼치고 있습니다.”

판화는 우리의 우수한 손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술 장르이다. 한선학 관장은 문화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박물관이 앞장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이 가진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다. 그리고 해외 전시를 가져 판화의 창의성을 세계에도 알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 글 두근 사진 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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