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의 세계사] 661년 1월 29일

in hive-196917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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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661, The Rashiudn Caliphate ends with the death of Ali, and the Imamah of the Shia going to the second Imam, Hassan ibn Ali.

661년에 정통 칼리파 시대가 알리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시아파의 두번째 이맘 – 시아파와 수니파가 이맘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이 다릅니다. 수니파에서는 이맘을 이슬람의 예배를 지도하는 학식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이지만, 시아파는 무하마드의 후손으로써 혈통을 있는 최고 지도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 으로 하산 이븐 알리가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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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아 소피아에 있는 하산 이븐 알리의 이름

1월 28일의 역사와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정통 칼리파로 인정되는 제 4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이제는 정통 칼리파로 여겨지지는 않고 우마이야 왕조를 연 무야위야 1세에게 항복을 한 하산 이븐 알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생애

1) 탄생

625년에 제 4대 칼리파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무하마드의 딸 파티마의 아들로 출생합니다. 전승되는 얘기에 따르면 무하마드가 외손자를 얻게되엇을 때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그의 아들을 알리 하산으로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산과 그의 동생 우세인 이븐 알리는 외할아버지가 되는 무하마드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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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아버지 왼쪽이 하산 오른쪽이 후세인

2) 성장

하산 이븐 알리는 아버지의 휘하에서 여러 전투에 참여하고, 예멘에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선교사로서 활동합니다. 아버지가 칼리파로 선출되었을 때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해서, 이라크의 쿠파로 가서 반란을 일으킨 무슬림들을 토벌하고, 바스라, 시핀, 나흐라완등 여러 전투에서도 전과를 올립니다. 당연히 알리가 이뻐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이맘으로 선출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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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쿠파에 있는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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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시전에 주조된 은화

3) 아버지의 암살

661년 아버지가 카와리즈파에게 암살당한 후에 알리의 지지자들이 장남인 하산을 제 5대 정통 칼리파로 선출합니다. 하지만 알리와의 전쟁에서 협상을 잘해 자신의 힘을 잘 비축하고 있던 무아위야 1세는 곧바로 전쟁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피를 흘리기 보단 협박으로 제위를 따내기가 쉬운법 우선 하산에게 서신을 보내 신변을 보장하고 이맘으로서의 명예도 보장해 줄 테니 칼리파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산이 받아들일리 만무했죠. 그래서 무마위야 1세가 6만의 대군을 이끌고 내려오죠 하산도 4만의 군대를 소집하여 대응합니다. 곧 사바트 인근에서 두 군은 만나게 되죠

4) 잘못된 판단

하지만 전투를 앞두고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전투를 앞두고는 어떻게든 앞의 적병사에 대한 적개심을 높이고 사기를 높여서 싸워야 하는데 이렇게 군대를 다 끌고 왔음에도 분열을 증오한다고 말해 버립니다. 응?? 아래병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어?? 힘이 더 센 무아위야랑 머 협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죠. 그래서 내분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하산의 부관조차도 무아위야1세에 귀순해 버리는 일이 생겨버립니다. 결국 전력으로 싸울 수 없었습니다. 몇번의 평화협상을 제의했지만 칼리파의 자리를 노리는 무아위야1세가 들어줄리 만무하죠. 그리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했다는 평가를 듣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화평을 하기로 마음먹고 2명의 사절을 보냅니다.

5) 협상

하산역이 많은 무슬림들이 내전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협상 내용은 시아파 학자들과 수니파 학자들의 해석이 다릅니다…….. 수니파 학자들에 의하면 다음의 조건을 하산이 내걸었고,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어떠한 복수도 하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 아와즈 지방에서 징수하는 모든 세금은 하산 이븐 알리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 연간 200만 디르함이 하산 이븐 알리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 전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면을 선포해야 한다.

시아파 학자들에 따르면 하산이 살아있을 때 무아위야 1세가 죽으면 칼리파를 자신에게 돌려줘야하고 혹시 하산이 먼저 죽는다면 칼리파직을 후세인 이븐 알리에게 줘야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무아위야 1세가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 두 파의 학자들간에 칼리파자리의 계승에 대해 이렇게 말이 다르긴 하네요

6) 말년

하산은 칼리파에서 물러난뒤 메디나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적대적인 관계였던 마르완 1세의 핍박에 시달려야 했고, 또한 시아파들의 분노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670년에 사망합니다. 이 사망과정조차도 수니파와 시아파의 주장이 다릅니다. 시아파는 칼리파를 세습하려는 무아위야1세에 의해 하산이 독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수니파는 자연사했다고 주장합니다. 평소 외할아버지인 무하마드 곁에 묻어달라고 말했던 하산이지만 하지만 마르완 1세가 이를 막앋섭니다. 결국 예언자의 모스크인 마스지드 알 나바위 건너편의 알 바키 묘지에 매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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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이븐 알리의 죽음 - 후세인 이븐 알리가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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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바키 묘지

2. 평가

정통 칼리파들의 얘기 특히나 제 4대, 제5대의 얘기를 보면 너무나 이상론에 빠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다 결정적 승리를 잡을 장면도 많았었고, 또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의 분열을 막는다는 대전제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더 큰 것을 이루지 못한 칼리파들이죠. 요즘 들어서 삼국지의 조조가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좀더 현실을 잘 비벼야 한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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