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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532, Nika riots in Constantinople: A quarrel between supporters of different chariot teams – the Blues and the Greens - in the Hippodrome escalates into violence.
532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니카 폭동이 일어났다. : 서로 다른 전차경주 팀의 응원단 -청색당과 녹색당 - 사이의 전차경주장에서의 다툼이 폭동으로 커지다.
니카폭동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재위하던 시기 동로마 제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반란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대제가 전제정치를 벌일려고 하자 서로간에 앙숙이었던 녹생당과 청색당이 공동연합전선으로 일으킨 반란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는 반란이 실패하고 유스티니아누스의 전제정치에 더 힘을 실어준 결과가 되고 맙니다. 간단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1. 녹색당과 청색당
동로마 제국은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시피 로마제국이 둘로 분열되면서 서로마지역이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해 버린 이후 동쪽으로 옮겨간 국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제군주정을 확립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유시민의 전통이 오랫동안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전통이 남아있던 것이 바로 녹색당과 청색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원은 그리스-로마시기의 전차 경주장 – 이를 히포드롬이라 합니다. – 에서의 응원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당시 전차는 소속을 나타내는 색깔이 있는 깃발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응원하는 팀의 색깔의 이름을 따서 녹생당과 청색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응원단이 아니라 정치적인 조직이었는데, 지금의 정당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인 의사를 내세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청색당은 고위 귀족층의 지지를, 녹색당은 상공업자들과 궁정 관료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기본적으로 청색당은 서로마의 전통을, 녹색당은 동로마에서 새롭게 일어난 신흥세력이 중심이 되었던 것이죠. 이들은 종교에 대한 문제에대해서도 대립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싸웠죠. 정부의 지지를 받는쪽은 정부의 비호를 받고 그렇지 못하면 반정부 기류를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앙숙인 두 당이 합심해서 대응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시민정치를 위협하는 전제정치가 등장하려 할 때 였습니다.
2. 반란
이렇게 서로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두 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때 두 당 모두 탄압을 받게 되되면부터 반란의 불씨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전까지만 해도 청색당을 비호하던 인물이었는데, 제위에 오르자마자 두 당을 극심히 탄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당 모두 강력한 처벌과 탄압을 받았고, 이에 불만이 쌓여 갔죠. 그리고 여기에 유스티니아누스의 고토수복의 대사업을 로마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게 됩니다. 이 기회를 틈타 두 당은 콘스탄티노플의 히포드롬에 집결했고, 다음과 같은 외침으로 반란을 시작했습니다.
“자비로운 녹색당과 청색당이여, 부디 영속하라.”
현재의 히포드롬 자리 -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앞 광장
3. 진행
처음에 로마 시민들의 분만도 컷을 것이고, 양당의 연합도 강했기 때문에, 처음에 기세는 등등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폐위를 주장하며 새 황제까지 옹립합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자 유스티니아누스는 도망칠 준비를 하나 황후가 가로막습니다. 황후 테오도라는 단호하게 만류했고, 그 동안 정신을 차린 유스티니아누스는 반란에 대항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로마의 명장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를 불러 들입니다.
우선 나르세스가 지략을 발휘하여 두 당의 연합을 와해시켜버립니다. 바로 유스티니아누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지지해줬던 청색당의 지도부에게 뇌물을 먹이고, 새 황제로 뽑힌 히파티우스가 녹색당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녹색당에 딴 생각이 있었을 듯 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이로인해 간단하게 단단하던 두 당의 연대를 깨어져 버리죠.
그리고 벨리사리우스가 이제 전투에서 반란을 완전히 진압하게 됩니다. 분열이 일어나서 시간을 계속 지체하던 두 당이 있던 히포드롬으로 신속하게 병력을 이끌고 진격합니다. 분열로 인해 대비조차 되어 있지 않던 반란군들은 3만명 가까운 사상자가 난 채로 항복해 버리고 맙니다.
4. 결말
이런 반란에 빌붙은 원로원을 유스티니아누스가 좋게 볼리가 없겠죠. 원로원 회당을 황궁의 접견 홀로 용도변경해 버립니다. 그리고 반란때 완전히 타 버린 하기아 소피아를 재건하는데 유스티니아누스가 반란군을 동원해서 완성시킵니다. 이제 로마는 자유시민의 전통을 꺾어버리고 전제황권을 확립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에도 로마의 공화적 전통은 이어지게 됩니다.
하기아 소피아 혹은 아야 소피아
5. 평가
역시 분열이 일어난 조직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분열의 불씨가 있는 조직은 분열시키기가 쉽다는 것이죠. 여기서도 뇌물과 거짓말에 두 당이 가볍게 분리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통치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황제에게 덤벼드는 조직은 확실히 조져나가고, 뒤를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요즘과 같은 세상이 아닌때 정권에 불안을 가하는 요소는 철저하게 제거해 나가는게 고금의 공통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아 참 테오도라 황후의 행동은 마치 태종의 원경왕후의 모습을 보는거 같긴 하네요. 결은 좀 다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