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래플스Raffles
싱가포르라는 도시가 역사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는 1819년 스탬포드 래플스Stamford Raffles라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한 직원이 말레이시아 반도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요 서울 만한 섬을 발견하고 그 잠재성을 인정, 말라카를 대신할 아시아 무역 허브 도시로 만들기 위해 영국의 공식적인 식민지로 삼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싱가포르 여행을 해봤거나, 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흔히 접하는 래플스 플레이스, 래플스 시티, 래플스 병원, 래플스 주니어 칼리지 등등의 지명들이 모두 이 영국인과 관련이 있다. 래플스라는 인물은 이후 싱가포르 발견을 비롯한 식민지 확장과 시스템 정착의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게 된다. 하여 그의 공식적인 이름은 Sir Stamford Raffles, 즉 래플스 경이다. 리버크루즈River Cruise를 타고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 보면 그의 동상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 아랍 스트리트Arab Street, 깜퐁 글램Kampong Glam
그렇다고 해서 영국 식민지 이전의 싱가포르가 무인도였던 것은 아니다. 원래 말레이시아 반도 전체가 역사적으로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정교일치가 확연히 정립되어 있던 지역이었던 지라 싱가포르 섬에도 역시 이 지역 말레이인들을 다스리던 술탄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 영국 동인도 회사의 무력 앞에 이 술탄 역시 그 지배권을 영국인들에게 넘겨주게 된다. 다만 래플스 경은 이 술탄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그대로 두어 로컬 말레이 인들의 동요를 잠재우는 용도로 이용하려 한다. 후세인 샤Hussein Shah 라는 이름의 이 술탄에게 일정 정도의 생활비를 제공함과 동시에 깜퐁 글램 이라는 지역을 그 주거 지역으로 제공해 준 것이다. 영국인들의 꼭두각시가 된 술탄 후세인은 이슬람 술탄 권위의 상징, 모스크를 짓고 그를 따르는 말레이 인들 및 다른 지역으로부터 넘어 온 이슬람 인들과 함께 그들만의 영역을 확보, 직접 기거하게 된다. 이는 래플스 경의 의도대로 말레이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이슬람 공동체의 동요를 최소화 하는 작용을 하였다. (월급쟁이 술탄!) 당연한 얘기겠지만, 1824년에서 1826년 사이에 지어진 이 모스크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자본을 제공하여 지어 준 것이고, 바로 현재 아랍 스트리트와 술탄 모스크의 기원이다. 지금의 술탄 모스크는 20세기 들어 레노베이션한 것이라고 한다.
- 차이나 타운 Sri Mariamman Temple
한편, 영국이 싱가포르를 통치하게 되면서 함께 건너 온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인도인들. 이 시기 인도는 이미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인도인들이 상인, 노동자, 경찰, 행정 관료라는 임무를 띠고 반 강제적으로 건너오게 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도인들은 그들만의 힌두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 역시힌두 신을 기리는 사원을 짓는다. 인구밀도가 극악하게 높은 차이나타운 미로를 헤매이다 보면 어느 샌가 눈앞에 나타나 더위에 지친 여행객들을 유혹하는 바로 그 이국적인 건축 양식의 힌두 사원, Sri Mariamman Temple이 그렇게 넘어온 인도인들이 1827년에 지은 그들만의 신앙 공간이다.
아리아인으로부터 시작한 힌두신앙 혹은 힌두교는 우리가 흔히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 즉 유일신이거나 혹은 다신교이더라도 일정한 체계를 가진 세계관을 공유해야 한다는 개념을 가진 종교가 아니다. 넓디넓은 인도 각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이 믿는 다양한 토착 종교를 뭉뚱그려 지칭하는 것이다. 마치 중국의 도교처럼. 어떤 민족은 시바 신을 믿고, 어떤 민족은 비슈누 신을 믿는 등 각자 믿는 바가 다 다르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두 다 힌두신앙이라고 지칭한다는 것. 스리 마리암만 사원의 경우 남부 인도의 타밀Tamil 지방에서 주로 숭배되는 마리암만 여신을 모신 사원이다. 이 여신은 질병으로부터 신도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 사원은 현재에도 싱가포르 인도인 커뮤니티의 사회, 문화, 교육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이 쓰는 타밀어가 영어, 중국어와 함께 싱가포르의 3대 공용어인 것을 봐도 인도인들 역시 싱가포르라는 도시국가를 구성하는 주요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싱가포르의 국어는 ‘말레이어’이다.
- 도비곳 Dhoby Ghaut
인도인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지명으로는 싱가포르 엠알티 교통의 요충지, Dhoby Ghaut 도비곳이 있다. ‘도비’라는 단어는 힌디어로 세탁하는 사람, ‘곳’은 장소라고 한다. 즉, 도비곳은 세탁하는 이들의 공간이라는 뜻인 셈이다. 예전 무한도전에서 유재석과 광희가 극한알바 한다고 인도 갠지스 강가로 가서 빨래 체험한 것을 연상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한 형태의 인도인 세탁 노동자들이 싱가포르에도 존재했다는 것. 현재의 싱가포르 지하철MRT 옐로라인Ywllow Line 브라스 바사Bras Bhasa 역 주변에 강이 흐르던 19세기에서 20세기 초중반 무렵, 인도인 세탁노동자들이 브라스 바사 강에서 옷을 빤 뒤, 현재의 도비곳 지역으로 와서 젖은 빨래를 한꺼번에 널어 말렸다는 데에서 그 지명이 유래한다.
- 부기스Bugis
영국인, 말레이인, 인도인 외에도 싱가포르에는 몇몇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민족 중의 하나가 부기스 정션Bugis Junction, 부기스 스트리트Bugis Street로 유명한 Bugis 민족이다. 이들은 원래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Sulaweshi 라는 섬을 근거로 해상무역을 수 백년동안 해오던 해상민족이었다. 그 민족적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수 천년 전 이 지역으로 건너 온 중국인 혹은 대만인이 조상격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먼 옛날 지금의 싱가포르 부기스 지역에 물길이 흐르고 있었을 때, 이 부기스 라는 이름의 해상 무역 전문 민족이 자주 건너와 물건을 사고 팔면서 이문을 남겼다고 한다. 소수민족이지만,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는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지만 강한 민족이기도 하다. 지금의 말레이시아 총리, 인도네시아 부통령이 모두 부기스 민족 출신이라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